蘇국민 모두 ‘新思考’지지
  • 임홍빈 (월간 <문학사상> 발행인) ()
  • 승인 1990.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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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본 페레스트로이카

“페레스트로이카는 총성없는 혁명이다. 만약 실패하면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고르바초프의 이 비장한 선언에는 그가 지향하는 대개혁정치의 중요성과 심각성이 농축되어 있다.

나는 작년 11월초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바로 그 이튿날,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두달간, 혹한의 소련과 동유럽의 역사적 전환의 현장을 목격하는 행운에 들뜨기도 하며 신들린 사람처럼 뛰어다녔다.

무엇보다 소련에 대한 큰 관심사는, 아직도 정체를 다 드러내지 않은 페레스트로이카 혁명을 나름대로 파악해보자는데 있었다. 그래서 여러 계층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어느 계층을 가릴 것 없이 페레스트로이카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서민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페레스트로이카로 인해 해마다 경제사정이 악화되고, 물자부족으로 가중되어가는 생활난이 극심하다며 마구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다.

대학출신의 한 택시운전사는 이렇게 말했다. “페레스트로이카 5년에 폭넓은 자유를 얻은 것은 좋지만, 지지부진한 성과에 지쳐 있다. 그러나 대안이 없으니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나는 당원증을 작년에 반납했고 나의 친구들도 대부분 탈당했다. 공산주의는 이제 생각조차도 하기 싫다.” 소련에 체재중인 재미교포 러시아 문학가 김진영씨는 그 운전사의 말이 소련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도층 인사들은, 거의 예외없이, 어떤 개혁에도 마르크스ㆍ레닌주의의 포기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최고회의 의원을 겸직하고 있는 동방연구소의 미하일 카피차소장은 “페레스트로이카는 2~3년간 이념의 공백과 혼돈을 초래하겠지만, 마르크스ㆍ레닌주의는 절대불변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의무성의 프레스센터에서, 동방연구소의 빅터 킬리첸코 국제부장, 세계경제ㆍ국제관계연수고(IMEMO)의 블라디미르 레스베크국제부장과 합석해서, 함께 맥주잔을 기울이며 환담한 자리에서도 페레스트로이카는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그들은 영어는 물론 일본어도 유창하게 말하는 소련의 엘리트들이다. 그들은 입을 모아 어떤 변화에도 원칙은 고수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30년의 黨歷을 지닌 킬라첸코는 “만약 공산주의를 포기하면 대중봉기가 일어날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페레스트로이카와 공산주의와의 모순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일찍이 “공산주의는 그 이론을 사유재산제의 폐지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그러나 바야흐로 70년의 실험결과 소련식 소유제도는 사회전반에 걸친 낙후와 정체 그리고 ‘노멘클라투라’라고 하는 악명높은 특권층의 양산과 무산대중의 사회적 소외를 초래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페레스트로이카 탄생의 원인과 근거는 바로 거기에 있다. 이제 고르바초프 스스로도 “사회주의적 소유의 다양화”를 강조한 건 자본주의적 소유제도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사정이 악화되어가는 것은 정치적 자유에 따른 노동자들의 태만에도 기인하고, 노동자 6~7명에 한사람꼴로 있다는 관리자층의 방해 때문이라는 소리도 파다하다.

지난 여름부터 시작된 광산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올겨울은 석탄부족이 크게 우려된다고도 했다.

자주 터져나오는 고르바초프의 실각설은 소홀한 월동대책에도 원인이 있는 듯하다. 영국의 권위지 <이코노미스트>는 나폴레옹 군대와 나치 독일군이 모스크바 침입에 실패한 까닭은 무서운 추위 ??將軍 때문이었다고 전제, 고르바초프 실각의 가능성을 짙게 비쳤다. 그러나 나는 공개되어 있는 크렘린 안의 참관을 위해 스파스카야 탑아래 출입문에 들어서면서, 나처럼 미수교국 여행자도 아무런 검문을 받지 않고 권력 핵심부의 울타리안을 드나들 수 있다는 건 내일은 모르지만 현재는 그가 민중의 지지를 확고히 받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레닌이 미이라가 되어 누워 있는 붉은 광장안의 레닌묘를 몇차례 찾았으나, 그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의 시신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1년에 3개월은 문을 닫고 특수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아쉬움은 그의 영원히 잠든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일이다.

나는 그를 만나면 일하게 꼭 묻고 싶었다. “당신이 살아 있다면, 오늘의 이 蘇연방을 어떻게 이끌어가겠습니까.” “고르바초프가 당신의 ??敎者로 변신해가고 있지만 ‘新思考’로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냉전체제에 종막을 고하게 하고 부질없는 무력경쟁 대신에 모든 힘을 경제재건과 복지정책에 집중하고 있는 그에게 박수를 보내며 격려하지 않으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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