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김총재 정치동반의 '계산'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1.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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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회동, 떨어진 DJ 위상에 날개 달아줘…총선 후까지 유지 의문

지난 15일 오전 10시30분, 신민당 金大中 총재가 청와대에서  盧泰愚 대통령과 단 둘이 만난 후 국회로 돌아왔다.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과 당직자, 기자들이 김총재 주위로 모여들어 귀를 기울였다. 이날 회동의 최대 관심사는 내각제 개한 문제였다. 김총재는 노대통령과 나눈 내각제 관련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같은 시간 청와대에서는 이수정 대변인이 노 ·김 사이의 내각제 선문답 파동이 사그러든 현재, 여야 총재의 청와대 회동을 전후해 정치권의 상황이 획기적으로 바뀐 것은 별로 없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듯 싶다.

김총재 "청와대 내각제 애착 여전"
그러나 신민당 김총재의 위상에 변화가 생긴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시 ·도의회 선거 이후 김총재의 위상은 급강하했다. 민자당의 한 중진의원은 “김총재가 지하에 파묻혀버렸다”고까지 말했다. 추락 일로에 있던 김총재의 위상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내각제 개헌을 둘러싼 여권과의 공방이었고, 김총재가 겨냥한 것도 바로 이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노대통령은 김총재와의 청와대 회동에서 선거공영제와 정치자금법에 대해 합의점을 찾는 등 김총재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다. “김총재와 인간적인 신뢰를 재확인했다”는 말도 했다. 김총재를 정치 동반자로 인정함으로써 김총재의 정치적 위상을 끌어올리려는 흔적이 엿보인 것이다. 노대통령이 유엔에 갈 때 김총재와의 동행을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해볼 수 있다. 바로 이점에서 제한적이긴 하지만 노대통령과 김총재의 이해관계는 일치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노 ·김의 밀월관계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14대 총선 이후에도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것으로 보기는 힘든다.

김총재는 노대통령과 여권이 여전히 내각제에 대해 강한 애착과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김총재의 표현대로 여권이 영구집권을 의도하고 있다면, 또 14대 총선까지 내각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민자당이 김영삼 대표 최고위원을 차기 대통령후보로 내세우지 않으려 한다는 말과 같다.

노대통령의 내각제 개헌 시도 여부와 김총재의 내각제 수용 가능성, 즉 노 ·김의 내각제 합작 여부야말로 6공화국 후반기의 최대 관심사이다. ‘9월 개헌설’이 고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토조항이 명시된 헌법 3조의 개정과 통일에 대비한 통일헌법 발의 등 일련의 작업에 권력구조 개편 문제를 얹어 어떤 형태로는 개헌이 이루어지지 않겠느냐 하는 예측이다. 대통령 중심제하에서는 집권이 어렵다고 판단, 김총재가 의원내각제를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고쳐잡겠다고 결심한다면 이 기회를 이용하는 것이 무리도 없고 자연스러울 수는 있다. 하지만 김총재가 내각제를 원한다고 할 때 노대통령이 이를 선뜻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김총재가 내각제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차기 집권 가능성이 없다는 세 약화의 속사정을 드러내보인 것이기 때문에 굳이 노대통령이 김총재의 때늦은 제의를 수용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다만 노대통령과 김총재가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 국제정세를 반영하고 통일시대를 대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여야가 국정에 같이 참여하는 대연정의 정치구도를 탄생시키는 방법을 가상할 수는 있다. 그렇게 될 경우, 권력구도가 반드시 순수 의원내각제로 귀착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민주계에서도 9월 개헌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야권 일부에서는 다음달의 광복절 기념식에서 노대통령이 金日成 주석과의 남 ·북정상회담을 발표할 것이라든가, 집권층이 ‘유사 총통제’를 골간으로 하는 개헌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풍문이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김대중 총재가 적극적으로 내각제 개헌에 앞장서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현재의 한정된 기반을 가지고는 차기 대통령선거에서의 승리가 얼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총재와의 정면대결이라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세 굳히기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신민당 내 정치발전연구소(이하 정발연) 소속 현역의원들의 행동도 이와 관련해 눈여겨볼 만한 현상이다. 정발연의 일부 현역의원들은 조심스럽긴 하지만 김총재가 내각제를 수용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정발연이 정치판 개편의 와중에서 선명성을 부각시키면서 야권의 맹아로 흡인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민 일부 의원 "정치판 새로 짜일 것"
일부 정발연 의원들은 민자당 내 기류의 변화를 주시하면서 어떤 형태로든 정치판이 새로 짜여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ㅇ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민자당 내 민정계 증진의원들이 의미심장한 말을 하곤 한다. 신보수의 흐름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대변혁이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안정희 구세력이 이데올로기화하고 있으며, 통일지향의 새로운 정치질서가 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계도 이점은 인정하고 있다. 다만 민주계는 대변혁의 시대이기 때문에 ‘김영삼 대세론’에 따르는 것이 순리라는 해석을 하고 있을 뿐이다.

