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지배도 미국이 유력”
  • 워싱턴·이석렬 특파원 ()
  • 승인 199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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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후쿠야마 박사 인터뷰


 프랜시스 후쿠야마(39)는 시카고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으로 하버드대학에서는 정치학을, 예일대학에서는 비교문학을 각각 전공하여 두 대학에서 따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 국무부 소련전문가이자 권위있는 민간정책연구기관인 랜드 연구소 연구위원인 후쿠야마 박사를 그의 워싱턴 사무실에서 만났다.

 

자유민주주의가 인류의 최종 정부형태라는 확신에 대해서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십시오.

간단명료하게 대답하기가 곤란하군요. 내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부문에 대해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과정을 눈여겨볼 때 인류 사회가 어떤 한 방향을 전진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과학 이론으로도 뒷받침되고 있다고 봅니다. 비근한 예로 아시아 나라들을 볼 때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 한국 대만의 경우가 그렇고, 요즘 태국에서도 그런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역사란 무엇입니까?

내가 말하는 역사란 흔히 말하는 그런 역사가 아닙니다. 나는 인간사회 발전 전반을 역사라고 말합니다. 즉 원시시대 부족사회 농경문화로부터 왕정·귀족정치·神政체제 등 여러 형태의 사회를 거쳐 오늘날 사회주의·민주주의에 이르게 된 사회발전이 바로 역사입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체험해온 발전 경험을 통틀어 말하는군요.

바로 그것입니다. 어찌 보면 카를 마르크스가 언급한 역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발전 형태를 염두에 두면 됩니다.

 

역사를 만드는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두 가지 動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자연과학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 선진 공업국가들이 이룩한 현대기술에 의한 사회발전이라는 경제적인 측면을 꼽을 수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이 발달하고 경제가 번영한 나라에서 공통으로 나타난 현상은 사회의 도시화, 국민의 교육수준 향상, 전통적인 사회관계로부터의 이탈과 새로운 관계로의 전환 등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의 사회가 다들 비슷해진 것이지요. 다음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남에게서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욕구가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회란 본질적으로 인권이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 본성을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설명한 마르크스주의를 탓할 수도 있습니다만··· 정치나 종교 또는 민족주의 운동 같은 것을 보면 중요한 사건들이, 그리고 민주주의 그 자체만 하더라도 경제적인 이유에서보다는 인간 존엄성을 인정받으려는 욕구 때문에  발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욕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희생을 스스로 감수하기도 합니다.

 

‘역사의 종언’ 이후 인류가 직면하게 되는 새도전이란 무엇입니까?

안정된 민주주의 제도라는 테두리에서 볼때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대외경제 경쟁력의 약화라든가 질이 떨어지고 있는 교육제도 같은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특히 로스앤젤레스 폭동사건에서 보았듯이 흑인의 사회적 융합 문제도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발전도상 국가의 경우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사상적으로 사회를 좌나 우로 갈라놓는 그런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현대 민주주의 사회가 함께 겪는 경험으로 해결이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민족주의·종교·전통문화 같은 것 때문에 숱한 사람이 피를 흘리거나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통하는 길목에 가로놓인 걸림돌입니까?

물론 이런 것들은 당장 민주주의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옛 소련에서 보듯이 민족주의 운동으로 사회가 혼란해진 것은 어디까지나 과도 현상입니다.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로 가는 한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종교문제로 이슬람 국가를 세우는 나라가 좀더 관대하고 민주적인 체제로 변화하기까지는 훨씬 더 긴 세월이 필요할 것입니다만 결국에는 체질개선이 있으리라 봅니다.

 

책 제목에도 나오는 ‘마지막 인간’은 누구입니까?

독일 니체 철학에 나오는 역사발전 과정이 종점에 도달했을 때 즉 번영과 평화의 전성기(완성기)에 사는 모든 의욕을 상실한 인간을 말합니다.

 

역사발전 과정을 철저하게 믿는 귀하는 마르크스주의자입니까?

아닙니다. 지금 공산주의가 망한 단계에서 사람들은 공산주의 이론이 말짱 쓸모 없는 것처럼 무시해버리는 경향이 지배적이지만 이것은 지나친 태도라고 봅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 가운데 어떤 부분은 사회과학적으로 아직 쓸모가 있습니다. 가령 계급론 같은 것이 그렇고 그의 역사에 대한 개념도 그렇습니다.

 

북한이 자유민주주의로 반드시 방향을 바꾼다고 보십니까?

만인이 증오하는 그런 체제란 한번 무너지면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이 깡그리 망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보지 않았습니까. 북한이라고 다른 공산주의 나라와 다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공산주의조차 소련서 수입한 사상이고요. 그 사회 모든 형편이 비참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더욱 황량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일성이 죽고 후계자문제로 권력투쟁이 벌어졌을 때 일반적인 견해로는 다음 실력자는 반스탈린주의자가 나올 것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이 역사발전 과정의 한 부분이라고 보십니까?

인간사회 발전상 모든 사회가 자유민주주의로 치닫고 있다는 나의 견해를 바탕으로 해서 말한다면 한반도의 통일은 분명히 역사발전 과정입니다.

 

한반도 통일 시기는 언제쯤으로 보십니까?

북한의 붕괴와 관련된 것으로 김일성의 사망 그리고 권력다툼, 대강 이런 관점에서 과히 멀지 않다고 봅니다.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를 꿈꾸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현실로 다가온 것입니까?

꿈도 아니고 현실도 아닙니다. 오랜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세계경찰관 노릇을 해오면서 미국인들은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또다시 그런 역할을 맡는 것을 다들 싫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미국인들이 세계적 관심사를 모른척하고 고립주의로 돌아서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남의 나라 일에 많은 돈을 쓴다든가 미국 군대를 보내어 간섭하는 일을 꺼려할 따름입니다. 군사력 하나만 보면 미국은 초강대국입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빚이 많고 풀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21세기는 누가 지배하게 됩니까? 레스터 더로는 통합 유럽이나 일본이 지배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는데요.

국제 관계에서 요즘 힘이 아시아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일본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미국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약점을 말한다면 외국인을 도외시하고 자기네끼리 똘똘 뭉쳐 끼리끼리만 일을 추진하고 있는데, 일본의 이런 방식은 세계 흐름에 전혀 안 맞는 것입니다. 무역뿐만 아니라 기술과 자본 등이 국제경제화로 국경없이 자유롭게 이곳저곳에 스며드는 판에 될 말입니까. 유럽에서는 국가 간의 물리적 장벽이 헐리고 있지만 일본이 한국인이나 필리핀 사람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맞아들인다는 것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보면 경제발전상 인구이동이란 요원한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한편 유럽이 하나가되기까지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은 그런대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중국은 10년 전과는 퍽 다르다고 봅니다. 서기 2천년대의 중국은 어떤 모습일까요?

분명해 보이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체제로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지금 45세 아래의 중국 사람들 가운데는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고 합니다. 80 고령의 현 집권자들이 무대 뒤로 사라진 뒤 체제변화는 불가피해질 것입니다.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로 바뀌지는 않더라도 공산주의 집권이 아닌 상당히 개방된 독재정권으로 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워싱턴·이석렬 특파원

 

북한도 다른 공산주의 나라와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 사회 모든 형편이 비참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더욱 황량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일성이 죽고 후계자 문제로 권력투쟁이 벌어졌을 때 다음 실력자는 반스탈린주의자가 나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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