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에 휘둘린 지자제 한다 안한다 40년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2.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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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재선노려 ‘전쟁중’ 첫실시 … 정권마다 번복·연기

 우리나라 지방자치제 역사는 한마디로 연기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또한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약속한 말의 번복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72년 출범한 제 4공화국이 유신헌법 부칙 제10조에서 “지방의회는 조국통일이 될 때까지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해 지자제 실시를 정지시킨 이후, 우리나라 정치사는 지자제를 관철하려는 야당과 어떻게든 실시하지 않으려는 집권 여당의 투쟁으로 점철돼 왔다.

 유신헌법이 지자제를 금지시킨 후 20여년이 흐른 지난해 지방의회 구성으로 지자제 시대가 성큼 다가온 듯 싶었으나 자치단제장 선거 연기라는 새로운 사태가 발생했다. 민자당이 6월1일 金泳三 대표와 정원식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고위 당정정책조정회의를 갖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실시 시기를 95년 5월 30일 이내로 연기하기로 최종 확정함에 따라 지자제 논의는 부분적으로 다시 한번 20여년 전 당시의 틀로 뒷걸음질치게 되었다.

 “이번 국회에서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차질없이 통과시키도록 초대한 노력하겠다”고 언급한 김영삼 대표의 의지에 따라 지자제 법안은 집권 여당의 힘에 의한 강행처리로 뜯어고쳐지게 되었다. 야당은 정부 여당의 속셈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행정력 약화를 초래할 자치단체장 직선만은 막겠다는 데 있다고 풀이한다.

 6공 초기부터 책임있는 정치인들은 누구나 지자제 실시를 그들의 제일 가는 공약으로 내세웠다. 몇년 안되는 짧은 기간 동안 그들의 말은 다음과 같이 변화해왔다.

노태우 대통령 : “지방자치제를 내실있게 실시해 민주주의의 뿌리를 보다 굳건히 내리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87년 6월10일 민정당 대통령후보수락 연설문에서)

 “사회 각 부분의 자치와 자율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 각 부문별 자치와 자율의 확대는 다양하고 균형있는 사회 발전을 이룩하여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믿습니다. 개헌 절차에 불구하고 지방의회 구성은 예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하고 시도 단위 지방의회 구성도 곧이어 구체적으로 검토, 추진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87년 6월29일 특별선언)

 “지방자치제를 실시하는 문제의 가장 큰 책임과 열쇠는 국회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자치제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나는 지방자치제가 조속한 시일 내에 여야가 합의하여 이 해가 지나지 않는, 는정도 연말까지 실시되기를 촉구합니다.” (89년 1월17일 연구 기자회견 중에서)

 “선거일정의 조기 논의는 시기적으로 부적절할 뿐 아니라 구민정서에도 맞지 않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법에 시행 일정이 명기돼 있습니다. 따라서 법이 정해 놓은 것 이상의 분명한 일정은 있을 수 없습니다.” (91년 7월16일 김대중 신민당 총재와의 청화대 영수회담 내용 중에서)

 “올해는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에 더하여 두 차례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예정도어 있는 해입니다. 이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과연 한해 동안 4차례 선거를 어떻게 치를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나는 고심하고 고심한 끝에 올해로 예정된 지방자치단제장 선거를 연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 선거의 시기는 제14대 국회에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92년 1월 10일 연두기자회견 중에서)

 “6·29 선언의 조문을 보면 지방자치단체장까지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않는다는 말은 아니며, 물론 능력만 있다면 또 어떤 여유만 있다면 빨리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금년에는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며, 경제와 민주주의 두 가지를 다 함께 살려나가야 한다는 차원에서 금년에 두 차례의 단체장 선거까지 치르는 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92년 연두기자회견 기자와의 일문일답 중에서)

 

김영삼 대표 : “문화 예술 교육 등 사회 각 부문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확보되고 지역간 균형 발전을 뒷받침할 지자제가 조속히 실시 되어야 합니다.” (민주당 총재이던 88년 10월 16일 국회 대표연설 중에서)

 “단체장 선거는 정부에서 신중히 연기를 결정한 국가적 중대사로 대통령 선거만을 의식해 조정할 수 없습니다. 이상도 중요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조화가 더욱 중요합니다. 단체장 선거 연기의 불가피성을 홍보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당직자들이 야당측과의 텔레비전 토론 등에도 적극 응해야 할 것입니다.” (6월 15일 민자당 확대 당지자회의 발언 중에서)

김종필 최고위원 : “민주정치의 또 하나의 요체는 지방자치의 발전에 있습니다. 이에 우리 신민주공화당은 명년부터 지장자치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해서 국민의 민주의식을 높이고 지역발전과 민주발전의 틀을 다져 나가겠습니다.” (87년 12월10일 대통령 후보 KBS 텔레비전 연설 중에서)

3당 합당으로 ‘없었던 일’

 3당 합당 이전인 지난 4당 체제 시절 김대중 평민, 김영삼 민주, 김종필 공화당 총재 등 3인은 지자제의 조속한 실시에 모두 뜻을 같이하고 있었다. 이들이 88년 5월18일 최초로 가진 야 3당 총재회담 공동 발표문에는 분명 “지방자치단체장의 국민직선을 포함한 지방자치를 빠른 시일 내에 전면실시토록 한다”고 명기돼 있었다. 이같은 야 3당 총재 합의는 89년 1월24일 5개월 만에 다시 만나 재확인되었고, 이 방침은 같은 해 3월4일 4월26일 10월19일 12월13일 등 모두 여섯번의 야 3당 총재회담에서 변함없이 확인되었다. 이들은 야 3당의 단일법안을 마련하기 위해 3당 정책위의장과 내무위 간사로 구성된 3당 공동위원회를 구성하기로까지 합의했었다.

