핵가족 속에서도 가족주의 ‘끈끈’
  • 강신표 (한양대교수·문화인류학) ()
  • 승인 1990.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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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평등 강조되는 생활 밑바탕에 ‘위계질서’ 깔려

가족은 한 인간이 태어나서 삶을 시작하는 출발점이요, 또한 다시 한 가족을 만들어 살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종착점이기도 하다. 가족이 사회의 기본단위가 된다는 것은 어느 사회에 있어서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한·중·일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사회의 유교문화권에 있어서 가족이 지니는 의미는 특별하다.

 나라를 ‘國家’라고 표현하는데, 그 표현 속에 집‘家’자가 들어 있다. 다시 말해서 국가도 가족의 확대에 지나지 않음을 뜻하고 있다. 가족의 인간관계는 곧 국가사회의 모든 인간관계로 확대된다는 것이다. 자기 가족의 직접적인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아저씨 아주머니가 아니더라도, 나이를 많이 먹은 어른들을 이러한 호칭으로 부른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한 가족에 어른이 있고, 한 고을에 어른이 있고, 한 나라에 어른이 있다. 어른은 언제나 윗사람으로서 밑에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을 돌봐야 할 책임을 진 사람이다. 그래서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언제나 잘 모셔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족관계에서는 孝가 가장 주요한 가치관으로 등장한다. 한 인간이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났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효를 가르쳤다. 이른바 사회화 과정의 교육은 훈련에서부터 시작하였다. 효를 모든 인간행동의 근본(百行之根本)으로 여긴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농업사회’ 전통 속에 집단적 생활문화 형성

 한국의 전통사회는 농업을 중심으로 조직된 사회였다. 농사일은 한 개인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집단적인 노동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가족집단이 공동으로 노동에 참여하였다. 때로는 한 가족집단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리하여 가족을 포함하는 일가친척들이 함께 살면서 집단적인 노동을 동원할 수 있는 공동체생활을 영위하여온 것이다. 효를 중요시하게 된 것은 이러한 농업생활에 필요한 공동체 생활을 위한 생활규범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생활규범이 오랜 세월을 통해 지속되면서 가족주의문화라고 일컬을 수 있는 관행이 형성되었다. 이때 한 개인은 집단의 일원으로서만 그 존재가 확인된다. 집단적인 생활로서만 그 존재가 확인된다. 집단적인 생활로서만 한 개인의 생존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집단적 생활은 祖孫으로 연결되는 영속적인 집단으로 확대되었다. 영속적인 집단은 동시에 상하서열적이고 위계적인 조직을 갖추고 있다. 한국가족에 있어서 부자관계가 부부관계보다 우위에 있는 원인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집단성을 강조하는 이러한 상하서열 의식은 다른 한편으로는 조상숭배라는 제사를 통해 끊임없이 강조되고 있다. 공동의 조상 밑에서 대대로 피를 함께 나눈 가족 친척집단은 모든 생활에 있어서 함께 동고동락해야 하는 집단인 것이다.

 이러한 가족집단이 확대가족으로 나타난다. 祖父孫이 함께 사는 확대가족은 모든 생활에 생사를 함께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인 어른의 책임이 가장 크다. 가장은 제도적으로 호주제라는 것을 통해 가족원을 통솔할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가장은 가계를 계승하고, 재산을 관리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가정의 모든 의례를 주관하는 책임에서 비롯된다고 보겠다.

 196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산업화와 도시화를 본격적으로 겪기 시작했다. 산업화는 전통적인 농업사회로부터 공업과 상업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로 이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농촌생활보다는 도시생활을 하는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공업과 상업은 도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생활이다. 상공업 중심의 생활은 어떤 점에서 성양에서 온 문화적 요소를 함께 수용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양의 과학기술문명을 중심으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된 까닭이다. 서양에서 도입된 문화요소는 우리의 전통적 가족주의문화와 정면으로 대립되는 면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집단보다는 개인, 상하서열적인 것보다는 평등이 더 강조되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서양문화에 기초한 현대교욱제도가 이러한 점을 더욱 강조하기 시작했고, 기타 언론 정보 매체들이 서양사회의 여러 가치체계를 한국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제시하는 데 급급하였다.

핵가족제도로 뒤틀린 생활감각

이러한 상황 속에 대가족 중심의 확대가족도 점차로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흔히 논의되고 있는 핵가족화가 그것이다. 장남은 조부모를 모시고 함께 생활하는 것으로부터, 점차로 별거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부부와 자녀 중심의 소가족생활이다.

 우리의 가족제도가 핵가족으로 변화하는 데는 인구를 줄여야 한다는 가족계획정책도 큰 역할을 하였다. 농촌을 떠난 도시의 아파트생활은 구조적으로 소수의 핵가족 생활을 유인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핵가족생활은 전통적인 집단생활과 상하서열적인 생활감각을 근본적으로 흔들어놓고 있다. 그러나 한편 달리 생각해 보면 표면적으로 핵가족화되고, 전통적인 가족주의문화가 파괴된 것 같이 보이지만, 심층적인 생활양식에 있어서 전통적인 생활관행이 그대로 이어져오고 있는 것 같다. 집안이 크고 작은 일에 있어서 가족친척집단간에 협력하고 도우는 것은 변함없다. 다만 옛날같이 집안 전체를 위해서 자기개인의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태도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전세계적으로 볼 때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한국은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가족 중심의 생활을 가장 잘 이어가고 있는 나라고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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