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민족자존 외교의 虛와 實
  • (본지 칼럼니스트 · 고려대교수) ()
  • 승인 1990.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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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정부는 지금까지의 외세의존적 자세에서 벗어나는 ‘민족자존’의 외교를 표방했고 이것은 많은 국민의 공감을 불러냈다. 실제로 서울올림픽 이후 북방외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헝가리를 선두로 한 동유럽의 여러 나라와 수교를 하였고 최근에는 아시아의 親蘇 사회주의 국가인 몽고인민공화국과도 국교수립에 합의를 보았다.

얼마전까지의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생각하면 참으로 今昔之感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모든 공산권 및 사회주의 국가들과 국교는 물론 공식적인 교류와 관계도 갖지 못했던 우리는 절름발이 외교를 수행하며 소외감을 느껴야만 했다. 소련이나 중국 등과의 접촉에는 미국과 일본 등 우방국을 통하고 의존해야 되는 불편을 겪어야 했고 북한에 대해서는 경쟁적 외교라는 소모전을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우리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정치적 변혁에 힘입어 그들 중 대부분과 관계정상화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소련 · 중국 등과의 관계도 날로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민족자존 외교의 결실일 뿐 아니라 동시에 그것을 더 추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북방외교의 추진과정에서 사실상 민족자존과는 거리가 먼, 아니 도리어 그것을 손상하는 것 같은 모양이 보이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정부는 소련과의 수료를 외교의 지상과제로 삼고 그것을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정치인들은 수교라는 공을 세우기 위해 만나는 소련 사람들에게 수교이야기부터 꺼내고 부탁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對蘇수교만능주의는 몇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체계없는 외교경쟁. 소련의 정치개입 자초

정부와 정치인들이 소련과의 수교를 너무 공개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소련의 콧대만 높여주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소련은 우리가 그 나라와의 국교수립을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아는 이상 그에 대한 높은 보상을 요구할 것이고 따라서 이것은 가까운 장래의 수교를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소련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따져 그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사정하지 않아도 관계정상화를 결정할 것이다. 반대로 그것이 그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하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수교의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정부인사들과 정치인들이 체계없이 각자 먼저 공을 세우려고 열성을 부릴 때 우리는 소련이 누구에게 어떠한 ‘영예’를 부여함으로써 우리나라 정치에 개입할 기회를 갖게 해준다. 예컨대 고르바초프가 누구를 만나주느냐, 무슨 편지를 읽어주느냐에 따라 개개인의 정치적 주가가 오르내리는 상황을 허용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내부정치에 있어서의 커다란 영향력을 부여하는 것이 된다.

지난달 與黨內紛의 불씨가 된 민자당팀의 방소외교와 관련하여 크렘린 속에서 있었음직한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프리마코프 대의원회 의장간의 다음과 같은 대화를 상상해볼 수 있다.
프 : “대통령께서 한국의 여당지도자를 잠깐이라도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분이 무척 기분이 좋아서 돌아갔습니다.”

고 : “그 사람, 만나자마자 수교이야기더군. 조르면 빨리 될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지. 그러나저러나 그가 정말 집권가능성이 있기는 한가? 그 사람 만나줘서 같이 온 다른 사람 섭섭하게 만든 것 아닌지 모르겠네.”

프 : “제가 미는 사람이니 어련하겠습니까. 아마 이번에 대통령께서 만나주셔서 국내적으로 위치가 더 올라갔을 것입니다. 같이 온 사람에게도 배려가 된 셈입니다. 대통령께서 그 사람이 가져온 친서도 읽어주셨고 간접적이나마 반응도 전해주셨으니 우리는 양다리 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균형과 주체성 갖는 태도 필요

민족자존을 찾는다면서 하나의 事大를 또 다른 事大로 대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주는 것은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과 확대, 그리고 가능하면 국교정상화는 마땅히 추진해야 될 일이지만 우리가 그것에 급급한 나머지 우리 자신이 늘 강조하는 국제적 信義를외면하는 인상을 주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내달에 있을 대만의 총통취임식에 우리나라의 현직 고위층 정부인사는 참석하지 않을 것 같다고 알려지고 있다. 엄연히 우리와 정식으로 국교를 가지고 있는 대만의 中華民國정부를 푸대접함으로써 아직 국교가 없는 북경정부의 환심을 사려는 것은 아닌지? 국제적 예의는 대외관계에 있어서 공허한 도덕적 원칙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소용되는 외교적 자산임을 우리는 생각해야 된다. 궁극적으로는 북경정부도 눈앞의 ‘실리’보다 의리와 원칙에 의연한 한국에 더 큰 존경과 신뢰를 갖게 될 것이다. 결국 소련이나 중국도 마찬가지로 공식관계의 속도와 폭은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느냐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이해타산과 판단에 의해 결정할 것이다.

우리가 북방외교를 추구함으로써 對美 · 對日의 의존관계에서 어느 정도나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민족자존이라는 것은 소련이나 중국과의 수교 그 자체로 얻어진다기보다 그것을 어떻게 추진하며 또 얻어진 외교적 성과를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대외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태도에 있어 냉정과 의연성을 유지하고 내용에 있어서 균형과 주체성을 갖는 것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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