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지, 권력 통제 벗고 ‘돈의 철창’속으로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1.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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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본 앞세워 무한경쟁 새 언론사는 설 땅조차 없어 무두 희생자 …민주일보 폐간

서울의 종합일간지 중에서 국민주 모금으로 설립된 <한겨레신문>을 제외하고는 유일한 ‘중소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일보(사장 김영수)가 경영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13일자 지령 504호를 끝으로 폐간됐다.

45년 설립돼 우리나라 출판 ·잡지계의 대표주자로 손꼽혔던 학원사의 후신 민주일보가 언론사업에 뛰어든 것은 87년 6월 <일요신문>을 창간하면서부터였다. 일요신문은 “항간의 소문이란 소문을 모두 기사화하고 있다”는 따가운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과감한 폭로성 기사와 독특한 잡지형 편집으로 많은 독자의 주목을 받아 한때 발행부수가 20만부까지 치솟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기존언론은 깰 수 없는 철옹성인가
일요신문의 성공에 고무된 경영진은 일요신문의 인력을 고스란히 투입해 89년 11월 민주일보를 창간했는데 이때부터 민주일보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속보성을 생명으로 하는 일간지 시장에서 일요신문 스타일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아 발행부수는 제자리 걸음을 계속했고 광고수주난까지 겹쳐 적자가 누적됐다.

민주일보는 지난해 5월 일요신문을 복간하고 여의도 사옥을 세놓는 한편 사설란을 없애고 연합통신과의 기사서비스 계약을 해지하는 등 경영난 타개를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적자폭은 계속 늘어나 현재 부채가 1백 90억여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지난해 10월부터 진행돼온 대우그룹과의 합작협상도 지난 1일 김우중 회장의 결렬선언으로 결말이 나 민주일보 경영진은 더이상 버틸 여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민주일보의 폐간은 일차적으로는 회사를 방만하게 운영해온 경영진과 종사자들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으나, 87년 이후 신문발행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언론계에 일련의 심각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우리 언론계에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기존 언론이 구축한 아성을 깰 수 있는 신문은 나타날 수 없는 것일까. 기존 언론재벌이나 종교재단, 그리고 대기업이 아니면 일간지는 운영할 수 없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같은 현상은 우리 언론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과연 바람직할 것인가.

밀린 임금과 취업 때까지의 생계비 지급을 요구하며 농성중이 민주일보 노조의 정해용씨(정치부 기자)는 “외부에서는 어떻게 봤는지 몰라도 민주일보 종사자들은 그동안 새로운 신문을 만들겠다는 일념에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출입처에서 서러움을 당하며 서도 보도에 있어서 기존 신문이 구축해놓은 권위주의의 틀을 개기 위해 노력했고 가능성도 발견했었다. 우리는 공정한 경쟁에서 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신문 발행의 자유를 제한하던 권력의족쇄가 끊어지면서 언론계에는 새 신문의 발행이 잇따랐다. 87년에 30개에 불과했던 일간지가 65개로 늘어났고 지난해에는 85개, 올해에는 90여개를 헤아리게 되었다. 특히 88년 5월 한겨레신문이 창간되고 국회 청문회에서 기존 신문이 5공정권의 창출과 유지에 기여해온 추악한 실상이 폭로되면서 중앙 일간지 시장의 판도가 달라지지 않을까하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4년여가 지난 오늘 언론계의 판도는 5공 때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기존 신문의 매출액은 크게 신장된 반면 새로 나온 신문들은 대부분 극심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또 관제언론이란 멍에를 벗기 위해 몸부림쳐온 일부 신문과 경영난에 허덕이는 신생 매체들이 속속 재벌의 손에 넘어가고 있어, 이대로 가면 언론재벌과 대기업이 경영하는 몇 마리의 ‘공룡’만 남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재벌과 손잡는 신문 크게 늘어
기자협회보가 지난 5월29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조선일보>가 1백49억4천만원, <동아일보>가 52억4천만원, <한국일보>가 26억8천만원의 경상이익을 올린 반면 신생지인 <세계일보>는 3백81억1천만원, <국민일보>는 2백42억5천만원, <한겨레신문>이 13억8천만원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생지 중 한겨레신문만 89년에 비해 적자폭이 줄어들었을 뿐 국민일보와 세계일보는 오히려 적자폭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새 신문들의 경영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

경영난이 가중됨에 따라 재벌과 손을 잡는 신문사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민주언론으로 거듭 태어나겠다며 사단법인으로의 회사형태 전환을 선언한 <경향신문>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초대 노조 간부 5명을 해직시키기까지 하며 한국화약그룹과 손을 잡았으며, 같은 관영매체였던 <코리아헤랄드>와 <내외경제신문>도 대농그룹에 경영권을 넘겼다. 부산의 <항도일보> (현재의 <부산매일>)는 대우그룹이, <국제신문>은 롯데그룹이,. 처음에 대우그룹이 인수했던 대구의 <영남일보>는 주식회사 갑을이 각각 인수했다. 현대 그룹은 아예 <현대문화신문>을 창간하기 위해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의 언론 소유를 규제하고 있는 정기간행물법은 거의 사문화돼 있는 실정인 것이다.

