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현황 파악조차 안된 남의나라 우리 것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0.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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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일본 등에 산재… “찾는 데 지혜 모아야” 여론

문화재를 아끼는 사람들은 임진왜란을 ‘도자기전쟁’이라고 한다. 임진왜란은 끝났지만 도자기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최근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에 원정, 도자기를 ‘강탈’해온 사건으로 나라안이 떠들석한 일이 있었다. 경위야 어찌됐건 국내에 귀속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 것을 보면 한국과 일본은 문화재를 둘러사고 아직 ‘전쟁중’임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민족적 감정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를 정당한 방법으로 되찾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게 문화재를 아끼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이다.

해외 문화재 중 80%가 일본에

그러나 해외에 산재해 있는 문화재가 어느 정도인지는 전혀 현황파악이 되어 있지 않다. 현재 문화재에 관한 자료는 86년 문화재관리국문화재연구소에서 펴낸 《해외소재한국문화재목록》과 올해초 한국국제문화협회에서 펴낸 《미국박물관소장 한국문화재》 등 단 2권에 불과하다. 安煇濬교수(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는 “우리 문화재는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과 브라질 멕시코 등 남미제국, 그리고 소련까지 세계도처에 흩어져 있으나 특히 미국과 일본에 몰려 있다”면서 3만여점으로 막연히 추산되는 중요한 해외문화재 중 약 80%가 일본에 있으며 그 중에서 약 16% 정도인 4천여점이 특기할 만하다고 밝힌다.

일본에서 우리나라 문화재가 많이 소장되어 있는 곳은 동경국립박물관, 오사카市立東洋陶磁미술관, 쿄토 고려미술관 등이 꼽히지만 그외에 각급박물관, 도서관, 사찰, 그리고 여러 개인소장가 등 거의 전국적으로 퍼져 잇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해외에 잇는 문화재 중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임진왜란과 식민통치기간에 건너간 것들이지만 불법적으로 반출해간 시기는 역시 식민통치기간으로 압축된다는 게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그리고 이때 건너간 문화재 중에는 개인소장가의 손을 거쳐 현재 상당수가 일본의 각종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문화재를 수집해온 대표적인 예는 오쿠라(小倉)콜렉션과 아다카(安宅) 콜렉션. 도굴꾼을 시켜 한국에서 수많은 고분과 석탑을 파헤쳐 모은 오쿠라의 경우 소장품의 질과 양이 대단하여 고고학자료 5백57점, 조각 49점, 금속공예품 44점, 도자기 1백30여점 등 모두 1천30점이나 된다. 소장품들은 현재 동경국립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또한 한국도자기전문가 아다카 에이이치(安宅英一)가 모은 아다카콜렉션의 소장품들은 질이 매우 높아 한국도자기연구에 더없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해 9월12일부터 10월31일까지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고려청자명품특별전>에는 2백79점이 전시되었는데 그 중 9점은 일본에서 간신히 빌려서 전시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청자상감포도동자문표형주자' '청자반양가연당초문주자 및 승반' '청자음각연당초모란문장경병' 등이 그것이다. 특히 '청자상감포도동자문표형주자'는 일본에서도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金英媛씨는 중요문화재를 몇점 더 빌려 전시하려고 했으나 해외반송이 어렵다고 해서 한점밖에 빌려오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그래도 일본에서 가져온 것이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진귀한 문화재였음을 실토한다. 또 화려하고 정교한 고려시대의 佛敎繪?의 경우 일본에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만도 80여점이 넘는데 국내에는 故李秉喆삼성회장이 생전인 79년 사들인 <阿彌陀三尊圖>(국보 218호)와 <地裝菩薩圖>(보물 784호)가 현재 용인 호암미술관에 보존돼 있을 뿐이다. 또한 조선초기의 가장 대표적인 산수화가 安堅의 유일한 진품으로 알려져 있는 <夢遊桃源圖>도 일본의 天理大中央圖書館소장으로 되어 있어 뜻있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일본 다음으로 우리의 문화재를 많이 갖고 있는 나라는 미국. 한국국제문화협회가 올해초 발행한 《미국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의 자료조사단의 일원이었던 인하대 金光彦박물관장은 “이 유물들은 19세기말 한미외교수립 초기의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해방후인 1960년대의 것도 상당량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햇다”면서 “피바디 박물관에는 옛날 종로 상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苧布廛旗’도 소장돼 있다”고 말한다.

