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교사 스스로 교재가 되어야 한다”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3.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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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독서 · 글짓기 교육 붐 … 수능시험 등이 불붙여

책을 많이 읽히고 좋은 글을 쓰게 하자. 책의 해 표어 같기도 하고, 국민학교 교장 선생님의 훈시처럼도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요즘 국민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젊은 어머니들의 생각이다. 최근 서울의 아파트 밀집 지역은 물론이고 인천 · 부천 등 수도군에서 독서 혹은 글짓기(쓰기) 가르치기가 부쩍 늘면서 하나의 봄을 이루고 있다. 사단법인 한우리 독서문화 운동본부(한우리)에서 개설한 제4기 독서지도자 자격증 과장에서 젊은 어머니뿐 아니라 현직 교사와 글짖기 교사들이 몰려들었다.

인천 · 부천 지역에서 학생 1천2백여 명을 가르치는 까지글짖기(운영본부장 김기남) 같은 전문적인 교실도 늘고 있다. 전직 교사, 전직 기자, 전직 출판인,문고대학 졸업생,그리고 문인 등 개별적으로 가르치는‘선생님’들도 자주 눈에 띈다. 정확한 통계을 내기는 어렵지만 이같은 증가 추세는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독서 · 글짓기 교육 붐의 원인은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첫째는, 학교에서 내주는 일기 숙제를 부모가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 올해부터 시작된 대학 수학능력시험(수능시험)을 일찍부터 준비하자는 젊은 어머니들의 조바심에서 비롯한다. 이밖에도 글짓기 교육 자체에 호감이 간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다.

첫 번째와 두 번째가 가장 큰 이유이겠다. 독서와 글짓기 교육은 얼핏 분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독서라는 개념에서 보면 책읽기와 글쓰기는 한 몸이다. 한우리 박철원 본부장에 따르면, 독서란 읽고(듣고) 생각하고 쓰는(말하는) 다섯 단계를 아우르는 범주이다. 박본부장은 독서지도사 과정에서‘누에고치 리론’을 자주 이야기한다. 질 좋은 뽕잎을 먹은 우에만이 질 좋는 실을 뽑아낸다는 것이다. 뽕잎(책)과 번데기(생각하기), 그리고 실(글 · 표현)은 어느 한 과정도 생략이 불가능한, 분명한 인과관계라는 것이다. 최근 일고 있는 독서 지도 붐을 바라보는 시각을 대체로 긍정적이다. 구미식 교육제도가 들어온 이래, 입시 교육에만 매달린 학교 교육에서 책읽기와 글짓기는 늘 소외당해 왔다.

비록 수능시험이라는 외부 요인에 의해 불거진 현상이지만, 어린이 독서 지도는 여러 가지 낙관론을 동반한다. 독서 지도는 만 6~9세가 가장 적당하다. 현재 독서 지도는 국민학교 2학년을 전후로 이루어지는데, 이들은 영상 매체에 포위된 신세대이다. 가뜩이나 풀판 문화가 위축되고 활자는 죽었다는 선언도 나오는 마당에,‘가장 적극적인’ 어머니들이 미래의 독자를 키운다는 점에서 우선 출판계와 지식인 사회가 반가워한다. 나아가 칙읽기와 글쓰기는 전인 교육에 이바지한다는 측면에서 호응을 얻는다. 독서와 글짓기를 통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창의적인 사고력과 표현 능력을 갖게 된다면 이 보다 좋은 인성 교육은 없을 터이다.

그러나 독서 지도 현실을 들여다 보면 위와 같이 청신호만 켜져 있는 것은 아니다. 현직 교사가 독서지도사 양성 과정을 수강한다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무엇보다 면저 학교 교육이 책읽기와 글쓰기 지도 앞에서 무력하다. 글짓기 교실에서 지도를 받는 어린이의 일기장에다‘글직기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답례하는 학교 교사가 있을 정도이다.

전문가 · 교육기관 · 서적 태부족
 학교 교사가 독서와 글쓰기를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몰라 쩔쩔 매게 된 이유의 대부분은 교육 행정 부재 탓이다.“교육부가 수능시혀???을 8년 전부터 준비했다고 알고 있는데 왜 교사들에겍 미리 준비하도록 하는 조처는 없었는가. 갑작스럽게 바뀐 교육 환경앞에서 교사들는 속수무책이다.”한우리 박철원 본부장의 지적이다. 독사 지도는 풍부한 독서량이 우선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학부모들도 바른 독서 · 글쓰기 지도의 장애물이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 어린이 글짓기를 지도하는 시인 신현림씨는“오직 수능시험을 위해 가르친다고 말하는 어머니들이 제법 많다”라고 말한다. 논리적인 사고난 문장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인데도 일부 어머니들은 왜 아이의 실력이 늘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글짓기에 관심이 있는 어머니나 학교 교사들도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상자기사 참조). 독서 지도의 또 다른 문제는 전문가가 과연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우리 독서지도사 과정의 어떤 과목은 전문 강사를 구할 수 없는 실정이다. 특히 개별적으로 팀을 만들어 어린이를 가르치는 경우, 그 능력을 가늠할 잣대가 없다. 전직 교사나 출판 · 언론인, 무엇인지 여부 또는 대학에서의 전공이 무엇인가가 현재의기준인 것이다.

교육 기관이나 전문 서적도 부족하다. 한우나 현재 독서 지도를 하는 교사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는 한국도서연구회 같은 데를 제외하면 마땅한 교육 기관도 거의 없다. 이모덕씨의《글쓰기 교육의 이론과 실제》나 마리번즈의 《생각하는 연습을 하자》와 같은 책을 빼면 큰 도움을 주는 책은 많지 않다. 인천 · 부천 지역에서 1천2백여 어린이에게 글짓기를 가르치는‘까치글직기’가 지나온 3젼을 살펴보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글짓기는 쓰기 능력이 아라 생각하는 능력’임을 강조하는 이곳은 수능시험과 무관하게 출발했고‘교사 스스로 교재가 되어야 한다’며 교사의 인격과 능력을 우선하고, 부모와의 정기적인 면담에 비중을 두고 있다.“글짓기는 교사 · 어린이 · 학부모 세 기능이 조화를 이룰 때 효과가 나타난다”라고 김기남 운영본부장은 말한다.

독서 지도의 가장 큰 난관은 거의 어른들에게서 비롯한다.《열린 교육과 학교도서관》저자인 숭문고 허문두 교사(시인)는 “누구나 독서 지도를 할 수 있다고 덤비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왜, 무엇을, 어떻게’의 순서가 역전돼 있는 것도 진정한 독서 · 글쓰기 지도를 가로막는다고 비판한다. 왜가 먼저 고려되지 않으면 글을 쓰려는 자발적인 욕구가 개발되지 않기 때문이다. 강요된 글쓰기는‘표절’과‘모방’을 잘하는 기능인을 키울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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