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寸志는 또다른 언론통제 수단”
  • 편집국 ()
  • 승인 1990.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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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신문들 한국언론 ‘부패’ 폭로…현직기자들 “정부 · 기업의 뇌물, 취재에 영향”

미국의 언론들은 최근 “한국의 기자들이 정부당국이나 취재원으로부터 예사로 돈을 받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잇따라 실었다. 4월15일자 〈시카고 트리뷴〉, 16일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23일자《뉴스위크》에 실린 이 기사는 서울 주재 프리랜서인 피터 레이든 기자와 데이비드 뱅크 기자가 공동으로 작성, 송고한 것이었다. 외국기자의 눈에 비친 ‘한국 언론의 부패’ 실태와 그 배경을 요약한다.

 “한국의 저널리즘은 상당히 부패해 있다. 우리 기자들은 돈을 받고는 있으나 마음속으로는 그것이 좋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기자들은 중독이 되어 익숙해 있다.”

 32세의 한 한국 기자의 말이다. 한국 언론인들의 촌지 수수 실태에 정통한 인사들에 따르면 최근 자유로워진 한국 언론의 어두운 비밀 가운데 하나는 기자들이 취재원으로부터 예사로 돈을 받고 있으며 그것이 은근한 형태의 언론통제로 작용, 기자들을 묶어놓는다는 것이다.

 기업인과 정부 관리들은 호의적인 취재가 이루어지도록, 또한 기사내용에 영향을 주기 위해 텔레비전기자와 인쇄매체 기자들에게 ‘촌지’(현찰선물)를 정기적으로 주고 있다고 이들 정통한 인사들은 말했다.

 뇌물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이러한 촌지가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수수되는 관행은 한국 언론에서는 오랫동안 화제로 삼아서는 안될 하나의 금기사항이 되어왔다. 직접적인 정치 통제로부터 언론을 해방시킨 민주화 과정이 시작된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언론인이 받는 촌지는 국민의 심판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몇 안되는 분야의 하나로 남아 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한 한국인 신문방송학 교수는“한국의 윤리로는 남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부터 깨끗해야 한다. 언론인들은 언제나 타인을 비판하기 때문에 자신들부터 깨끗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촌지부터 없애는 것이 사회를 깨끗이 하는 첫발길”이라고 덧붙였다.

 촌지제도는 ‘감사의 뜻을 표시한다’는 전통적 풍습의 한 형태였으나 기사내용에 영향을 끼치려는 부패한 형태로 발전했다.

 이 관행을 옹호하는 한국인들은 기자에게 현금을 선사하는 것은 방문해준 데 대한 단순한 감사의 표시(경의의 표시)라고 말하고 있다.

 “촌지는 이 사회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 촌지는 한국의 전통으로 볼 때 뇌물이 아니라 하나의 예의”라고 서울에서 발행되는 일간지의 한 고참기자는 말했다.

 이 관행은 어찌나 널리 통용되고 있는지 외부에 출입처를 가지고 있지 않은 내근기자들은 ‘촌지를 못받게 되는 데 대한 보상’임에 틀림없는 ‘내근수당’을 회사측과 협상까지 할 정도이다. 어떤 신문사의 경우 이 명목의 수당은 월평균 2백달러에 달한다.


명절때 ‘떡값’이 가장 흔한 형태

 촌지는 휴가 보너스, 인터뷰를 하거나 기자 회견에 참석해준 데 대한 사례, 다달이 지급하는 것 등 다양한 형태를 갖고 있다.

 가장 널리 이용되고 있는 지불방법은 추석이나 설날과 같은 명절에 현찰로 선사하는 방법이다.
 盧泰愚대통령은 어느 명절엔가 출입기자 1명당 7백~1천4백달러의 현금을 주었다고 위의 고참기자는 전했다. 盧대통령의 이름이 적힌 봉투 안에 넣어 대통령의 비서가 전해주었다고 이 기자는 말했다. 그는 이 돈이 수백명의 기자들에게 전달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한 정부 관리는 정부 각부처도 한국 습관에 따라 명절에 떡값(현금선물)을 주고 있다고 시인했다.

 촌지는 또한 특별행사나 여행 때에도 주어진다. 민자당 최고위원의 한 사람인 金永三씨가 지난달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도 수행기자들은 선물을 살 비용조로 1인당 5백달러씩 받았다고 한 기자는 밝혔다.

 또한 정부 각부처 관리들은 해당 부처에 출입하는 배타적인 ‘기자단’에 촌지를 주고 있다. 서울의 한 큰 경찰서에 ‘출입’하는 기자들은 지난해 매달 4백25달러씩을 받았다고 이런 사정에 밝은 한 기자가 전했다.

 기업인과 인터뷰할 경우 평균 촌지는 1백50달러이며 대그룹 회장과의 인터뷰 때는 1천4백달러나 된다고 한국 대기업의 홍보실에 근무했던 모씨는 말했다.

 기자회견이 있을 때는 70달러부터 1백50달러까지의 촌지가 회견장에 마련된 ‘보도자료집’속에 준비된다.
 “촌지는 약과도 같다. 돈을 받은 기자들은 나쁜 기사를 결코 쓰지 않는다”고 다른 회사의 홍보실 간부였던 모씨는 말했다.

 소수이기는 하나 특히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이 언론통제의 음성적 유지수단인 촌지를 배격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20년간 청와대에 출입한 한 고참기자는 촌지가 “솔직하게 말해 취재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전두환 정권하에 숙청되었던 언론인들이 88년에 탄생시킨 진보계 신문인 〈한겨레신문〉은 소속회사 기자들에게 촌지받는 것을 금지하는 공개정책을 발표한 첫 신문이 되었다.

 “기사내용이 영향을 받는 이상 촌지는 뇌물일 수밖에 없다”고 이 규칙시행에 책임을 지고 있는 윤리위원장인 윤활식씨는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촌지를 거부하는 기자는 취재원의 신뢰를 잃고 뉴스에의 접근통로를 스스로 단절하는 위험부담을 안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 기자는 또한 정보를 엄중통제하는 출입기자단에서 추방당할 위험도 무릅써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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