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모습 되찾는 신안·완도 유물선
  • 김선엽 기자 ()
  • 승인 1990.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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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문화재 보존처리장서 복원작업 한창

7백여년의 긴 잠과 근 9년간의 引揚期를 거친 신앙 해저유물선이 지금 제 모습을 찾기 위해 8년계획의 복원과정을 밟고 있다. 1975년 겨울, 新安의 고향집에 들른 한 국민학교 교사가 개 밥그릇 · 재떨이 · 꽃병 등으로 쓰이고 있는 질그릇들이 ‘보통물건’이 아니라고 생각, 당국에 신고함으로써 시작된 수중 대발굴작업은 지난 84년의 선체 인양을 끝으로 완료됐다.

 ‘뭍으로 오른’ 신안선. 그러나 배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크고 작은 5백63개의 파편만이 있을 뿐이었따. 인양해역의 물살이 빠르고 선체가 뻘 깊숙이 박혀 있었기 때문에 “해체인양이 불가피했다”는 것이 당시 발굴에 참여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인양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으로 이루어졌다. 물속의 視界가 0상태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잠수부 한명이 침몰선체에 매달려서 선체를 차례대로 뜯어낸 다음 이를 다른 잠수부에게 건내주어 이 잠수부가 해상에서 대기하는 요원에게 인계하는 것이다. 그러면 해상 대기 요원은 심해에서 끌어올린 나무조각에 일련번호를 붙이는 식이었다.


복원팀의 창의성.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현재 복원작업은 문화재연구소 목포보존처리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처리장은 신안선 인양을 계기로 설립되었으며 앞으로 발굴, 인양되는 각종 목재문화재의 과학적 보존과 복원사업에 주력할 것이라는 게 崔光南소장의 말이다. 崔소장은 신안선 복원작업이 8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92년 중반쯤 끝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고선박의 성공적 복원 여부를 판가름하는 것은 ‘水沈木’의 효과적 보존처리이다. 수침목은 오랜기간 동안 물속에 잠겨 있던 목재를 말한다. 수침목은 일반 목재에 비해 조직력과 강도가 크게 떨어진다. 그 직접적 원인은 미생물의 공격 때문인데, 육안확인은 불가능하지만 수침목은 과포화 상태의 수분을 함유하고 있다. 따라서 갑작스럽게 대기중에 노출시킬 경우는 심한 변형이 일어난다. 이같은 예는 최근 문제가 되었던 일본 후지노키 고분발굴과도 비슷한 것이다.

 복원팀은 수침목내 수분제거를 위해 PEG(Polyethylene glycol)법을 채택했다. PEG를 수침목재에 침투시켜, 수분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PEG로 메꾸는 방식으로 목재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크다. 복원팀은 특히 수분함량에 따라 PEG의 농도를 달리하는 다단계 처리법을 개발했는데, 이는 국제적으로도 창의성과 안정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이 최소장의 설명이다. PEG처리에는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정도가 소요된다. 복원팀은 87년 인양 목재파편을 5분의1로 축소해 모형선을 만들었고, 지난해말에는 10분의1 모형도 제작했다. 실무책임자 金鏞漢씨는 “선체구조물 중 45%정도가 회수된 상태에서 정확한 모양을 추정하는 작업은 다소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면서 ”그러나 대체로 잘 맞았다"고 말했다.

 예비 복원 결과 신안선은 길이 약 32m, 폭 약 10m에 적재중량 2백톤 정도 규모로, 龍骨(배밑 가운데를 지나는 중심골격)을 가진 尖?형(배의 단면이 역삼각형) 대형선박으로 밝혀졌다. 또 배좀벌레 등 해충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표면에 廣葉杉材를 덧붙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목포 보존처리소에서는 84년 전남 완도군 약산면 앞바다에서 발견된 ‘莞島船’에 대한 보존처리도 병행하고 있다. 신안선이 중국 元代의 선박인 데 반해, 완도선은 고려시대의 배로 우리배의 원형을 찾을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완도선은 길이 9m, 폭 3.5m, 적재중량은 10톤 정도로 추정되는 沿岸船이다. 완도선은 이른바 바닥이 평평한 平?선인데, 한국산 소나무로 제작되었다. 김용한씨는 “신안선이 철못을 사용한 데 비해 완도선은 나무못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조립식’일 수도 있었다"고 추정한다. 출어기가 아닌 때는 해체해서 보관했다는 설명이다. 완도선은 또 해충의 피해를 막기 위해 목재의 표면을 약간 그을리는 煙火법을 사용했는데 이 역시 신안선과 좋은 비교가 되고 있다.

 또한 신안선은 2개 이상의 돛이 있는 多帆船이었던 데 반해 완도선은 홀돛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돛대가 여럿일수록 정교한 항해를 할 수 있다. 가로방향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橫强度 部村에서 역시 양 선박은 차이를 보인다. 신안선은 총 7개의 격벽을 사용, 안정을 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완도선은 加龍木으로 좌우현을 고정시키고 있다. 그러나 양선박은 ‘홈붙이 클링커식’이라는 공통된 접합방식을 취하고 있다. 선박판재의 접합은 클링커식과 ‘카벨’식으로 크게 구분되는데, 카벨이 진화된 방식이다.

 고선박의 복원은 스웨덴 독일 등 유럽의 소수국가에 선례가 있었지만 동양권에서는 대단히 드문 실정이다. 70년대 중반 중국 泉州에 발견된 12세기경 宋代해선이 지금까지는 유일한 것이었는데 복원처리에 많은 문제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우리의 신안선과 완도선 복원은 동양권 최초의 과학적 작업으로 세계 학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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