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남성’이 사라진다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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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사 비율 ‘국교 65% · 중학 54%’ ··· 처우개선 안되면 더욱 악화



 “프랑스가 독일에 먹힌 까닭은 여교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2차대전 직후 프랑스 한 민속학자는 엉뚱하게도 전쟁에서 패배한 원인을 여선생에게 돌렸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교육 때문에 남학생들이 씩씩하게 자라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선생이 많은 게 학생들의 인성 형성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밝혀진 바 없지만, 선진 각국은 일찍부터 ‘교직의 여성화’에 골머리를 앓아왔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1930년대 국민학교 여교사 비율이 90%를 웃돌아 사회문제로 떠오른 적이 있다. 교육과정에서 아이들이 남성모델을 보고 배울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교직의 여성화는 산업화를 겪은 어느 나라에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제 선진국은 여교사가 줄어들거나 현 상태를 유지하는 등 어느 정도 ‘조정 국면’에 들어갔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계는 이제야 그 홍역을 심하게 앓고 있다.

 “아들이 국민학교 6학년인데 아직 한번도 남자 담임선생님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 저학년 때는 여선생님이 담임을 맡는 게 반가웠지만, 계속 그러니까 아이가 여성화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현직 여교사이자 학부모인 이순애씨(37)의 말이다. “우리 학교 남녀 교사 비율이 5대 1쯤 되는데, 그나마 남자 교사는 대부분 나이가 드신 분들입니다.”

 

국민학교 남자 교사는 ‘천연기념물’

 비단 이 학교뿐만이 아니다. 서울시내 대부분의 국민학교에서는 한 학년에 기껏해야 한두 반을 남자 교사가 맡고, 저학년으로 내려가면 거의 모든 반을 여교사가 맡는다. 그래서 국민학교 남자 교사들은 스스로를 ‘천연기념물’ 또는 ‘희귀종’ 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남자 교사가 드물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90년 현재 전국 국민학교 교사의 65%가 여성(교장 · 교감을 포함한 여교원 비율은 50.1%)이다. 이런 현상은 농촌보다 도시에서, 또 도시 중에서도 서울에서 더욱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90년 현재 서울의 국민학교 여교사 비율은 무려 82.4%(여교원은 71.3%)에 달했다.

 남자 교사가 줄어들자 남자 선생님을 대하는 아이들의 반응도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가 학교다닐 때만 해도 새 학년 첫날 여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와’하고 함성을 질렀잖습니까. 그런데 요즘 얘들은 정반대입니다. 여선생님이 들어서면 노골적으로 실망하는 눈치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서울 ㄷ국민학교 이모 교사(30 · 여)의 말이다.

 중학교도 마찬가지다. 90년 현재 전국 중학교에서 여교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54.5%,서울은 60.2%이다. 게다가 중학교는 국민학교보다 여교사 증가 속도가 더 빠르다. 이 때문에 중학교에 가서도 남자 교사를 만나지 못한 학생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서울 공항중학교 유상규 교무주임은 “중학교 3학년 때까지 9년 동안 내리 여선생님만 담임으로 맞은 얘들이 허다하다”고 말한다. 공항중학교도 전체 교사 87명 중 여교사가 56명으로 전체의 64%를 차지한다. 현재 서울시내 중학교 교사의 약 3분의 2가 여교사라고 한다.

 여교사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교사 사회에 새로운 풍속도가 등장했다. 기왕의 ‘여자 교사회’는 유명무실해지고 ‘남자 교사회’가 생겨난 것이다. “예전에는 수적으로 열세인 여선생님들이 여교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역전돼서 오히려 남자 교사들이 친목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국민학교에 남자 교사회가 있습니다.” 서울 상암초등학교 박춘근 교사(39)의 설명이다. 박교사는 남자 교사회가 생긴 배경으로 “여성에게는 교직이 좋은 직업일 수 있지만, 남자에게는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서로 마음이나 위로하자고 모인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서울시내 국민학교의 경우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평교사는 ‘열이면 아홉’ 여교사라고 한다. 그만큼 같은 직장에 있더라도 맞벌이하는 여교사와 그렇지 못한 남교사는 경제적 수준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제 더 이상 교직은 남자에게 매력적인 직업이 아니다.

 심지어 어떤 남자 교사(40)는 “내 자식들이 커서 교직을 택하겠다고 하면 기필코 반대하겠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열악한 보수 · 불투명한 미래 · 격무 등 교원 처우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남성이 교직에 뜻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 교사들은 틈만 나면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옮기거나 아예 전직해버린다. 성곡국민학교 재직중 해직된 양일순씨(34 · 여)는 “제법 능력있는 남자 교사들이 교육현장을 떠나는 걸 수도 없이 목격했다”고 말한다. 즉 우리나라 교직의 여성화 문제는 단순히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교대 1학년 남학생 비율 9.8%

 한국교육개발원 이인효 박사는 교직의 여성화 현상에 대해 “여성을 교직으로 유인하는 힘과. 남성을 교직에서 밀어내는 두 가지 힘이 서로 상승작용해 빚어진 결과”라고 분석한다. 따라서 남성을 교직으로 유인하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교직의 여성화 추세는 결코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국장 정진화(33)씨도 “문제의 본질은 여교사가 많아지는 현상이 아니라, 남자 교사가 사라진다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우선 교직을 희망하는 남학생이 줄었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여학생이 교대에 몰리는 데 반해, 성적이 좋은 남학생은 일반대학을 지망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70년대를 거치면서 나타난 이런 현상으로 80년대 초반 문교부는 고육지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강제조항은 아니지만 ‘교육대학 여학생 정원제한 정책’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서울교대의 경우 “어느 한쪽 성이 정원의 75%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즉 정원의 25%에 대해서는 성적이 나빠도 남학생을 뽑겠다는 것이다.

 이 정책이 실시된 이후 교대의 여학생 비율은 매우 낮아져 90년에는 전체의 64.5%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여학생 비율을 줄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남녀 학생의 학력 격차가 심화되는 문제를 낳았다. 박문갑 교수(서울교대 · 윤리교육)는 “학력고사 점수에서 20~30점 차이가 나는 현상이 빚어졌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몇몇 교육대학에서는 이 정책을 철회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교대 입학 정원은 5백20명인데 남학생은 4학년 2백8명, 3학년 2백8명, 2학년 1백30명, 1학년은 53명이다. 성적 차가 심한데도 남학생에게만 특혜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급기야 제주교육대학은 92학년도 신입생 전원이 여학생이 되는 일까지 생겼다(38쪽 기사 참조). 갈수록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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