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가 앞장서 반환해야”
  • 도쿄 · 채명석 통신원 ()
  • 승인 1990.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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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니시야마씨 밝혀… 소장 박물관 등은 거부 반응

“한국문화재를 반환하자”. 지난 4월2일자 <아사히신문>은 역사연구가 니시야마 다케히코(西山武彦)씨의 이런 주장을 기고란 ‘논단’에 실었다.

東京都내에 살고 있는 올해 66살난 니시야마씨는 그 글에서 “무단통치를 감행한 초대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殺)가 재임중에 수탈한 한국문화재는 수만점에 달한다”고 지적하고 테라우치가 강탈한 한국문화재는 지금 “그의 고향에 있는 여자대학에 소장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또 韓末과 日帝하의 수탈로 일본으로 흘러들어간 한국문화재 전체 규모를 “국 · 공립박물관소장품, 개인소장품, 그리고 일본궁중에 있는 것을 다 합치면 수십만점에 달한다”고 추정하고, “한일우호증진을 위해서도 한국민족정신의 상징인 문화재반환문제에 일본당국은 진지한 태도로 성의를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문화재 반환주장은 며칠 뒤 발생한 골동품절도사건이 일본매스컴을 통해 크게 보도되고, 문화재반환문제가 한일간에 새로운 현안으로 부각될 조짐을 보이면서 일본국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4월19일 오후 東京都의 서쪽끝에 위치한 히가시구루메(東久留米)施의 가택을 찾아 그의 문화재반환주장을 재확인해보았다.

●골동품절도사건을 계기로 선생의 한국문화재반환 주장은 일본국내에서도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일본각지로부터 수십통의 격려전화를 받고 있습니다. 대개 40~50대의 패전 직전, 직후에 태어난 세대들로서 韓末, 日帝하의 철저한 문화재수탈사실을 기고를 보고 처음 알았다는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또 저의 반환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습니다.

●그 반환문제입니다만, 일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한마디로 말해 일본정부가 문화재반환문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가장 초점이 되고 있는 민간인소유문화재반환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일본정부가 직접 국가예산에 매입비용을 계상, 민간인소장가들로부터 실비보상방식으로 매입해 이를 한국측에 반환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지요. 경제대국이 된 일본이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또 민간인 사이에 문화재반환에 대한 시민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테라우치총독의 문화재약탈부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지요.

그는 한국문화재 수만점을 약탈, 그것을 전부 私有物로 가져갔습니다. 패전 직후 테라우치 후손들이 미점령군의 몰수를 염려, 야마구치(山口)市에 기탁해 현재는 야마구치여자대학의 어느 일각에 묻혀 있습니다. 기탁후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것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약탈문화재’의 전형이라서 그러는 겁니다.

니시야마씨는 88년에는 《한국의 건축과 예술》이란 책도 펴낸 바 있는 知韓派. 일본이 패망한 1945년에 메이지(明治)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를 경영하다 히가시구루메市 시의회의원을 2기 8년간 역임한 후, 지금은 한일 근대사연구에만 전념하고 있다.

한편 니시야마씨의 기고와 골동품절도사건의 보도가 우리문화재반환문제에 관한 일본내 여론환기에 일조를 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는 있으나, 이의 여파로 개인소장가와 관계당국자들의 경계심을 더욱 높혀준 반작용도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다.

81년 7월에 일본내 한국문화재의 兩大콜렉션의 하나읜 오쿠라(小倉)콜렉션을 기증받아 우리문화재 1천여점을 소장하고 있는 동경국립박물관의 예가 그렇다. 관장은 인터뷰요청에 건강상의 문제를 핑계삼아 거절하더니, 문화재취재 · 사진촬영까지 “미묘한 시기”라는 이유로 모두 거절해버렸다.

한국도자기소장으로 세계제일의 규모라는 아다카(安宅)콜렉션을 기증받아 82년 11월에 설립된 오사카(大阪) 시립 陶磁미술관의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취재방법을 바꿔 예고없이 불쑥 찾아간 작전이 주효했던지 이곳에서는 자세한 안내와 사진촬영의 편의를 봐준 것이다.

한말과 일제하의 수탈, 그리고 해바아 이후의 암거래에 의해 현해탄을 넘어와 이곳에 定住하고 있는 우리 문화재수는 1천여점. 총 소장품 1천3백점 중 약 8할이 우리문화재 특히 고려청자, 이조의 분청사기 · 백자인 것이다.

총무과장 도키 아츠죠(土岐三)에게 한국문화재반환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던지자 갑자기 얼굴 표정이 굳어지며 “노 코멘트”를 연발한다. 고려청자나 이조백자는 서울의 국립박물관에 전시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느냐는 집요한 질문에도 그는 “작년 가을 5점을 국보전에 출품했듯이 앞으로도 그런 협력관계를 확대해가는 것이 우선 중요한 일이다”고만 할 뿐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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