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가출 ‘혹시’에서 ‘역시’로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2.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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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자금력 달려 37일만에 귀가…‘온건합리주의’ 자기 덫에 걸려 개혁 퇴색



민자당 경선 사고가 터진 직후 李鐘贊 의원 진영 한 핵심 인사는 金永三 대통령후보와 이의원의 관계에 대해 의외의 발언을 했다. 이의원의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겠느냐 하는 질문에 그 핵심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의원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김영삼씨가 불시에 쳐들어오는 것이다. 김대표가 기자들을 데리고 이의원 집에 웃으면서 쳐들어왔다고 치자. 이의원이 집에 들오지 말라고 막을 수는 없다. 이의원도 웃는 낯으로 김대표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런 다음에 김대표가 ‘모든 것이 잘됐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하면 이의원은 그날로 끝장이다.”

김대표 정치 소신·이의원 노선 접합

 이 예측은 두 가지 가능성을 합축하고 있다. 첫째는 김영삼 대표의 행동방식에 비추어 볼 때 어떻게 해서든지 이의원을 포용하려드는 데서 오는 사태 진전 가능성이다. 결과를 놓고 볼 때 일단 이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둘째는 이의원이 내켜하지는 않지만 상황 진전에 따라서는 김대표와 손을 잡을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시 빗나가지 않았다. 결국 이의원의 한달 남짓한 ‘새정치 실험’은 두 사람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짐으로써 ‘없었던 일’이 됐다. “정치는 타이밍”이라는 김대표의 평소 정치 소신과, 이상을 표방하되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는다는 이의원 특유의 온건합리주의 노선이 접합점을 찾은 것이다.

 이의원이 민자당에 남는 것 아니냐 하는 관측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 6월26일 오전이다. 하루 전인 25일 김대표와 이의원이 서울 시내 ㅎ호델서 극비리에 회동한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불과 이틀 전인 23일 이의원은 국회 내에서 ‘새정치와 경제발전’이라는 주제로 새정치모임의 세미나를 개최했다. 장외로만 돌던 이의원이 세미나 장소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로 잡은 것도 의외였고, 지방자치 단체장선거와 관련해 광역과 기초단체장의 분리 선거 실시를 제안함으로써 여야 사시에서 중재역을 자처한 사실도 예사롭지 않았다. 기존 정치를 전면 부인하던 태도와는 전혀 다르게 정치판에 슬쩍 발을 들여놓았던 것이다.

 김대표가 이의원의 광화문 사무실을 전격 방문하고 이의원이 당 잔류를 발표하던 25일 오전, 새정치모임 대변인 朴範珍 의원은 그날 오후 사태가 반전될 가능성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이의원이 당에 남을 가능성은 전혀 없느냐 하는 질문에 박의원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새정치국민연합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밝은 장래’를 확신하던 박의원의 종전 태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침묵은 당에 남을 수도 있다는 말이냐는 거듭되는 질문에 그는 ‘일간지 기사가 너무 앞서간다. 시간과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면서 ‘정치는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이의원은 ‘한치 앞을 모르는 정치’의 실체를 국민에게 알려주었다.

 김대표는 “이번 일은 나 혼자 진행시켰다”라고 말했다. 이의원 진영에서도 두 사람의 회동 사실이나 이의원의 당 잔류 계획에 대해 알고 있던 사람은 박범진·張慶宇 의원 등 불과 두세 사람 정도였다. 23일에 이어 김대표와 이의원의 두번째 접촉이 있었던 25일의 비밀회동에서는 경호원까지 따돌린 채 ㅎ호텔에서 1시간30분 동안 두 사람만이 무릎을 맞댄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찬 의원을 ‘굴복’시킨 외적 요인은 물론 김대표다. 이의원이 당에 남겠다고 말한 후 김대표 얼굴은 환해졌다. 김대표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다. 감정이 얼굴 표정에 그대로 나타난다. 경선 이후 김대표는 이의원 사태에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 김대표는 또한 자신을 해코지한 사람은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 사람이다. 이른바 정치 보복을 미루지 않는다. 즉각 행동에 옮긴다. 이의원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았다. 때를 기다린 셈이다. 이의원이 정치 실험의 한계를 느껴 발걸음이 무거워지기를, 혹은 이의원이 예상외로 힘을 얻어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되겠다는 판단이 서거나 이의원이 탈당이 눈에 보일 때를 기다린 것이다.

