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를 예찬하며
  • 한완상 칼럼 ()
  • 승인 1990.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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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라 안팎에서는 하늘과 땅이 함께 곤두박질하듯 큰 정치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선거나 혁명을 거치지 않고서도 야당이 집권당이 되는 한국적 정치지진이 일어나더니, 지난 5일에는 소련에서 볼셰비키 혁명 이후 최대의 정치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공산당의 1당독재를 종식시킨 고르비(고르바초프이 애칭)의 정치적 마술에 온 세계는 또다시 감탄했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세계역사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 들고 있습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아직도 20세기이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이미21세기에 들어선듯합니다. 계급보다 인간이, 영토보다 시장이, 무기보다는 지식정보가 더 중요해진 새 시대에 우리는 진입하고 있습니다. 특히 상대방을 악마로 몰아붙이고, 그 惡性의 永遠不樂性을 맏는 불신과 증오와 대결의 형이상학이 고르비의 개혁열기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한 인간으 등장으로 얄타 냉전체제라는 엄청난 세계구조물이 허물어진다는 사실이 우리를 경탄케 합니다. 고르비의 정치적 신통술에 홀려 입을 다물 수가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고르비의 실험과 실천을 구경할 만큼 한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를 찬탄하고 있을 만큼 태평성세에 살고 있지않습니다. 우리는 피눈물을 흘리더라도 그로부터 배울 것은 배워 실천으로 옮겨야 합니다. 도대체 그로부터 배울 것은 무엇입니다까? 특히 이땅의 정치지도자들이 배워 실천해야 할 고르비의 지도력이 무엇일까요?


이땅의 정치지도자들이 배워야 할 언행일치

  첫째 그의 확고하고 일관성있는 言行一致입니다. 먼저 그는 소련관변측의 제도화된 거짓을 솔직히 시인했습니다. 진실을 뜻하는 <프라우다>(당기관지)에는 진실이 없고, 소식ㆍ정보를 뜻하는 <이스베치아>(정부기관지)에는 정직한 소식이 없음을 솔직히 시인했습니다. 그래서 페레스트로이카와 함께 글라스노스트 정책을 펼쳐 무엇보다 먼저 정부의 공적 거짓말을 중단시켰습니다.

  이같은 용기있는 정직성, 개방성을 바탕으로 무서운 실천을 해내고 있습니다. 막대한 군비를 생산력 증강에 이전시키려면, 7천5백km의 긴 국경을 마주보며 긴장관계를 유지해왔던 중국과 화해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정부는 그에게 실천하기 어려운 3가지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고르비는 그 조건을 짧은 시간안에 충족시키면서 작년5월 중소정상회담을 위해 베이징으로 날아갔습니다. 무서운 추진력이요 실천력이었습니다. 뿐만입니다까. 그는 반체제 인사를 복권ㆍ복직시켰고, 자유롭게 그의 정책을 비판하도록 허용할 만큼 언행일치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지도층의 언행은 어떠합니다까?

  둘째 고르비의 매력은 악순환의 고리를 민주적으로. 평화적으로 깨뜨리는 여유에 있습니다. 60년 가까운 스탈린 체제의 억압구조가 이완되면서, 부당하게 눌려왔던 소련민중들의 욕구는 너무나 당연하게 분출되었습니다. 이러한 때 사이비개혁가는 ‘욕구분출=혼란+무질서’라는 등식을 앞세워 재도폭력으로 그 정당한 욕구를 다스립니다. 그러면 악순환은 재가동됩니다. 4공,5공 때 흔히 체험했던 사실 아닙니까? 헌데 자신있는 민주개혁가는 국민의 욕구분출을 오히려 창조의 자원 활용합니다. 그 분출하는 에너지를 변혁의 水力과 火力으로 발전시킵니다. 고르비는 안으로 국민들에게 자유로은 민주선거를 허용함으로써, 그리고 밖으로는 동유럽에 강제이식된 스탈린 체제의 해체를 고취시켜 그 해체효력을 국내로 逆流시킴으로써 구내 냉전보수세력을 평화적으로 퇴진시키고 있습니다.

한민족이 웅비하려면 반개혁적 냉전세력 물리쳐야

  셋째로, 그이 개혁은 총체적이고 근본적입니다. 경제성장 먼저하고 정치발전 나중하는 우리의 유신체제 형식도 아니고, 先정치 민주화, 後경제안정을 도모하는 아르헨티나식도 아닙니다. 토대의 변혁은 그에 조응하는 상부구조의 개혁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기에 경제개혁과 정치다원화를 함께  추진합니다. 게다가 그의 변혁은 스탈린 체제의 부정에 있어서 근본적입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적했듯이 그의 변혁은 코페르니쿠스, 다윈, 그리고 프로이트의 변혁을 합친 것과 맞먹을 정도로 획기적이고 근본적입니다. 적당히 땜질하는 차원에서 개혁을 얼버무리려는 후진적 지도층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습니다.

  이제 세계는 고르비의 변혁정치에서 한줄기 인류의 희망과 역사의 진보를 확인하는 듯합니다. 그러기에 자본주의 강대국 미국의 유력 시사주간지 《타임》마저도 그를 1980년대 인물로 선정하지 않았습니까? 만일 그의 변혁이 앞으로 10년간 계속 구체화된다면 1999년에 가서 그는 20세기의 거물들인 처칠, 레닌, 루스벨트, 간디,아인슈타인 등을 물리치고 당당히 20세기의 인물로  격상될 것입니다.

  그가 일으키고 있는 개혁의 훈풍은 체체, 이념,인종, 문화의 장벽을 넘어 온 세계에 불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한반도에는 냉전의 빙벽이 두터워지는 듯하여 아타깝습니다. 남북체육회담이 무산된 것도 남북 양쪽에 깊이 뿌리내린 냉전적 불신 때문이지요. 북의 냉전세력이 극좌적 스탈린주의자들이라면 남의 그것은 극우적 反민주세력입니다. 이런 세력은 反歷史的이요 反人間的이기에 마땅히 물러나야 합니다. 정말 韓民族이 이제 大마으로 웅비하려면, 대붕의 날개를 잡고 늘어지는 반개혁적 냉전세력을 정치지도자들은 과감히 물리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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