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 증액 요구하는 美 ‘철군 카드’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0.05.0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美국방부 ‘동아시아전략보고서’ 통해 3단계 계획 제시

2000년까지 전쟁억지 병력만 남고 전면 철수… 분담액 증액 불가피

주한미군의 철군일정이 마침내 드러났다. 폴 월포위츠 美국방차관이 4월19일 美상원군사위에 제출한 ‘90년대 동아시아 전략에 관한 보고서’는 한국에 주둔중인 4만여 미군의 감축에 대한 최초의 구체적 청사진이란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보고서의 주한미군 3단계 철군 재조정계획에 따르면 우선 올해부터 92년까지 공군 2천명과 지상군 약 5천명 등 비전투원 7천여명을 감축하고 2단계로 93년부터 95년까지는 미보병2사단의 감축,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95년부터 2000년까지 對北韓 억지력에 필요한 미군만 주둔하고 여타 병력은 전면 철수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제2단계인 7천여명의 감축은 지난 2월 딕 체니 미국방장관의 방한시 이미 한미 양국간에 합의한 사항이기에 별로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미 제2사단의 감축기에 해당하는 2단계는 극히 의미심장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철원-문산-동두천-서울을 잇는 이른바 ‘인계철선’(tripwire) 지역에 배치돼 한반도 전쟁발발시 미군의 자동개입을 선도하는 2사단의 감축은 곧 주한미군의 본격적인 철군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재조정 보고서는 “감축규모는 남북한 관계 및 미국의 억지능력과 의도를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하는 범위내에서 점차 늘려나간다”라는 단서를 달고 있으나 대세가 일단 감군으로 결정된 이상 큰 의미를 부여할 일은 되지 못한다.

올 4월까지 주한미군의 감축 타당성을 의회에 보고토록 한 넌-워너 수정법안이 작년 11월 미의회를 통과한 후 근 6개월만에 나온 이 전략보고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한국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첫째 미국정부는 한국측에 주한미군의 철군은 대세이며 단지 시기조정만 남았다는 점을 알리고, 나아가 ‘철군카드’를 활용해 좀더 많은 방위비 분담액을 우리측으로부터 받아내겠다고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잇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정부와 국민이 원하는 한 주한미군은 계속 주둔할 것”이라는 미국정부의 공식입장에 근본적 변화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미국정부는 늘어나는 재정 및 무역적자와 최근 2~3년간 소련을 위시한 동유럽에서의 놀랄 만한 사태진전으로 국제적 긴장완화추세가 보이면서 의회로부터의 강력한 국방예산 삭감압력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특히 방위비 분담액에 대한 미국측의 관심은 높다. 4월19일 열린 미상원의 ‘동아시아 청문회’에서 샘 넌 위원장은 “한국이 경제력에 비추어 당연히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고 한국의 분담액 증액론을 펼쳤고, 존 워너 의원이 “미국은 한국과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이 자체방위를 위해 왜 지금 주도적 역할을 떠맡을 수 없는가”라며 불만을 터뜨린 것도 방위비 분담압력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우리측의 주한미군 지원규모는 88년 기준으로 연간 약 22억달러(1조6천억원)에 이르는데 88년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한국정부는 89년~91년 3년간 연합방위증강사업 지원비를 연간 4천만달러 증액하기로 합의해주었고, 작년도 SCM에서는 90년 방위비로 3천만달러를 추가부담하겠다고 합의한 바 있다.
둘째 제 3단계안에 나타나듯, 미국정부는 향후 미2보병사단의 감축과 함께 주한미군은 봊보적 역할에 그치고 대신 한국군이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을 공식화했다는 점이다.

주도적 역할과 관련, 빼놓을 수 없는 점이 작전권 반환인데 당초 정부는 늦어도 내년초까지 현재 주한미군사령관이 겸임하고 있는 지상군 사령관직을 우리측에 이양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상원청문회에서 칼 포드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부차관보가 증언했듯 그것은 93년께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군이 주도적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역으로 그만큼 자국방위에 대한 책임이 증가하고 국방비 부담이 늘어남을 의미한다. 특히 주한미군이 보조적 역할로 전환하겠다는 것은 한국측이 부담해야 할 방위비 분담액 증액과 직결되는 사항이다.

남북군축협상에서 ‘감군카드’ 활용해야

올 2월 한국국방연구원이 주최한 주한미군에 관한 세미나에서 책임연구원 吳?治박사가 “주한미군의 감축이 있을 경우 이를 보충하기 위한 추가자원투자로 약 1천4백억달러가 필요하며, 만일 향후 10년간 미군의 대폭 감축이 현실화되고 그에 따른 남북한 군사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연 국방비가 GNP의 8%(현재는 약 4.3%)에 달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한 것은 주목된다.

이번 상원청문회에서 워너 의원은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의 경우, 미국 납세자의 입장에서 볼 때 미군을 본국으로 빼내는 것보다 한국에 그냥 주둔시키는 것이 비용이 적게 든다는데 사실인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미 태평양사령부 기획국장 펜들리 해군소장이 “사실이다. 동맹국의 상당한 지원을 전제로 한다면…”이라고 말한 점은 방위비 분담정책에 대한 미정부의 심중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한미 군사전문가들은 주한미군의 감군이 확정된 이상 이를 자주국방의 계기로 삼고 향후 남북군축협상에서 우리측의 秘카드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는 미군보다 우리 현실을 직시할 때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