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뿐인 장애니 福祉] “취업, 아직 먼 길”
  • 김선엽 기자 ()
  • 승인 1990.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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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기능직ㆍ생산직이 고작…고급전문직 진출 길 트여야

“장애인올림픽을 치르고 나면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죠. 장애인들을 이상한 시각으로 보는 일반인들의 인식도 어느 정도 개선되고 정부 쪽에서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전혀 달라진 게 없어요. 하기야 그렇게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올림픽도 까마득히 잊혀진 판인데 그깟 장애인올림픽이 뭐 대수겠어요. 애시당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한 것 같아요.” 장애인 취업문제를 취재하러 간 기자를 보고 어느 복지기관에 몸담고 있는 관계자는 이렇게 자조섞인 말과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장애인복지정책에 거의 변화가 없는데 취업이라고 예외일 수 있겠느냐는 푸념이었다.

하기야 정상인들, 특히 고학력자들조차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장애인들의 취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욱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해가는 현대사회에서 교육과 기술습득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이고 보면 그들 스스로 생존을 해결하라고 방치하는 건 무책임한 처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현 시점에서 보면 상황은 암담하기만 하다. 84년, 장애자 고용권장지침(보사부훈령 제482호)이 내려져 보사부 및 소속기관, 관련단체 직원의 2~3%를 장애인으로 충원하도록 하고 그 이후 서울시, 총무처 등에서도 장애인을 채용하고 있으나 처음 계획과는 달리 그야말로 극소수만이 기회를 얻고 있을 분이다. 국가기관이 이 정도이니 일반기업체는 말할 것도 없다.

현재 장애인들에게 직업재활훈련을 실시하고 있는 곳은 서울장애자종합복지관, 서울남부장애자종합복지관, 국립재활원, 삼육재활원 등 재활시설과 공공직업훈련원 등을 합쳐 전국적으로 약 1백여군데에 이른다. 이중 보건사회부 산하기관인 국립재활원의 경우 14~30세의 장애인을 대상으로 적성과 장애종류 및 정도를 고려, 적절한 기술을 익히도록 하고 있다. 훈련직종은 건축제도, 사진식자, 전자기기, 양재, 컴퓨터, 금속…목제공예, 특수용접, 기능훈련 등 8가지. 기간은 1년이고 비용은 무료다. 그러나 개인별 능력차가 심하기 때문에 교육기간은 천차만별인데 오는 2월15일 수료식에도 유급된 훈련생 29명을 제외한 40명만이 참석하게 된다.

한국장애자재활협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서울남부장애자종합복지관도 비교적 체계적인 직업훈련을 실시하는 기관 중 하나다. 역시 상담을 통해 능력과 적성에 따라 컴퓨터, 타자, 사진식자, 공예, 세공, 전기, 전자, 수예, 자수 등의 훈련기회를 제공한다. 기간은 보통 3개월이며 적응도를 높이기 위해 자체내 시설이 아닌 일반 산업현장에서 위탁교육을 하고 있다. 자립이나 취업이 어려운 중증 장애자들의 생계를 위해 보호작업장도 갖추고 있으며 올해에는 뇌성마비…정신장애자만을 수용할 직업활동센터도 병행운영할 계획이다. 지난해 보호자립장에서 작업한 장애인은 남녀 합쳐 30명으로 이들의 한달 평균임금은 14만원이었다. 또 이들과는 별도로 직업훈련을 받은 장애인들의 지난해 취업률은 78%로 높은 편.


직업훈련프로그램의 대부분이 사양 직종

‘정립전자’라는 상호까지 내걸고 비교적 큰 규모의 자립작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정립회관도 시설…대우면에서 그중 좋은 편이라고 하지만 역시 만족할만한 수준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작년 삼성전자측과 공동출자, 음향기기 부품을 조립하고 있는 정립전자 근무 장애인은 모두 1백37명. 역시 중증 장애로 인해 사회진출이 힘든 사람들우선적으로 채용돼 작업중인데 작업량에 따라 16~25만원의 월급을 받고 있다. 대부분이 기숙사 시설을 이용, 침식을 제공받고 있으며 1인당 한달 식비지원은 10만원. 현장관리를 맡고 있는 李柱英부장은 “일반인에 비해 작업량은 다소 떨어지지만 29개 모델 부품을 조립하는 데도 실제 불량률은 1~2%에 불과해 삼성쪽에서도 주는 일량이 작업량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어 앞으로는 3개 라인 중 1개 라인만이라도 완제품을 만들도록 하는 문제를 협의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직업재활훈련 프로그램이나 자립장이 장애인 취업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대부분의 복지시설에서 실시하는 직업훈련 프로그램이 이미 사양길로 접어든 직종에 한정되어 고급전문직으로의 진출이 불가능한 데다 저임금의 단순 기능직, 생산직 외에는 장애인을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고용주들의 인식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국립재활원의 權寧喜상담과장도 “실업상태에 있는 장애인들이 모두 일자리가 없어 취업을 못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며 “그들을 필요로 하는 곳과 당사자들의 이해가 맞지 않는 게 바로 문제”라고 지적했다. 즉 장애인이 일반인들과 섞여 근무하려면 움직이는 데 불편이 없을 정도의 시설이 갖춰져야 하는데 대기업애조차 그런 편의시설이 없는 우리 실정에서 하물며 영세업체에 그같은 설비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羅??煥대리(서울남부장애자종합복지관 직업재활과)는 또 “고학력 장애인일수록 취업문제가 심각하다”면서 “91년부터 장애인 고용촉진법에 의해 공공기관과 1백인 이상 고용사업체의 장애인 고용이 의무화되지만 대기업들과 접촉해본 결과 일단은 싱산직에 한정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 전망이 밝지 않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서 “자립이 힘든 장애인들의 기본생활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보호작업장도 당장 생계수단은 되지만, 재활의 최종목표인 정상인과의 공동생활 적응이란 측면에서 보면 도움이 안돼 단계적으로 일반업체 취업을 늘려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견해를 밝혔다.

현재 장애인에게 그나마 취업기회를 주고 있는 기업은 태림모피(농아사원 61명), 삼익피아노(시각장애인 4명 포함 총 20여명 근무) 등 극소수레 불과하며 기타 영세업체에서는 단순기능직에 1~2명씩 채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지체장애인이면서 장애인복지신문사에 근무하고 있는 趙根台차장은 “장애인을 채용한다고 해서 그저 선의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하면서 “몇개 회사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장애인은 임금이 싸고 이직률이 낮으며 노사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거란 타산에서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이처럼 심하게 왜곡돼 있는 장애인 취업구조가 바로 잡히려면 정부와 일반인들의 인식이 바뀌고 전폭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회사업가 金美英씨는 “시설보다 특수교육 등 전문인력에 대한 투자가 더 시급하며 장애인들에게 고급기술을 가르쳐 그 기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직종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같은 요구는 장애인을 특별히 배려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책임지고 있는 국가에 장애인도 일반인과 똑같이 행복할 수 있도록 그 의무를 다하라는, 떳떳한 권리주장”이라고 말했다.


한편 보사부의 올해 장애인복지 관련예산은 작년보다 고작 1억원 증가한 2백96억원이며 이중 취업과 관련된 예산은 7억6백만원 정도인데 이 액수도 유동적이라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또 노동부에서도 장애자 고용촉진법의 91년 시행을 위한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고만 밝힐 뿐 아직 실질적인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단기간내의 장애인 직업훈련 및 취업문제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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