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에 드리워지는 統獨그림자
  • 본·김호균 통신원 ()
  • 승인 1990.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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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국들 ‘통일독일의 EC가입’ 원칙에는 동의, 뒷전에선 이해타산 분주

동독과 서독은 지난 4월24일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兩獨의 경제·통화 및 사회통합 시기를 7월2일로 확정함으로써 독일통일 문제를 구체적인 단계에 올려놓았다. 헬무트 콜 서독총리와 로타 드 마지에레 동독총리는 7월2일을 기해 동독의 통화 오스트 마르크를 서독의 도이체 마르크로 대체하는 한편 동독의 어려운 국영경제체제를 서독의 시장경제체제에 접목시키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같은 경제 · 사회통합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서독정부는 이미 동 · 서독 통화의 교환비율을 기본적으로 1대1로 한다는 것 등을 골자로 한 조약안을 공표한 바 있다.

 그러나 서독인의 60%는 현재 동 · 서독 통화의 1대1 교환비율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독정부는 이 여론을 거스른 채 연방은행의 1대2 제안을 ‘선거사기’로 보는 동독내의 압도적인 여론을 받아들였다. 서독 지방은행연합회 회장인 가이게르는 1대2 비율이 시행될 경우 동독에서 “또 한차례의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 조약안에 대해 서독 사민당은 아직 경제 · 통화동맹을 맺을 시기가 아니며, 특히 통일에 소요되는 재원(기사당 출신 바이겔 재무장관의 추정에 따르면 금년에 2백억~4백억마르크, 내년에 4백억~6백억마르크)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가 밝혀지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동독정부는 1대1이 기본으로 된 것에 대해서는 일단 만족을 표시하면서도 이 조약안의 내용을 서독정부로부터 직접 전해 듣지 못하고 서독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 대해 “유쾌하지 않다” (기민당 출신 폴 경제장관)는 반응을 보였다.

 독일통일이 급속히 진척되면서 유럽공동체(EC)는 두가지 면에서 압력을 받게 되었다. 하나는 동독 또는 통일된 독일의 EC내에서의 자리매김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EC의 통합계획 자체를 변경하는 문제이다. 동독이 서독과 통일된 후 EC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EC의 12개 회원국이 모두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이는 독일통일을 이제 돌이킬 수 없으며 지연시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함을 현실로서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작년 12월에 콜 총리가 10개항의 통일안을 제시했을 때만 해도, 예를들어 덴마크의 쉴리트 총리는 독일통일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는 차가운 반응을 보였고 다른 회원국들도 부정적이거나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4월21일의 EC 외무부장관회담에서도 ‘동독이 통일에 의해 회원국이 된다’는 합의에 이를 때까지는 서독과 여타 회원국들 사이에 적지 않은 마찰이 있었다. 콜 총리의 10개항 통일안만 해도 EC와 협의하기는커녕 사전통보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회원국들의 불만을 샀고, 콜 총리가 폴란드와의 오데르―나이세 국경에 관해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는 점도 계속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서독이 유럽통화동맹을 결성하는 데에는 소극적이면서 동독과의 통화동맹은 강행하고 있는 점도 다른 회원국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통일된 독일이 EC회원국이 될 것으로 확정지어지면서 동독의 EC편입은 3단계 수순을 밟아 진행하기로 합의되었다. 경과기인 제1단계는 동 · 서독 경제 · 통화동맹의 실행과 더불어 시작되고, 제2단계는 동 · 서독이 법률적으로 통일된 국가를 달성하는 때부터 시작된다. 제1단계에서 동독은 EC의 법체계에 점차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갖가지 법규를 시행해야 한다. 그렇지만 동독에서 EC의 법체계가 전면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제3단계에 이르러서이다.

