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과 싸우는 통일 베트남
  • 안병찬 편집주간 ()
  • 승인 1990.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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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 해방’ 15주년 맞아…경제개혁 위해 개방정책 활발히 추진

해마다 4월말이면 베트남쪽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뜨거운 태양열에 달아오른 사이공(지금은 호치민 시)의 아스팔트 바닥에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열대성 소나기의 울림이다. 그 소나기는 야자나무와 고무나무의 푸른 잎사귀 위에 그리고 메콩강변의 카시미론 담요같은 열대림에 장쾌하게 쏟아진다. 우기가 시작되면 하루 한차례 그런 소나기가 어김없이 내리므로 베트남 사람들은 그 독특한 하늘의 조화를 가리켜 “한점 구름이 쏟는 비”라고 말한다.

 만 15년 전 4월27일 웬쥬거리 107번지에 자리잡고 있던 주월한국대사관 마당에서 태극기가 최후로 걷히던 날, 한낮에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갑자기 쏴 소리를 내며 그 해의 첫 스콜이 내렸다. 빗줄기는 멸망의 초침소리가 들리는 사이공 마지막 날들의 불안과 초조와 공포를 씻어보려는 양 퍼부었다.

 지난해 4월말 호치민 시를 14년만에 다시 찾았을 때는 아직 우기가 시작되지 않았고, 5월6일이 되어서야 첫소나기가 왔다. 올해로 호치민 시는 ‘도시해방기념일 15주년’을 맞았다. 호치민시 레 반 두엣 204번지에 숙소를 정하고 있는 한중상공 정주섭사장을 장거리 자동전화로 불러내어 물어보니 4월 하순인데 아직 첫소나기는 내리지 않았다고 전한다. 그는 호치민 시에 있는 ‘타비마니아’가 활발하게 가동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타비마니아’는 권순주씨가 호치민 시 탄빈구청과 합작계약을 맺고 89년 봄부터 수출용 양말을 만들고 있는 첫번째 합작공장이다.

 올해 베트남 달력에는 사이공 해방 15주년 기념일외에 다른 두가지의 의미있는 기념일이 들어 있다. 하나는 베트남 공산당창립 60주년 기념일(2월3일)이요 또하나는 故호치민 주석탄생 1백주년 기념일(5월19일)이다.

 올해는 또 베트남이 86년에 시작한 제4차 5개년계획이 끝나는 해여서 그동안 추진해온 개혁정책 ‘도이모이’(쇄신)가 초기 중간평가를 받게 된다. 베트남이 헌법상 규정한 기본 노선은 소규모의 생산사회로부터 자본주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사회주의로 직접 이행하는 것이었다. 그런 원칙을 가지고 경제정책을 추진한 베트남은 사이공을 ‘해방’하여 통일을 달성한 이후에도 ‘전시공산주의 정책’을 계속 강행했다. 그리하여 행정적 공급정책을 실시하면서 중앙집권적 계획 관리 제도를 유지하는 한편 남부베트남의 사회주의 개조를 달성한다는 경제정책을 폈다.

 그렇지만 난국을 타개하겠다던 베트남 경제노선은 시행착오에 따라 부분적으로 몇차례의 수정을 거듭하며 86년말 제6차 당대회에서 개혁정책 ‘도이모이’에 이르게 된다. 지난해 3월 당중앙위원회 제6회총회는 초보적이긴하지만 경제분야의 ‘쇄신’이 중요한 성과를 거듭했다고 평가하면서 향후 3년간의 ‘쇄신과정’을 지도할 기본원칙을 책정했다.

 ‘도이모이’정책에 따른 생산 관리제도의 핵심은 중앙정부에 의한 통일적 지도의 효력을 높이는 대신 각급 지방권력기관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한 점에 있다. 그것은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계획을 작성하고 종합하자고 강조한다. 또 국영기업은 생산계획에서 외국과의 거래에 이르기까지 자주성을 확보하고 손익자기부담제를 도입하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비국영부문의 생산관리에서는 ‘민족공업자본가’를 포함하는 사영경제도 장려한다.


