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표현자유와 영화법 또 마찰
  • 이성남 기자 ()
  • 승인 1990.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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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전야> 파문 둘러싸고 16㎜영화 <파업전야>를 둘러싼 제작자와 당국의 공방전은, 법정시비가 아직 끝나지 않은 <오! 꿈의 나라>에 이어 또다시 ‘아마추어 영화의 한계를 어디까지 둘 것인가’라는 쟁점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기존 소형영화의 제작관행에 따라 제작, 상영했다”고 주장하는 <파업전야>측과 “16㎜영화에 대한 규정이 따로 적시되어 있지 않았다고 해도 현행 영화법을 모든 영화에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당국의 입장이 서로 마찰을 빚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공륜 사전심의’ 조항은 위헌”

한편, 현재 2심에 계류중인 <오! 꿈의 나라>는 장산곶매가 광주항쟁과 한 · 미관계를 소재로 다룬 16㎜영화로 이것 또한 영화법 제4조 1항의 ‘영화사 사전등록’ 및 12조 1항의 ‘공륜의 사전심의’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서울 형사지법 여상균판사는 1심에서 소형영화라고 해도 “영리목적으로 일반에게 상영할 경우” 영화법 적용을 받아야 하며, 대관을 했더라도 이 영화가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은 것을 알고 상영한 것은 “범죄가담행위”라고 판결, 제작자 洪基善감독에게는 1백만원, 이 영화를 처음 상영한 예술극장 한마당 대표 柳寅澤씨에게는 3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에 홍기선 · 유인택씨는 <오! 꿈의 나라>는 “영리를 목적으로 제작한 영화가 아니며, 16㎜영화에 현행 영화법을 적용한 것엔 승복할 수 없다”고 항소했다.

또한 이들의 변호인인 朴容逸변호사는 영화법 12조 1항의 ‘공륜사전심의’ 조항이 헌법 제22조 1항의 예술의 자유와 헌법 제21조 1항의 언론의 자유에 위배되는 위헌조항임을 주장, 담당재판부인 서울형사지법 항소 4부에 법률의 위헌여부 심판제청 신청을 냈다. 박변호사는 “공륜 사전심의 조항은 공권력에 의한 영화내용의 사전검열”에 다름아니라면서 그 근거로 “심의 주체인 공륜은 문화부장관이 위촉한 위원(특히 영화심의는 국가안전기획부 · 국방부 · 내무부 · 문화부 소속 공무원들도 관여되어 있음)들로 구성되어 실제로 영화의 제작과 상영에 행정권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심의기준도 애매모호하여 공륜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과 “공륜의 상영금지나 내용삭제 판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아무런 절차도 두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 조항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예술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금까지 각 대학 영화과, 영화서클, 한국소형영화작가회, 한국영화아카데미 등에서 제작신고나 사전심의없이 8㎜ · 16㎜영화를 제작, 상영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몇몇 특정작품에만 새삼스럽게 현행영화법을 적용시키는 것은 일관성이 없을 뿐더러 이는 정치 · 사회성이 짙은 소재의 영화를 탄압하겠다는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존 상업영화의 대청개념으로 통용되는 아마추어 영화제작은 대개 35㎜에 비해 제작가격이 저렴한 8㎜ · 16㎜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장래 전문영화인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영화지망생들의 습작방법으로 활용되는 예가 많다. 영화평론가 鄭用琢씨는 아마추어 영화를 “비상업적인 목적으로 비직업인들이 제작한 일련의 실험영화 · 개인영화 · 가정영화 · 독립영화 · 언더그라운드 영화 등”이라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도 이런 범주에 드는 아마추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기소된 소형영화 4편

16㎜영화 활동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84년 국립극장에서 상영된 ‘작은 영화를 지키고 싶읍니다’, 87년 크리스탈문화센터에서 상영된 ‘KUCU 영화제’, 청파소극장에서 상영된 ‘16미리 단편영화 발표회’, 연우소극장에서 상영된 ‘열린 영화를 위하여’, 예술극장 한마당에서 상영된 ‘열린 영화 한마당’ 등이 있다. 또 영화진흥공사에서 해마다 개최하는 금관상영화제의 청소년부문 자격은 “30세 미만으로, 등록된 전문제작자가 아닌 자가 제작한 30분 이내의 16㎜작품”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처럼 다양한 아마추어 영화 활동중에 현행 영화법 위반혐의로 고발, 기소된 작품은 그리 많이 않다. <오! 꿈의 나라>와 <파업전야>말고 광주항쟁 때 한 진압군 병사의 갈등을 그린 김태영씨의 <황무지>, ‘광야’와 해방영화집단이 공동제작한 전교조 활동을 그린 <선생님! 사랑합니다> 등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일관성 없는 법 적용은 일차적으로는 형평에 어긋나는 행정권의 발동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우며, 또한 <파업전야>를 상영하려던 전남대에 헬기까지 동원하여 상영을 저지한 당국의 과잉반응은 도리어 이런 계열의 영화를 홍보해주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소리도 없이 않다. 영화진흥공사 조사부의 金敏雄차장은 “<오! 꿈의 나라>와 <파업전야>가 비록 16㎜ 아마추어 영화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일반에게 공개상영되었다”는 점과 “창작후원기금조로 자료집을 2천원에 팔았다는 점에서 사전에 정당한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고 설명한다.

그런가 하면 서울대 신문학과 朴明珍교수는 ‘<오! 꿈의 나라> 제작 그룹의 16㎜ 활동에 대한 소견서’에서 “이같은 사건이 한국영화의 희망이랄 수 있는 젊은 인재들의 습작활동을 크게 위축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고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박교수는 “50년대 후반 16㎜ 습작활동을 통해 주목받기 시작한 프랑스 누벨바그의 경험 이후, 70년대 이래 세계 유수 영화제를 주름잡은 독일영화, 오늘날 영국 · 이탈리아 · 남미영화의 거장들이 모두 16㎜ 습작활동을 통해 인정받고 영화계에 진출했던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교수는 “그들의 습작시절 작품들은 도덕덕 대담성, 통렬한 사회비판적 내용, 특이한 형식적 시도 등으로 거부감과 논란을 유발하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구태의연하고 탄력성 없는 기존 영화에 충격을 주어 영화발전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8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서 젊은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8㎜ ·  16㎜습작활동이 활발히 전개된 사실에 주목하고, “아직 서툴고 목소리만 큰 경우도 많으나 그들의 영화에 대한 정열과 사명감은 침체한 한국영화에 활기를 불어넣고 한국 영화의 장래에 큰 기대를 갖게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영화감독협회를 비롯한 민족문화예술권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검열 차원에 머물고 있는 현행 공륜의 심의제도를 민간자율기구를 통한 등급판정제도로 바꾸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새로운 영화예술진흥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 조항을 당국이 자의로 운용할 때 그것은 소재와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독소 조항으로 작용하여 16㎜영화는 물론 마침내 한국영화 전체의 발전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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