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는가
  • 박 권 상 (주필) ()
  • 승인 1990.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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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상이 이렇듯 시끄럽고 이렇듯 불안한가. 왜 우리사회에 위기의식이 눈에 띄게 고조되고 있는가. 학생데모 때문인가. 아니다. 학원은 지난 10년간 그 어느때보다도 평온하고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부 학원에 소요가 있으나 주로 학원 자체내 모순 · 부조리가 몰고 온 것이고, 일부 급진파 운동권들학생들의 움직임도 다수 학생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오늘의 위기가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파업 때문인가. 아니다. 며칠 전 현대중공업 노조간부 고발문제로 말미암은 노사분규가 벌어져, 경찰병력이 투입되어 농성중인 노동자들을 강제해산시켰고, 그로 말미암아 전노협 중심의 항의파동이 있으나, 적어도 그 이전까지만 해도 노동자의 대규모 파업으로 주요산업이 마비되거나 교통 · 통신이 중단되어 시민의 발이 묶인 일도 없었다. 노사분규는 작년에 비해 현저히 줄었고 부당한 임금인상 요구도 눈에 띄지 않는다. 엄청난 통화팽창이 몰고온 10년래의 물가고에도 다수 근로자들은 지나친 임금인상이 결국은 인플레를 가속화시키고 그것이 다시 임금인상을 재촉한다는 악순환의 논리를 이해하고 있는 듯싶다.

 이 땅의 학생들이나 노동자들 사이에 급진세력이 세를 잃어가고 온건화되고 있다는 것은 결코 피상적인 관찰이 아니라, 그것은 국제적으로 공산주의의 파탄이 몰고온 세계적인 추세임을 손쉽게 알 수 있다. 인간의 자유와 시장경제를 부정한 ‘비극의 유토피아’가 결국은 均富아닌 均貧으로 몰고갔다는 것, 공산주의는 “또 하나의 무너진 바벨탑”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천진난만한 이상주의자거나 시대착오적인 교조주의자일 것이다.

지배엘리트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

 오늘의 위기는 그러면 무책임한 야당의 선동 때문인가. 결코 아니다. 한때, 시국 불안정의 근원을 ‘여소야대’의 세력관계로 핑계삼았다. 2년전 총선거는 여당에 1백25석, 야3당에 1백65석을 보내주었다. 야3당이 연합했던들 언제든지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었고 대통령을 제외한 어떤 공무원도 과반수찬성으로 탄핵소추해 직능을 중지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정부라도 공세가 단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이제 야당은 70석의 평민당과 홑 8석의 민주당(가칭)밖에 없다. 그들은 온건야당이며 노태우정권 타도를 선동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오늘 국민의 마음을 불안케 하고 위기의식을 고조시킨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한마디로, 이 나라를 지배하는 지배엘리트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직성과 신뢰성, 그리고 정책의 일관성에 금이 간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하는 일을 아무리 믿고 따라가려 하지 않는 것이다. 6공출범 후 정부정책의 기본방향은 토지공개념의 도입 등으로 부동산투기를 뿌리뽑겠다는 것이요, ‘실명제’실시로 조세에 형평을 기하고 사회정의를 이룩하겠다는 것인데, 불과 2년에 그러한 공약은 어찌 되었는가. 실명제 실종 등 ‘가진자’ 편의대로 역행하였는가 하면, 돈이 없어 투자를 못한다는 재벌기업이 작년 1년 부동산을 사들인 액수만 3조가 넘었다는 보도. 어처구니없다.

 6공 2년에 내무장관이 다섯번이나 갈렸건만, 민생치안은 날로 나빠지고 있다. 경제기획원장관이 세번이나 갈렸는데도 집값 · 전세값은 몇배가 뛰었고, ‘국민주 보급’이라는 달콤한 홍보선전에 심지어 농민까지 소팔고 논팔아 뛰어들게 한 증권시장은 어찌 되었는가.

 특히, 민정 · 민주 · 공화 3당이 합당한 지 1백일, 민생고는 외면하고 쉴새없이 계속되는 민주자유당내 당파싸움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구국 차원의 결단”으로 “민주발전, 국민화합, 민족통일”을 이룩하겠다던 이른바 ‘新思考’은 어디로 날아갔고, 노골적 黨權장악과 大勸쟁취를 둘러싼 추악한 泥戰鬪狗劇만 연출하고 있다.

 그 바람에 작년 ‘청와대대타협’ 때 합의된 지방자치계획은 공연히 국민의 가슴만 부풀게 했을 뿐, 간데온데 없고 광주보상법이라든가 기타 개혁입법은 민자당 발족 후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국민의 심판은 준엄하다

 국민의 심판은 준엄하다. 민자당 산하 사회개발연구소가 4월중순 실시한 정당지지도 여론조사결과는 충격적이다. 원내 2백25석의 민자당지지가 14%, 70석의 평민당지지가 18.8%, 그리고 8석의 민주당지지가 23.8%라는 것, 불과 14%의 국민지지밖에 없는 정부여당이 어떻게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겠는가. 위기의 본질이 다름아닌 정부 · 여당에 대한 전면 불신을 자초한 데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동상이몽 3당합당이 처음부터 해서는 안될 무리수였다는 인상이었고 그들의 합작이 급하고 어려운 국민생활은 아랑곳 없이 순전히 정권연장과 누가 차기 당권 · 대권을 잡느냐의 밀실거래였음이 잇따른 내분과정에서 드러난 데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당원과 국민을 어떻게 보고, 그렇듯 몇몇 사람들이 당과 국가의 운영을 밀실에서 결정한 것일까.

 민자당은 얼마 후, 창당대회를 열어 총재에 대통령을 추대하고, 대표최고위원 및 최고위원을 뽑는다. 그러나, 창당대회에 즈음하여 14%지지밖에 없는 집권당이 무슨 재주로 국가를 이끌어갈는지, 여기에 대한 명백한 비전을 제시하여야겠다. 그보다도 이질적인 세 정파가 계속 당권경쟁을 지속할는지 아니면 어떤 형태로든지 화학적 용해를 통해 결집력을 이룰 수 있을는지 여기에 대한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이 안심할 수 있고 위기의식을 씻어버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할진대, 차라리 합당의 잘못을 대담하게 인정하고 깨끗하게 分黨하여 뜻맞는 사람들끼리 딴살림을 차리고, 그러나 大局的으로 정책연합을 편다든지 연합정권을 구성함으로써 보다 생산적인 정국안정을 기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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