신민당 주변에서는 김총재의 최근 정치행태가 예전같지 않다는 평을 하고 있다. 정치질서의 대변화를 예감한 탓이라는 것이다. 김총재가 비판세력에 관용을 베풀지 않으며, 당 장악력을 더욱 강화하고, 정발연활동을 노골적으로 비판해 감정적인 대응을 하며, 광주시의회 의장을 결국 사퇴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김총재는 13대 국회 임기 안에 내각제 개헌을 수용하진 않을 것이며, 6공화국 내에서는 개헌이 될 수 없다고 보는 견해가 더욱 유력하다. 김총재의 경우 14대 총선에서 신민당의 참패라는 명백한 결과가 나온다면 몰라도 현재로서는 자신의 정치생명에 칼을 들이대는 격인 내각제 개헌에 앞장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내각제쪽으로 방향을 틀어잡을 경우 당 장악력도 악화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대통령 임기 안에는 내각제든 이원집정제든 개헌이 불가능하다는 진단도 있다. 집권세력이 개헌을 하려면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집권 초기가 가장 유력하며 임기 중반이나 그 이후에는 개헌 추진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견해다. 李承晩 전 대통령의 사사오입 개헌과 朴正熙 전 대통령의 유신헌법 개헌이 집권 직후에 이루어졌다는 점과, 全斗煥 전 대통령이 임기말에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다가 실패한 것이 입증 사례로 제시된다.

또 현 정치질서 속에서는 특정 개인이나 특정 정파가 주도한다고 해서 개헌이 추진될 수는 없으며, 유일한 길은 1노2김이 연합하는 수밖에 없다는 점도 지적된다. 김대중 총재가 “김영삼씨와 내가 반대하는 한 내각제는 안된다”는 말도 ‘1노2김의 합의 하에서만 개헌이 가능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 셈이다.

다만 두 김씨를 배제한 채 노대통령 단독으로 개헌을 추진할 경우를 상정할 수 있는데, 이때의 개헌은 곧 장기집권 의도와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다. 5공화국 말기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구상과 맥을 같이 한다.

결국 내각제 개헌에 관한 한 5공화국의 합의가 필수조건이고, 세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이 참여하지 않을 경우 개헌은 힘들며, 현재로서는 세 사람의 이해관계가 일치되기 힘들기 때문에 개헌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노대통령과 김대중 총재 두 사람의 정치적 선택을 헤아릴 때 두 사람뿐만 아니라 반드시 김영삼 대표를 사이에 끼워 넣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점 때문이다.

노대통령과 여권은 김대중 총재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확신하고 있다. 노대통령은 반드시 이점을 염두에 두고 김영삼 대표를 상대해야 한다. 김영삼 대표가 민자당의 차기 대통령후보 선두주자라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차기 대통령 선거전은 두 김씨의 대결로 예상된다. 그러나 정작 열쇠를 쥐고 있는 노대통령은 아직까지 확고한 정치일정을 밝히지 않은 채 지연전략을 펴고 있다.

그뿐 아니라 노대통령이 이른바 ‘김영삼 대세론’에 제동을 거는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치일정에 대한 함구령이 노대통령 입에서 떨어진 바로 직후 이루어진 민정계 의원들만의 골프회동도 그 중 하나다. 노대통령뿐만 아니라 민자당이 광역의회 선거 이후 소수파로 전락한 신민당과 김대중 총재를 애써 ‘부축’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도 차기 대선에서의 무난한 승리를 예감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광역선거 이전의 김대중 총재가 아니라 위상이 격하된 현재의 김총재가 차기 대통령선거의 야권 후보로 나선다면 여권에선 굳이 김영삼 대표를 내세울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이점을 간과할 리 없는 김대표가 김총재를 계속 동반자로 붙들어두려고 애쓰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정치일정 확정짓지 '못하는' 노대통령
노대통령이 민정계의 후보를 만들고 있다는 저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이 나서서 후보를 만들어내야 한다. 민정계에 내맡긴 채 뒷전에 물러서서 관망만 할 수 없는 처지다. 민정계 중진들 중에 민정계의 단일 후보를 만들어낼 만한 정치력을 가진 인물을 꼽아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이 정치 일정을 확정짓지 않은 것이 아니라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가의 관심은 14대 총선 이전의 변화 가능성에 쏠려 있다. 이대로 총선을 치르느냐, 아니면 총선 전에 뭔가 변화가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이다. 총선 전의 변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정치구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만한 변수가 수두룩한 것이다. 노대통령이 총선 시기를 비롯해 민자당 대통령 후보 가시화의 시기를 비롯해 민자당 대통령 후보 가시화의 시기 등 중요한 정치 일정을 밝히지 않는 것도 총선 전에 예상되는 변수를 감안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이며, 더 나아가 능동적으로 변수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 안에서 김대중 총재가 국정에의 일부 참여 등 정치 구도의 변화를 모색할 수도 있다.

노대통령과 김대중 총재, 김영삼 대표와 김총재 또 노대통령과 김대표의 긴장된 ‘밀월관계’가 깨지는 날, 정치질서의 대변혁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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