 동독이 EC에 편입하기 위해서는 가격제도, 화폐 · 신용제도, 조세제도, 사회보험제도 전반에 걸쳐 개혁을 단행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EC는 경과규정과 예외규정을 허용할 방침이다. 그러나 동독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등장하는 데 따르는 성장효과를 서독이 독점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EC는 “모든 회원국이 동독시장에 진출하고 따라서 개편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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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독과의 통일을 이루면서 EC에 가입하는 이 3단계 계획에 동독이 합의함으로써 EC는 동독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EC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계획에 따를 경우 EC는 기본조약을 수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스페인 · 포르투갈의 예에서와 같은, 최소한 7년이 걸리는 통합과정을 훨씬 단축할 수 있다. 그러나 겐셔 서독외무장관은 이 3단계 계획을 위한 시간표까지 작성하자는 콜린스 아일랜드 외무장관의 제안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독일통일 과정 자체가 ‘4(미국 · 소련 · 영국 · 프랑스)+2(동 · 서독)회담’에 의해 결정될 성질의 것인 데다 올 11월로 예정된 유럽안보협력회의에서의 협의절차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EC는 동독의 가입방식에 합의했고, 동독의 가입에 의한 성장효과를 상당히 기대하고 있지만 그에 따른 문제점도 적지 않다. EC위원회의 자크 들로르 사무국장은 “어려운 시기는 이제 비로소 시작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는 동독이 동유럽 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 회원국들과 맺고 있는 약 2천3백개의 각종 협정을 통일독일이 인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 협정이 對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 규정과 상충될 때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미결 과제이다. 미국의 완강한 저항으로 인해 對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 규정을 완화하려는 서유럽국가들의 희망은 실현될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농업부문에 있다. 이미 EC내에서 누적되는 잉여농산물의 양(수요는 연평균 0.5% 증가하는 데 그치는 반면 공급은 2% 증가)이 동독이 가입하면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동독의 농업생산성은 서독에 비해 20~25% 낮기 때문에 EC로서는 동독 농업에만도 연간 20억~30억마르크를 지원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다. 또한 농업부문에서 30% 정도의 실업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자 카흘레 서독농업장관은 통일독일의 농업에 대해 적어도 3~5년의 경과 기간을 허용해줄 것을 요청했다.

 동독의 경제발전을 위해 EC가 재정지원을 해줄 경우 서독은 유럽의회에서는 물론 EC내 핵심적인 의사결정기구인 각료위원회에서도 지금까지와 같은 비중의 의결권에 만족하겠다고 제의했다.

 동독의 산업발전에 필요한 재원에 관한 한, EC쪽에서는 서독정부와 민간부문에 의해 조달될 것을 희망하고 있지만 서독정부는 매년 20억마르크를 지원해주도록 EC에 요청했다. 그렇기 때문에 EC내에서 독일통일에 대해 경제적으로 우려하고 있는 쪽은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등 경제발전 수준이 낮은 나라들이다. 이들 국가는 지금까지 자국의 산업발전을 위해 EC의 ‘구조기금’에서 배당되던 자금의 일부가 동독으로 돌려짐으로써 자기 몫이 줄어들 것을 염려하고 있다.

 지난 4월21일의 EC 외무장관회담에 즈음하여 미테랑 프랑스대통령과 콜 서독총리는 경제 · 통화동맹의 결성을 촉진함은 물론 92년말에 공동시장이 완성될 때 정치통합의 첫 구체적 조치도 이루어지도록 하자고 촉구했다. 이 제안에 강력한 반대의사를 밝힌 것은 대처 영국총리이다. 그녀는 이 ‘오묘한 제안’말고도 EC 외무장관회담에서 논의할 실질적인 문제들은 많이 있으며 EC 중앙정부를 구성하는데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처 총리의 이러한 반대는 EC에 대한 그녀의 소극적 자세의 연장으로서, EC내에서 영국의 지위가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데다가 이 제안 자체를 ‘본―파리 軸’의 전면적인 부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대처의 이같은 입장은 영국내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자민당의 외교부문 대변인인 러셀 존스론은 ‘대처 총리가 적어도 한번만이라도 역사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이 흐름에 맞추어 헤엄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테랑 대통령과 콜 총리의 제안은 아일랜드에 특수한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 제안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는 공동외교안보정책에 나토 비회원국인 아일랜드가 동참하기 위해서는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유럽 재건·개발을 위한 유럽은행 설립에 관한 합의도 이루어져 5월말에 협정이 공식적으로 체결될 예정이다. 이 은행설립案은 작년 12월에 동·서독이 급속하게 접근하는 것을 보고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이 제안했었다. 이미 EC내에서 관철되고 있는 서독의 주도권이 동 · 서독의 접근내지 서독의 동유럽 진출에 의해 더욱 확고해질 것을 염려한 미테랑 대통령은 동유럽 전반의 개방에 대해 EC 차원에서 대응하고 그럼으로써 서독의 독주를 막고자 한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40개국과 EC위원회, 유럽투자은행이 참여하는 이 은행에서 EC는 51%의 자본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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