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반환, 상대국 양심에 호소할 수밖에 없어
  • 백승길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기획실장) ()
  • 승인 1990.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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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78년부터 복원촉구위원회 운영… 우리나라도 해외유출 유물 실태 정확히 파악해야

유네스코는 1970년에 ‘문화재의 불법반출입 및 소유권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조약’을 발효시켜 현재 65개국이 이 조약에 가입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이에 서명했다. 이 조약으로 문화재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여권을 소지해야 출 · 입국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60년대에서 70년대에 걸쳐서 많은 나라가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해서 신생국가들이 생겨나면서 문화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전통적인 문화, 특히 문화재가 언어와 종족이 다른 집단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 데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문화재를 이처럼 국가건설의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하나 중요한 문화재는 이미 종주국들의 박물관이나 개인의 소유물이 되어버렸다.

문화재의 반환운동은 이러한 맥락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유네스코는 74년 제18차 총회에서 대단히 중요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요지는 식민지나 외국 점령의 결과로 상실한 문화재를 원산지 국가로 반환하는 문제를 다루는 조치에 관한 것이다.

미국은 스페인에 <게르니카> 돌려줘

이 결의안은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문화재의 반환을 위한 쌍무협상을 촉진시킬 수단과 방법을 다룰 정부간 위원회를 유네스코안에 설치할 것을 요청했다. 그 결과로 78년에 ‘문화재를 원산지 국가로 반환하고 불법적으로 취득한 것의 복원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간 위원회’가 20개국으로 구성되어 출범하게 되었다. 매 2년마다 그중 10개국이 유네스코 총회에서 개선되며 우리나라도 90~93년 임기의 위원국으로 선출되었다. 이 위원회는 2년에 한번내지 두번 회의를 하는데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참가하게 될 제7차회의는 91년 봄에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열릴 예정이다.

문화재의 반환은 법적으로 대단히 복잡하고 대부분의 경우 쌍무협상으로 이루어지는데 누구도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도덕과 양심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반환을 요구하는 문화재는 대개 유일무이하나 진귀품이거나 집체유물의 일부일 경우가 많다. 실제로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중에 입수한 헝가리국왕의 왕관을 돌려준 일이 있고 피카소의 <게르니카>도 스페인에 돌려준 사례가 있다. <게르니카>의 경우는 피카소가 이 그림을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스페인에 민주주의가 회복되면 자기모국으로 보내달라는 조건을 달았었다.

현재까지 이 정부간 위원회가 알선해서 쌍무협상을 통해 많은 문화재들이 원산지국가로 반환되었지만 또한 상당히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현안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영국박물관에 전시된 소위 ‘엘진 대리석’이다. 영국인 엘진경이 당시는 오스만 터키제국의 속령이던 그리스의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에서 뜯어온 대리석 조각작품들이다. 그리스는 파르테논신전을 복구하면서 이 대리석의 반환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나섰다. 그리스는 다른 문화재들의 반환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전의 일부로서 이를테면 건축자재이므로 돌려달라고 주장한 것이다.

영국에서도 이 대리석의 반환을 둘러싸고 찬 · 반론이 양립하고 있다. 이 대리석은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서 영국으로 반출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사실상 도덕적인 입장에서 세계의 여론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제7차정부간위원회를 그리스가 유치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 같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와 인터폴(INTERPOL) 등은 이 정부간 위원회를 기술적으로 돕는 기구들이다. 전자는 박물관과 박물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윤리요강을 작성해서 이를 각국에 종용하고 있다. 세계미술상연합회도 회원들이 지켜야 할 윤리요강을 채택한 바 있다. 이러한 윤리요강을 우리도 하루빨리 채택한다면 문화재의 불법 거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유출문화재의 실태를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재관리국, 국제문화협회가 실태조사를 해서 보고서와 화집을 발간했으나 미흡한 점이 많다. 실태를 파악해야 반환을 요구할 물건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로스애니젤레스 소재 한국문화원은 자체 기관지를 통해서 미국과 유럽의 박물관과 개인이 소장한 유수한 한국문화재를 연재한 바 있어 그 대충은 어림하게 해준다.

차제에 문화재 위원회를 활성화해서 해외유출문화재의 완전한 실태파악을 하고 문화재와 박물관을 다루는 법을 정리하고 국제적인 기구에 가입해서 정보도 얻고 우리의 주장을 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외교행낭이 문화재 밀반출의 주범이라는 주장이 있다. 외교관과 주둔 군인들은 그 특권과 면책권을 남용해서는 안되고 당국도 이러한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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