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 한종호 기자 ()
  • 승인 199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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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 혁명전사에게 안 어울려



 남북 접촉이 빈번해지면서 북한은 과거보다 훨씬 친숙한 느낌을 남쪽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있지만 우리가 ‘체감’하는 북한과 실제 북한주민들의 생활 사이에는 여전히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사회의 작은 변화를 상징하며 국내 대학가에서까지 인기가요 순위에 오르내리던 ‘휘파람’이라는 노래가 최근 금지곡으로 지정됐다고 한다. 한 젊은이의 짝사랑을 빠르고 경쾌한 리듬으로 담은 ‘휘파람’은 48년 북한정권 수립 초창기에  나왔다가 40여년만인 90년 초부터 다시 불리며 청소년과 병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은 노래이다. 작년 10월 북한 최초의 서구식 전자악단인 普天堡경음악단의 일본 순회공연 때 전혜영(20 · 사진)이라는 앳된 여가수가 이 노래를 불러 일본과 한국에 유행시키기도 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북한이 소련·동구 붕괴 이후의 사상적 동요를 방지하고 팽팽한 사회적 긴장을 덜어주기 위한 새로운 문화정책으로 휘파람 같을 노래를 끌어낸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노래가 이번에는 ‘사상 해이’의 주범으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게된 것이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휘파람’을 금지곡으로 규정하자고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곳은 당 선전선동부와 인민무력부로 이들은 “휘파람이라는 노래가 혁명성이 없어 민심을 동요시키고 사상 해이를 초래하여 인민들을 바보로 만들 뿐만 아니라 조직의 기강과 규율을 깨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 문제제기는 金日成 주석에게 보고돼 동의를 얻었다고 한다. 金주석 역시 “혁명전사들이 부르주아적 날라리풍 노래에 정신이 팔려서야 되겠느냐”며 휘파람 같은 서구풍 가요를 금지시키라고 전 행정기관에 지시했다고 한다. 또 휘파람을 작곡한 이종오와 이 노래를 주 레퍼토리로 갖고 있는 普天堡전자악단에 대해서도 ‘수정주의에 물든 자’라고 비판을 가한 뒤 사상성 강한 가요를 창착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는 ‘사회주의 우리거야’라는 ‘뻔한’ 노래가 올해의 청소년 가요로 지정됐다고 한다.

 이같은 사회 분위기 변화는 △사찰기관 공조체제 강화를 통한 주민감시 강화 △전쟁 임박설 유포 등 최근들어 부쩍 높아지고 있는 강경무드와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같은 현상은 북한사회의 탄력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반증이어서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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