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엔=8백원’ 갈망한다
  • 도쿄 · 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3.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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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노미네이션 실시해 ‘1달러=1엔’ 만들자” 주장 거세 … 실현 여부 불투명



 드디어 ‘1엔 1달러 시대’가 오는가. ‘강럭한 엔’을 갈망하는 일본의 정 · 재 · 관계가 최근 현재의 엔화 가치를 1백분의 1로 줄이는 디노미네이션(통화 호칭 단위 변경) 실시를 주장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급격한 엔고로 엔 시세가 달러당 1백엔에 육박하던 지난 3월, 자민당 중 · 참의원 50명은 ‘디노미네이션 연구의원 간담회’를 결성하고, 2년후 엔화에 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패전 50주년이 되는 95년을 기해 현재의 세 자리 환율을 1대1로 고쳐 일본의 위신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일본 경제는 전후 최악의 상황으로 표현할 만큼 심각한 불황에 빠져 있다. 80년대 후반 맹위를 떨친 거품 경기가 하루아침에 냉각된데다. 급격한 엔고 현상 그리고 올 여름의 기록적인 ‘추운 여름 ’ 현항 등 이른바 3중 불황이 일본 경제를 직결했기 때문이다. 이를 타개하는 처방으로 는 공공투자 등 경기 대책이 필요하다. 따라서 디노미네이션과 같은 충격 요법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 재계가 주장하는 논거다. 실제로 와코(和光) 경제연구소는 만약 일본에서 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할 경우 그 경제파급 효과가 1조 8천억엔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예들 들어 현재의 엔을 ‘신 엔’ 으로 교환는데 2천3백억엔, 광고 · 인쇄비에 4천2백억엔이 소요돼 그 만큼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다. 또한 거리에 설치돼 있는 자동판매기를 교환하는 데 3천7백억엔, 각종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수정하는 데 5천3백억엔에 이른는 신규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본다.

“체면유지 · 경기부양 위한 최선책”
  물론 이 금액은 디노미네이션의 직적 파급 효과만을 고려한 숫자다. 부수적인 간접효과까지 계산하면 그 파급 효과는 약 5조엔, 즉 일본 GNP를 0.5%나 높일 수 있는 규모다. 거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 효과까지 계산하면 현재의 불황을 끝낼 수 있는 유력한 경기대책이 바로 디노미네이션이라는 것이 이 연구소의 결론이다. 이 연구소의 요시다 하루키(吉田春樹 )사장 역시 디노미네이션 적극 추진파다. 요시다 하루키 사장은 “현재 같은 환율 계산 방식으로는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하고 입버릇처럼 되뇌는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또 현재의 급격한 엔고 현상을 방지 하기 위해서도 디노미네이션이 절대 필요하다고 억설한다. 잘 알려진 대로 패전 직후 일본은 1달러에 3백60엔인 환율체제로 출발했다. 확실한 산출 근거도 없이 미군 점령군사령부가 적당히 정해준 시세였다. 이 ‘1달러 3백60엔 시대’는 20여 년간 지속되나 71년 변동환율제로 이행하기 위해 ‘스미스소니연 합의’ 에 따라 3백8엔으로 수정되었다.

이때 일본 재계는 환율 절상의 큰 불만을 드러냈으나 히로히토 일왕만이 크게 만족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허약한 엔’ 보다 ‘강력한 엔’ 의 출현을 학수고대했기 때문이다. 변동환율제로 이행한 73년 이후 엔 시세는 두 번의 격변을 겪으면서 다시 2백 40엔, 1백20엔대로 뛰어올랐다. 또 클린턴 정권의 ‘엔고 허용’ 발언을 계기로 지난 8월 달러당 1백엔을 돌파하려는 위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엔화 강세’ 기조는 당분간 변함 없으리라는 것이 대다수 외환 전문가들의예측이다. 나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일본의 무역흑자가 엔 시세의 상승 압력을 가중시켜 내년중 1백엔대를 돌파하고 1달러가 90엔대를 기록하리라는 예측도 유력하다. 와코경제연구소 요시다 사장은, 이러한 엔시세의 동향을 감안하면 지금이 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최적기하고 본다. 즉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일본이 디노미네이션으 실리할 경우 1달러가 1엔에 근접할 때까지는 이을 방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디로미네이션 실시 이후 1달러의 교환 비율이 1엔을 깨는 경우 사정이 다르다. 즉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1달러 0.9엔’ 이란는 식의 환율을 표시에 큰 거부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다 따라서 1달러가 1백엔대를 기록한ㄴ 지금이 디노미네이션에 가장 적합한 시기이며, 미국의 저항으로 1달러가 1엔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의 ‘엔고’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리러한 디노미네이션 논쟁은 관가에서도 활발하다. 대장성을 중심으로 한 관계의 주장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일본만이 달러에 eoks 환유이 세 자리 숫자라는 것이다. 물론 이달리아의 리자도 달러에 대한 환율이 엔과 비슷하지만 사정이 조금 다르다.

즉 유럽공동체는 97년을 목표로 통화 통합을 지향하는데 그 기준이 새로운 유럽통화 단위인 ECU이다. 이 통화 단위에 리라가 가입할 경우 일본만 남는다는 것이 대장서의 걱정이다. 따라서 유럽공동체의 통화 통합이 실현되는 97년을 목표로 일본이 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해 경제대국으로서 체면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경기부양, 경제 대국의 체면이라는 이유를 내걸고 디노미네이션 논쟁은 날로 열기를 띠고 있다. 그러나 세계2위 경제대국 일본이 통화 호칭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일본에서는 불경기 때마다 디노미네이션 주장이 되풀이되어 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효시는 59년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총리. 71년에는 대장성을 중심으로 실시 계획과 세부지침까지 만들엇으나, 당시 사토 에이사쿠(佐臟榮作 ) 총리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또한 디노미네이션 추진파로 널리 알려진 후쿠다 다케오(福田고夫    )씨도 총리로 선출된 78년 디노미네이션 실시를 거론했다가 여론의 반발로 철회했다.

불경기 때마다 제기 … ‘거품 논쟁’ 가능성
 이 논의는 8년전의 ‘엔고 불황’ 때도 재연 됐다. 그러나 이 때도 불경기만 되면 거론되는 무책임한 경기 대책이라는 반발에 밀려 자취를 감췄다. 이 때문에 일본의 한 경제 전문가는 “패전이후 열일곱 차례나 디노미네이션 논쟁도 ‘거품 논쟁’ 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며, 경기가 회복되면 그런 주장은 자연 소멸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도카이은행 종합연구소 미즈타니 겐치( 水谷硏治  ) 이사자의 생각도 똑같다. 그는 최근 한 잡지와 가진 회견에서 ”단순한 호칭 변경을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입하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 것이다“라고 디노미네이tus을 실시하자는 주장을 일축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디노미네이션을 실시 할 경우 전산망을 재구축하는 데 드는 각 은행의 추가 부담은 1개 은행당 약 1백억엔. 현재 불황으로 인원과 경비 절감에 여념이 없는 은행이 무슨 수로 그런 부담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반대 이유다. 이렇듯 찬반 논쟁이 가열되는 가운데<산케이 신문>은 최근 대장성도 이에 대한 검토에 착수했으며, 과거 자료를 축적하고 있어 초보저인 준비는 이미 끝낸 단계라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다시 말해 일본의 디노미네이션은 언제 어떻게 실시하느냐 하는 문제만 남았다는 것이며, 그 시기는 패전 50주년이 되는 95년이나 유럽공동체의 통화 통합이 실현되는 97년께가 유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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