‘동유럽식 개혁’엔 거부감

호치민 시가 ‘도시해방 14주년’을 맞던 지난해만해도 베트남당국은 대외문호개방정책자체에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는 듯했지만 1년만에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 최근에 와서 웬 반 린 서기장은 베트남이 소련이나 동유럽식 정치개혁의 복사판이 될 수 없노라고 거듭해서 강조하면서 베트남공산당이 지도역할을 고수하는 ‘베트남식 사회주의’를 역설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베트남은 체제를 묻지않고 특히 아시아-태평양국가들과 관계를 정상화하겠다고 되풀이한다.

 베트남은 무엇보다 지난해부터 인플레를 억제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연간 인플레가 86년에 6백%, 87년에 4백%, 88년에 4백80%였으나 작년에는 30%선에 머물게 만든 것이다.

 베트남 당국은 동구의 정치변혁에 경계의 눈을 보내고 공산당 지도역할을 고수하면서도 대외적으로 더욱 융통성을 보여 우선 입국수속부터 부드러워졌다.

 1년 동안 호치민 시에서 원자재를 조달한 유창양행 서진용씨는 “처음에는 베트남 시장가격이 다른나라보다 싼 것 같지만 실제로 취급하려면 어려운 점이 많다”고 알린다. 산업기반이 약해 부대비용이 많이 들고 환율이 실제보다 고평가(10%정도)되어 있어 구상무역 방법이 아니면 아직 사업추진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베트남에서 냉동새우 10톤(약3만달러)을 구입하여 일본에 수출했으며 단추제작용 조개껍질 15톤(톤당 가격 4천5백~8천달러)을 수입했는데 20피트 컨테이너(제마트란스)비용은 1천6백달러였다고 했다.

 베트남 역시 개방정책이 수반하는 여러 가지 의혹사건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한국인이 뇌물수수 추문에 연루되기도

 불행하게도 벌써 한국사람들이 ‘베트남사회주의의 재산을 침해한 부정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추문이 사이공 해방지에 실리고 있다. 국영 수산물수출입공사 부사장 쫑 탄 하, 수입부장 레 반 민은 한국계 호주회사로부터 각각 3천달러와 7천9백50달러의 뇌물을 수수했고 수입부대리 짠 티 홍은 ㅋ종합상사로부터 1만달러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대만은 베트남과의 무역 교류를 우리보다 신속하게 체결하는 편이다. 종전 15년이 되도록 금수조치에 묶인 미국기업도 베트남 진출을 고대하고 있다.

 정주섭씨는 “일본 홍콩 대만 심지어 태국사람들까지도 물밀 듯 쏟아져들어오고 있는데 우리는 언제쯤이나 좀더 자유스러워지는 것입니까?”하고 편지를 써보냈다. 그는 “10년 후쯤 이곳 사이공에서 교민회장이나 한번 해보고 귀국할 마음으로 사람도 많이 사귀고 좋은 일도 많이 하려고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15년전 4월말에 사이공에서 밀려나와 남지나해 1천5백마일을 피난선으로 건너던 때 아득한 수평선에 피어오르던 궁금증은 한가지였다. 미국의 베트남 철수에 따라, 중·소의 이해대립에 따라, 장차 세계질서는 어떻게 재편성될까, 사이공의 최후를 출발점으로 한 아시아의 시작은 무엇일까.

 베트남은 사회주의화 통일을 얻은 대신 빈곤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적과 다시 투쟁하게 되었다. 중국과 소련이 병력감축에 합의하는가 하면, 아이로니컬하게도 소련은 92년까지 캄란만 등 아시아 지역에서 모든 소련군을 철수시킬 것이라는 워싱턴 발 뉴스가 나와 눈길을 끈다. 그렇다고 캄란만에 미국해군이 다시 들어갈 수 있다고 보지 않지만, 미국기업들이 곧 몰려가게 될 것은 쉽게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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