 이들은 이어 청와대 4자 회담을 제의, 89년 12월15일 4당 총재 회담에서 “특히 지방자치에 관한 법률은 이번 회기 내에 통과시키기로 했다”는 합의도 이끌어냈다. 그러나 89년 12월31일 全斗煥씨의 국회증언으로 사실상 5공청산활동이 마감되고 야권 공조체제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특히 청와대가 개별 영수회담을 통해 보수대연합을 명분으로 내세운 합당 작업을 하자 지자제 실시 합의도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민자당이 자치단체장 선거를 연기함으로써 발생한 14대 개원 국회의 파행은 5공 시절인 84년 10월 상황과 조그도 다르지 않다. 당시 한 신문 보고를 인용해보자.

 “여야는 23일 오전 제3차 3당 3역회담을 갖고 그동안 팽팽히 맞서온 지자제 실시 시기공개 문제와 11일째 공정되고 있는 국회정상화 방안을 모색, 이날 중으로 돌파구를 찾게될 것으로 보인다.” (84년 11월23일 <동아일보> 1년 머리기사)

 이 기사 자체만 보면 이 일이 지금부터 8년 전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오히려 앞으로 개원 국회에서 벌어질 일들을 가리켜 주고 있는 듯하다.

 유신 이후 막혀 있던 지자체 부활의 근거를 마련해준 것은 5공 헌법이었다. 당시 헌법 부칙 제10조는 “지방의회의 구성을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를 감안해 순차적으로 하되 그 시기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해 정치권의 지자제 논의에 숨통을 열어주었다.

“단체장 선거 안하면 6·29 말할 자격 없다”

 5공 시절 정부 여당은 지자제에 대해 현재보다 오히려 탄력성 있는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된 84년 11월 예산국회에서 지자제를 둘러싸고 여야의 대립이 거듭되자 당시 민정당은 △ 12대 국회 임기중에 실시 △ 현 대통령 임기가 만료되는 88년 3월 이전 실시 등의 복수안을 야당측에 제시했다. 이에 따라 84년 11월 23일 민정 민한 국민 3당 3역회의에서 87년 상반기까지 적합한 일부 지역에서 지방의회를 일차적으로 구성하고, 여건이 조성되는 대로 점차 확대 실시하기로 합의가 되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85년 1월8일 국정연설에서 이 문제에 대한 부분만을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헌법의 준수와 관련하여 본인이 생각하는 것은 지방자치제의 실현을 위한 노력입니다. … 본인이 이 규정을 준수하기 위하여 의원 여러분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서 오는 87년에 일부 지역부터 실시키로 결정한 바 있음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지방자치제를 실시한 경험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드런ㅆ던 바람직하지 못한 부분이 재연되지 않고 본래의 추지가 살 수 있도록 철저한 사전검토를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연초에 구성될 ‘지방자치제실시연구위원회’는 각 계층의 덕망과 지식을 갖춘 인사들에 의하여 앞으로 우리의 실정에 합당한 제도의 모형을 마련해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실현되지 않았다. 대신 6·29 특별선언의 한 골자가 되었다. 이와 관련해 전두환씨의 핵심 측근인 閔正基 비서관이 지난달 15일 정부 여당의 자치단체장 선거 연기 방침에 강력 반발하고 나선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그는 이날 “지방자치법의 여야 합의 당시에는 선거를 여러번 치르면 돈이 많이 드는 것은 물론 여러 후유증이 나타날 줄 몰랐느냐”며 정부 여당의 연기 명분인 ‘선거후유증론’을 반박하고 자치단체장 선거 연기 주장에 설득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6공은 기회만 있으면 6·29 선언 이행을 강조하지만 6·29 9개항 중 직선제 수용, 김대중씨 사면·복권 등 8개항은 이미 전 전대통령 집권 시절에 이뤄진 것”이라며 “나머지 하나가 지자제 정착인데 자치단체장 선거를 실시하지 않으면 6공은 6·29를 말한 자격이 없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불운하게도 우리나라 초대 지방의회의 구성부터가 한 정치인의 정략적 속셈에서 나왔다. 지난 52년 재선의 가능성이 전무함을 확인한 당시 李承晩 대통령은 자신에게 유리한 직선제 개헌안 통과를 위해 지지세력을 구축하기 위한 초대 지방의회 구성을 계획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승만 정권은 52년 4월에서 5월까지 약 1개월에 걸쳐 민선지방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를 실시한다고 공포했다.

 전쟁으로 온 국민이 생존의 위협에 빠져 있는 와중에, 그것도 피난 수도에서 지방의회 선거를 실시한다는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치안혼란 때문에 지방자치를 실시할 수 없다고 말했던 이승만씨 자신이 그 말을 번복하고, 자신의 지지기반 확보를 위해 전쟁 속에서 지방자치를 실시한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는 전쟁중에 지자제 선거를 실시한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오로지 정략적 차원에서 지자제 문제를 거론하는 정치권의 오랜 전통은 해방 이후 47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거의 변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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