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비 권좌 되찾을까
  • 워싱턴 · 이석열 특파원 ()
  • 승인 199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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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 그는 언제, 어떻게 복귀할 것인가. 그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러시아 사회가 정상적인 헌정질서를 따라 발전해 나간다면, 고르바초프가 재집권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옐친의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3년 후 그는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후보의  제한 연령보다 많은 67세가 된다.

 그러나 오늘 누구도 러시아 정국이 정상적인 발전 과정을 밟을 것이라고 단언하지 못한다. 고르비 또한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지금 인민들은 파산의 벼랑 위에 서있다”고 한 최근의 지적은 그의 정치적 경험과 세계적 명성이 빛을 발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또 다른 ‘예언’으로 들린다.

 극심한 과도기에 처한 요즘 러시아 사회에서 다음 세가지 조건은 고르바초프가 다시한번 역사의 무대에서 각광받을 날을 재촉하는 것으로 지적된다.

 첫째, 점차 커지는 기술관료들의 저항이다. 최근 ‘실용주의자들의 정당’으로 결성된 ‘부흥연맹’이 그같은 저항의 핵심 조직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그리고리 야블린스키가 주도하는 일단의 전문가 그룹이 작성한 현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적 보고서는, 양자 사이에 직접적인 정치적 연관은 없지만 이를 반대파의 이념적 강령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조만간 그들은 고르비의 높은 국제적 위신과 자신들의 요구를 결합하려 할 것이다.

 

아직은 ‘안개속의 그림자’ 같은 상황

 둘째로, 올초부터 취해진 ‘가격자유화조치’가 초래한 물가폭등과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저임금, 대규모의 실업 위협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일반 인민 사이에서 번져가는 옛 사회주의에 대한 향수이다.

 이제 막 도입된 ‘난폭한 자본주의’가 안정된 생활을 위협한다고 여기는 이같은 분위기는 이미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폴란드 대중에게 바웬사의 인기는 공산주의자였던 야루젤스키보다 겨우 몇% 앞설 뿐이다. 발트 3국 중 하나인 리투아니아에서는 공산지도자 브라자우스카스가 급진주의자 란스베르기스와 막상막하로 경쟁하고 있고, 그루지야에서는 이미 셰바르드나제가 최고권력을 행사한다.

 이같은 상황은 지금까지 비판받아온 고르비의 사회주의적 정서가 그의 재등장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보증해주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방증이 될 만하다.

 마지막으로, 최근 심화되어가는 러시아 헌정질서의 위기 문제이다. 지난 4월의 제6차 인민대표자대회에서 통과하지 못한 토지사유화문제와 대통령권한 강화를 골자로 하는 정부의 헌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려고 가두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옐친은 의회 해산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렇게 될 경우 루슬란 하스브라토프 최고회의 의장은 필경 정면대결을 택할 것이고 러시아 의회는 정치투쟁의 새로운 진원지가 될 것이다.

 이 모든 조건들이 고르바초프라에게 “강을 두 번 건너는” 기회를 가져다 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옐친 대통령의 견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공산당 보수파의 우두머리였던 리가초프도 최근 ‘공산주의체제를 망쳐놓은 장본인’으로 고르비를 지명해 옐친과는 또다른 편에서 고르비의 행보에 장애물을 설치했다.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언론이 고르비를 대하는 시선도 곱지 않다. 아직은 아무것도 확실히 말할 수 없는 ‘안개 속의 그림자’ 같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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