한편 최근 소련에서 ‘문화재도록’에 관한 교류제의를 받았다는 사실이 을유문화사 鄭眞肅사장을 통해 밝혀져 소련에도 우리 문화제가 상당량 유출되어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외에 대영박물관에도 상당량의 한국문화재가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이 만든 금속활자로 인쇄된 세계最古의 책 《직지심경》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 문화재들은 일본이나 구미의 여러나라로 계속해서 밀반출되고 있다. 대부분 지하에서 음성적으로 거래되어 정확한 경로를 알 수 없으나 그 규모는 상당하다는게 골동상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지난달 21이리 한국고미술협회 孔昌鎬회장 등이 보물급 문화재인 조선조 때의 <미인도>(恭齊 尹斗緖 작품으로 추정됨)를 일본으로 반출하려 하다 실패한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화재 관리국 올해 유물 구입비 3천만원

그동안 반환된 문화재는 65년 한일회담의 결과 일본정부가 한국정부에 인도한 1천3백26점이 거의 전부다. 더이상의 반출을 막기 위해서 정부는 62년에 제정한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문화재는 해외전시라 할지라도 국무회의심의의결에 따라서만(21조), 문화재가 아닌 유물도 비문화재확인서류를 첨부해야만(76조) 국외나들이가 가능하도록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정부는 또 83년 2월14일 유네스코의 ‘문화재불법반출입 및 소유권양도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에 가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젝적인 규제장치에만 문제해결을 의존할 게 아니라 ‘문화사랑’을 실력행사로 보여야 한다는 의견도 잇다.

그 한 방법으로 경매장에서 사들이는 것도 좋은 안이라고 얘기되고 있다. 87년 10월 뉴욕의 크리스티경매장에서 한국도자기 1백82점이 출품되었는데 이 가운데 최고가격으로 낙찰된 ‘용무늬청화백자’는 예정가격(최저 1만87천달러, 최고 2만5천달러)보다 3배가 넘는 금액에 낙찰되었다. “경매된 1백23점 가운데 약 80%를 일본인들이 사간 사실은 통탄할 일”이라고 말한 金光彦교수(인하대 박물관장)는 “이제는 해외교포나 국내의 재벌들이 우리 문화재를 거두어들이는 일을 할 시기가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安煇濬교수는 “정부차원의 ‘유물구입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화재관리국의 올해 유물구입비는 작년과 같은 수준인 3천만원이며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도 올해 예산 1백40억 중에서 유물구입비는 겨우 3천만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현대판 義賊사건’이라고 회자됐던 일본문화재 강탈사건 이후에 李御寧문화부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문화재보호법과 박물관법을 개정, 개인이나 사설단체의 문화재소유를 양성화하는 한편, 문화재유통과정에서의 취득세, 소득세 등도 감면받을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大檢은 19일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마산 대전 등 전국 6개 地檢에 문화재사범수사전담반을 설치, 문화재관리국소속 공무원과 경찰 세관 등이 합동으로 특별단속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을 맡았던 楊孟準 문화재전문위원은 “지난번 사건으로 내한했던 일본인 소장자 히가사 겐이치(日笠健一)씨는 현재 포기각서는 쓰지 않은 상태에서 9점 중 3점은 되찾고 싶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그가 도둑맞은 이 물품들을 우리나라 문화재법상 다시 갖고 나갈 수 없지만 법의 올가미에 씌워 단순히 처리해서는 곤란하다. 이 일을 계기로 일본으로 건너간 국보급문화재의 반환작업이 정부 차원에서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나폴레옹은 이집트에서 거석기념비 ‘오벨리스크’를 가져가면서 “이것은 약탈이 아니라 잠시 빌려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 2세기가 넘도록 아직도 오벨리스크는 파리에 그대로 남아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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