물론 “신문사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구시대의 신화를 믿고, 언론사가 누리는 특권에 매료돼 무턱대고 언론사를 설립했다가 도태된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생 신문이 고전하는 진짜 이유는 현재 언론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치열한 신문사간의 경쟁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무한경쟁’으로 표현되는 신문전쟁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7월13일 한국일보가 월요판 조간을 발행하면서부터였다. 이후 각 신문사는 연중무휴체제에 들어갔으며 증면경쟁도 가속화돼 매일 20~24면을 발행하게 되었다. 신문사간의 증면 경쟁은 앞으로도 계속돼 각 신문은 조만간 1일32면 발행체제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서울 본사에서 편집한 판형을 그대로 팩시밀리로 받아 인쇄해 배포할 수 있는 분공장의 설립 경쟁도 치열하다.

한국일보 창원 ‘분공장’ 8~9월쯤 가동
한국일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분공장이라고 할 수 있는 창원 영남본부를 건설중인데 오는 8~9월쯤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일보는 지난해부터 평창동에 제2공장을 설립 가동해오고 있다. 조선일보는 광주 대구 안양 등 3곳에 분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광주공장은 내년 2월쯤 완공될 예정이고 나머지 2곳도 빠르면 2년 내에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또 최근 대구의 영남일보와 현지 위탁 인쇄계약을 맺었는데, 오는 8월부터 대구에서는 서울과 거의 같은 시간에 조선일보고 뿌려질 수 있을 것 같다. 동아일보는 기존의 여의도 공장을 포함, 충정로 오금동 등 3곳에 인쇄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광주 부산 대구 등에서 위탁인쇄를 교섭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각 신문이 지방에서 분공장을 가동하게 되면 독자는 서울에서 밤 12시에 끝난 프로야구 경기 결과를 조간을 보고 알 수 있게 된다. 그라나 이같은 설비를 갖추려면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만큼 기존 언론이나 재벌이 경영하는 언론이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할 것임은 자명하다. 조선일보에서는 수도권과 지방의 분공장을 건설하는 데 앞으로 수년 동안 모두 2천억원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신생 신문들이 언론사간의 무한경쟁 속에서 자생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른 자연적인 현상으로 본다면 한국 언론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고도 볼 수 있다. 또 언론계 내부에서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한국 언론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고도 볼 수 있다. 또 언론계 내부에서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한국언론 전체뿐 아니라 무한경쟁에서 승리자가 될 몇몇 언론에도 결코 이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지금과 같은 무한경쟁이 계속된다면 한국의 언론들은 어렵게 권력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본의 철창에 갇히는 꼴이 될 것이다. 현재 각 신문은 발행부수를 늘리느라 각지국과 보급소를 통해 덤핑을 하면서 적자분은 대부분 광고로 메워나가고 있다. 따라서 각 일간지의 매출액 비율에서 광고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년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89년 광고의존도가 가장 높았던 한 조간신문의 판매액 : 광고액=23.1 : 76.6, 지난해에는 각사 모두 광고의존도가 이보다 훨씬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광고주(대기업)의 압력이 날로 가중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또 출혈경쟁을 하다 보면 수십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신문이라도 민주일보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언론의 독과점금지법 제정할 때”
무모한 증면경쟁은 지면의 부실로 곧바로 이어지고 있다. 모 신문사 경제부장은 “10여명이나 되는 기자가 하루에 원고지 7~8매씩 써대는데 무슨 소리를 썼는지 검토해보지도 못하고 넘길 때가  많다”고 실토한다.

흔히 신생사가 성공을 거두려면 기존 신문과 내용에 있어서 차별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언론 풍토에서는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거의 무든 정보를 출입처별로 결성돼 있는 기존 일간지의 기자단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지면의 차별화를 이루었다고 해도 기존 일간지들이 전국의 판매망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신문을 팔 도리가 없다. 현재 기존 일간지들이 전구그이 판매망을 장악하고 있기 대문에 신문을 팔 도리가 없다. 현재 기존 신문사간에도 보급소 직원을 서로 스카우트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데 하물며 신생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광고도 마찬가지이다. 기존 일간지들의 광고의존 비율이 높기 때문에 각 기업에서는 신생지에 광고를 주고 싶어도 예산이 없어 못 주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성균관대 방정배 교수는 “현재와 같은 체제에서는 어떤 신생지도 살아남을 것 같지 않다. 독일처럼 우리도 언론이 독과점금지법의 제정을 고려해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독 국민은 60년대에 언론의 독과점 현상을 바라보면서 “서독의 언론자유는 몇몇 언론재벌의 자유로 변질됐다”고 개탄한 바 있다. 우리에게도 이제는 먼 나라 얘기로만 들리지는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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