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시대’로 접어든 미국교육
  • 워싱턴·이석열 특파원 ()
  • 승인 1990.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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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음주 확산, 청소년 중퇴율 30%…교사협회 “자격있는 선생 없어 못 가르친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교육비를 많이 쓰고 있는 미국 초 · 중 · 고교생들의 학력이 형편이 비슷한 나라들과는 비교도 안되고 중진국 학생들에게도 뒤떨어지는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몇해 동안 미국학생들은 국제학력대회 수학부문 중학 2학년 수준에서 꼴찌를 했는데 1등을 차지한 일본은 문제가 쉬워서 중학 1학년생이 출전을 했다고 한다. 또 17개국의 중학생 대표들이 치른 물리 · 화학 · 생물 등 3과목 학력대회에서 미국학생들은 물리와 화학 두 과목에서는 다른 나라 학생들의 평균점수를 훨씬 밑도는 낮은 점수를 기록했고 생물에서는 꼴찌를 했다. 이밖의 비슷한 학력대회에서 미국학생들은 수학과 과학분야에서 역시 성적이 가장 나빴는데 가장 뛰어난 실력을 보인 나라는 한국, 스페인, 아일랜드, 영국 그리고 캐나다 순으로 나타났다.

 13세 학생을 기준으로 할 때 수학과목에서 한국은 78%, 캐나다는 69%의 학생이 그 나이에 요구되는 실력을 갖고 있는 데 비해 미국은 고작 40%만이 이에 해당된다.


국민 7명 중 1명은 세계지도서 미국 못찾아

수학 · 과학분야뿐만 아니고 역사나 지리같은 과목에서도 미국사람들은 뒤지고 있다. 어른들 7명 가운데 1명은 세계지도에서 미국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으로 한 조사에서 밝혀졌다. 감옥에 있는 수감자 50%가 신문을 읽지 못하는 문맹자들이고, 군 입대를 지망하는 젊은이들 중 40%가 중학 3년생 실력밖에 안되는 실정이라고 한다.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 10명 중 7명이 취직에 필요한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쓸 줄 모른다는 사실, 17세의 청소년 중 8명에 1명꼴로 기능적 문맹자(글을 읽기는 해도 그 뜻을 모르는 사람)가 생겨나서 해마다 1백50만명의 기능적 문맹자가 사회에 나오고 있다는 현실, 이런 저런 어둡고 답답한 소식에 충격을 받고 있는 미국사람들은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미국 교육정책이 크게 실패했다고 탄식하고 있다.

 부시행정부와 입법부틑 연방정부 예산에 들어 있는 교육비를 포함해서 50개 주정부와 지방행정단위의 교육비를 모두 합치면 연간 3천5백30억달러나 돼 국방비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으면서도 교육의 질이 투자한 돈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위기의식을 갖고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우선 교육의 질이 떨어진 원인을 놓고 교육전문가들과 관계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설왕설래를 종합해보면 교육환경과 조건이 지난 10여년 동안 갑자기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가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마약이 국민학교에까지 침투해 있고 주말이면 으레 음주파티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미성년자들의 향락추구 경향, 교내폭력, 학생들의 공부에 대한 무관심,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과목들, 가정파탄으로 편부모 밑에서 잘못 커가는 학생들의 자제력 부족, 학부모의 무관심 등이 교육의 위기를 증폭시키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이혼율이 50%인 현실 때문에 가정문제로 가출을 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면서 자퇴하는 학생수가 많아 대도시의 경우 중퇴율이 30%나 된다. 연간 1백만명이 제 발로 학교를 나가는 이같은 실정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미국교육협회가 얼마전 조사발표한 한 통계를 보면 초 · 중 · 고생 5명 중 1명이 제돈으로 점심을 사먹을 수 없는 가난한 집 아이들로 학교에서 주는 무료급식이 그날 먹는 유일한 ‘제대로 된 식사’로 되어 있다. 이 협회는 또 1만3천1백76가구를 조사대상으로 설문을 한 결과 21%가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한다고 대답했다고 밝히면서 영양섭취가 제대로 안된 어린이들의 학력이 크게 뒤지고 있다는 사실도 아울러 지적하고 있다.

 한 시민단체가 작년에 전국적으로 조사한 고등학생 이하에 대한 마약 및 알콜 사용실태를 보면 응답자의 78%가 마약이나 술 경험이 있다고 시인하고 있고, 그중 22만3천명은 거의 날마다, 혹은 매 주말마다 마약과 술을 즐기고 있다고 대답했다. 특히 국민학생과 중학생 69만명이 코카인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과학교사협회는 물리를 가르치지 않는 고등학교가 7천1백개나 되고 화학을 가르치지 못하는 고등학교는 4천2백개 그리고 생물과목이 없는 고등학교는 1천9백개나 된다고 실태를 밝히면서, 있어야 할 과목이 없는 것은 “자격있는 교사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미국 전체 교사수는 2백40만명으로 집계되고 있는데 이들의 평균 연간수입이 2만3천5백달러이고 초임자는 1만5천4백달러로 다른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비해 좋은 편은 아니다.

 부시 대통령은 작년 가을에 50개 주지사를 버지니아대학에 소집해서 이른바 ‘교육정상회의’라는 것을 주재했다. 자신의 목표가 교육대통령으로 불리는 것이라고 밝힌 부시는 2000년까지 미국내 문맹자가 없게 하고 중퇴하는 학생들이 없도록 하며 미국학생들의 실력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도록 나라의 힘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선언했다.

 각 부간의 긴밀한 협조를 위해 부시 대통령은 문교부장관을 비롯한 각료들로 교육자문단을 만들어 대책을 펴나가기로 했다. 교육자문단은 유치원생부터 건강 · 영양관계를 살피고, 진학에 필요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알아보고, 자격있는 교사를 확보하는 데 노력하며, 학교에서 마약과 폭력을 추방해서 규율을 세우고, 중퇴자수를 줄이도록 힘쓰며,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고 학생들의 실력을 높아지게 하는 사람에게는 보상을 해줄 뿐만 아니라 부모들이 폭넓게 학교일에 관여하는 것을 장려할 방침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일이 그렇듯 교육도 지방자치제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문교부나 연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전국 8만3천개의 초 · 중 · 고교가 1만6천개의 교육구에 편입되어 행정감독과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 각 주마다 그리고 군 또는 시마다 제각기 따로 살림을 차리고 일을 해나가고 있다.

 의회에서도 교육개혁을 위한 노력이 펼쳐지고 있다. 우선 하원의 교육 및 노동분과 위원회(위원장 어거스트 호킨스)가 작년 11월에 ‘미국 교육현황과 장래의 방향’이라는 제목으로 청문회를 열고 각계의 의견을 들었다. 증언자들은 미국교육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대폭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특히 2000년대의 미국 노동인구의 80%가 여자와 비백인계 소수민족들로 구성되는 것이 확실한 마당에 이러한 측면을 고려한 대책이 아울러 마련돼야 한다”는 견해가 주목을 받았다. 호킨스 의원은 이러한 증언을 토대로 교육관계법을 만들어 의회에 내놓을 생각을 하고 있다.

 최근 워싱턴에서 폐막된 미 · 일무역회담에서 일본측은 미국이 대일 무역역조를 탓하기에 앞서 먼저 “미국이 교육의 질을 높혀 우수한 노동력을 확보해 좋은 물건을 많이 만들어 팔면 되지 않느냐”고 따지고 들었다. 교육문제가 국제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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