 이의원이 탈당 의사를 표시한 시기는 민자당이 당권 재편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시끌시끌한 때다. 朴奉俊 최고위원의 거취도 불투명했고 일부 이탈세력이 생길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박최고위원이 당권 싸움에서 소외될 경우 이의원과 재결합 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김대표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이의원도 정치 실험에 한계를 느꼈음은 물론이다. 우선 인적 자원의 빈곤이 그를 괴롭혔고 그의 행동을 제약했다. 각 당이 대통령 후보를 이미 선출해 대세몰이를 시작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여야 현역 의원을 끌어들이기가 여의치 못했고, 鄭鎬容 의원 등 중간지대 정치인들을 끌어당길 만한 구심점 역할도 제대로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권 오곽의 교수·언론인·재계인사 등 진보적 색채의 지식인들을 끌어모으지도 못했다.

 새정치국민연합을 결성해 신당을 창당할 경우 이의원이 동원할 수 있는 현역 의원 수는 고작 10명 안팎이었다. 새정치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장경우 朴明煥 박범진 의원, 민자당 내 이탈 세력과 국민·민주당에서 확보 할 수 있는 3~4명을 포함해서 10명을 넘기 힘들었다.

 이의원 진영은 전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검증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의원 진영이 주장한 지역 기반은 원외 지구당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호남지역, 金鍾必 최고위원 영역에서 이탈한 일부 중부권, 김영삼 대표를 거부하는 대구·경북의 일부 지역이었다.

 새정치모임은 대통령후보로 이의원이 아닌 제3차 추대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었다. 외부 인물 영입의 폭과 영입 인사의 성격에 따라 제3자를 추대할 수 있다는 것이 이의원 진영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작업이 별로 진척되지 안았다고, 추대 예상 인물로 거명되는 당사자들의 호응도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자금 열세도 그의 허리춤을 잡았다. 새정치모임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장외 행사도 행사지만 광화문의 임대 사무실 유지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광화문빌딩 3층(5백80평)의 한달 임대료는 4천6백40만원. 임대 보증금은 평당 55만원으로 보증금만 3억1천9백만원상당이다. 빌딩 관리사무실 관계자에 따르면 민자당 경선을 앞두었을 때 이의원 사무실이 지출한 외부 차량 주차비만 한달에 1천5백만원 선을 웃돌았다. 그러던 것이 이의원의 경선 거부 이후 외부 인사들의 발걸음이 뜸해지기 시작하더니 5월 하순부터는 외부 차량 주차요금이 경선 전의 10분의 1도 안되는 1백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외부 차량 주차요금의 격감은 새정치모임의 세 약화를 상징하는 단적인 예다.

 6월 들어서면서 광화문 사무실의 분위기도 썰렁해졌다. 매일 아침 9시30분에 열리는 정례회의 참석자도 9~10명 안팎이었다. 오후 3~4시경에는 5백80평의 넓은 사무실을 지키는 사람이 고작 한두 명일 때도 많았다. 파장 분위기나 마찬가지였다.

허황된 구호 ‘새정치 새인물’

 김영삼 대표 진영의 한 핵심 인사는 이의원이 새정치국민연합 결성을 발표했을 때 “이의원은 변수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의원은 이제 끝났다.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 논다. 여당 생활에서 굳어진 의식구조에 야당식 행동을 보이려니 언행의 앞두기 맞지 않는다. 이의원이 현재의 정치상황에서 진짜 야당을 하려면 김대준 대표보다 더 개혁적인 이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가 표방한 정치철학이 온건합리주의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민자당 민주계 한 중진 의원도 “이제는 너무늦었다. 이의원이 당에 남아 있기를 원해도 발 붙일 곳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의원은 당에 남기로 했다. 비록 한때나마 ‘미운 오리 새끼“ 역할을 했지만 과거지사는 없었던 것이 됐다. 그렇다고 해서 이의원이 경선에서 얻은 33%의 지분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고스란히 김대표에게 넘겨줄리 없다. 그의 민자당 재입성은 당재 지분 확보를 전제로 했다고 봐야 한다. 차차기를 겨냥한 고육지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의원이 당내에서 일정 지분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그는 잃은 것이 더 많다. 그가 경선을 거부하고 국민을 상대로 줄기차게 외쳐온 ’새정치 새인물‘의 구호가 허황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민자당 후보경선 직전이 5월 중순 장기간 침묵 끝에 김영삼 후보쪽으로 선회한 金鍾泌 최고위원이 이종찬 후보의 광화문 사무실을 찾았을 때다. 박태준 최고위원과 尹吉重 고문 등이 이의원과 함께 김최고위원을 맞아 환담을 나누었다. 김최고위원이 “사무실이 널찍하고 참 좋다”면서 서두를 꺼내자 윤길중 고문은 “청화대도 가깝다”고 응수했다. 김최고위원이 다시 “임대료가 비싸겠다”고 말하자 박최고위원은 싱긋 웃으면서 “그래도 대통령 선거를 치르려면 연말까지는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대꾸했다. 정치인의 농담 속에는 ‘뼈’도 없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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