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떡’이라도 맛있어야 사 먹지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3.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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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특혜 부담’덜고 실속 따져 수주

유통업에 진출하려는 한 그룹은 최근 분당 서현역사를 분양받는 방안을 검토했다. 지하 5층에 백화점과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설 이 역사는 토개공 시설관리공단이 분양하는 것이다. 이 공단은 역사 분양 신청자를 공개 모집하는 것만로는 성이 안차 이 그룹처럼 유통업에 관심 있는 그룹들에게 개별적으로 분양 의사를 타진해왔다. 민자 역사 등 정부 서업을 놓고 기업들 간에 벌이는 수주전의 양상은 과거와 다르다. 과거에는‘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으로 기업들이 몸 달아했던 것이 지금은 반대 양상이다. 예전에 정부 사업 수주에 큰 관심을 보였던 기업들은 오히려 담담하다.

공기업 민영화 · 사회간접자본엔 관심 시들  
 물론 기업들이 여전히 달려드는 분야가 있긴 하다. 곧 주간사가 결정될 경부고속전철 차량제작 사업의 경우 두 경쟁 업체가 상대를 깍아내리는 이전투구를 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1천여 업체가 신청한 유선방송(CATV)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경쟁도 치ㅣ열하다.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제 2 이동통신 사업도 이런 예에 속한다. 이런 사업들은 대개 이전 정권 때부터 추진된 것으로 수익성이 좋을 것으로 예견돼 왔다. 그러나 공기업 민영화나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명분 종은’새 일감은 경우가 다르다. 우선 물량이 넘쳐난다. 웬만큼 좋은 조건이 아니면 기업의 눈에 차지 않을 정도다. 평당 7백만원씩, 총 1천1백억원의 투자비가 소요 될 것으로 추산되는 부당 서현역사 분양만 해도 응찰자가 없어 지난 11월30일 유찰되고 말았다. 과거 같으면 일단 달려들었을 기업이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토개공 시설관리 공단측에서는 대금 지불조건을 완화해 2차 분양을 실시할 예정이다. 기업들이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계획에 대해 큰 관심을 보여온 것은,공기업 사업 영역의 독점적 성격으로 수익성이 높기 때문이다. 새로이 진출할 사업 영역이 마땅치 않은 대기업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각 대기업에서는 그룹 통합기구인 회장실이나 기조실이 중심이 돼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중인 경제기획원의 입장을 타진했다. 그런데 정부의 구체적인 민영화 계획이 확정되면서, 대기업들의 관심이 오히려 시들해지고있다. 대부분의 경제 부처가 11월20일까지로 기간을 넘겨 제출한 민영화 계획은 정부의 당초 계획과 거리가 멀다. 공기업 민영화계획을 검토했던 한 그룹의 회장실 관계자는“덩지가 큰 23개의 정부투자기관에 대한 민영화 계획에 대해선 전혀 언금이 없고, 팔겠다고 발표한 주식도 이들 투자기관이 경영권과는 상관 없이 단지 투자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주식들이다”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대기업들의 관심이 집중된 한국중공업 · 산업증권 · 한국비료 등은 이번 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다. 다만 상공자원부가 한국중공업을 96년께 민영화하겠다고 다소 막연한 계획만을 밝혔을 뿐이다. 대기업들은 정부가 발표한 사회간접자본 확충계획에도 관심이 많았다.

현재‘사회간접 자본 추진위원회’나 비슷한 이름의 전담 조직을 만든 그룹은 한진 현대 삼성 럭키금성 대우 도아 그룹을 비롯해 10여개 회사에 이른다. 그만큼 대기업들 이 분야에 쏟는 관심이 높았다. 대기업들은 정부가 앞으로 10년간 투자할 90조원의 사회간접자본 확충 재원 가운데 25% 가량을 민간 자본으로 충당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후부터 이 분야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정부는 현재 내년 상반기에‘민자유치법’을 입법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기업의 의견을 듣고있다. 그동안 사회간접자본 부족으로 곤란을 겪어 왔던 기업들 스스로가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특히 전경련은 국가경쟁력 강화사업의 일환으로 회장단이‘사회간접자본 확충 배가운동’을 주장하고 있다(민간 기업의 사회간접자본 부문 참여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는 전경련에서 상공회의소로 바뀌었다). 건설이나 유통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대기업들은 만일 민간 자본을 유치하려는 정부가 사업에 어느 정도의 유인 요소만 제공해 준다면 뛰어들겠다는 태도이다. 그러나 아직 정부의 계획 자체가 언제 구체화하고, 어떤 건설 사업에 얼마만큼 민간자본을 끌어들이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지난11월초 전경련에서 열렸던‘사회간접자본 민간참여 간담회’에 참석했던 많은 대기업 담당자들은“정부가 구체적인 민자 유치 계획을 밝히지 않아 각 그룹에 설치된 담당 위원회가 이를 조사하느라 시간을 다 허비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각 기업은 아직 사업의 타당성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은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했을 때 과연 수익성이 보자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난8월부터 민간 기업이 사회간접자본 참여에 딸는 애로 사항을 조사해온 전령련이 회언사와 정부에 제출한 자료에는, 70년대에 건설된 인천항 4qen의 투자비 회수 실태가 나와 있다. 동아그룹 계열사인 대한통운과 한진그룹 계열사인 하진이 참여한 이 사업에서 두 기업의 투자비 회수 실적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93년부터 무상 사용기간이 끝나가는 이항만 시설 사업에서, 대한통운과 한진은 각각 초기 투자액의 70%와 47%만을 회수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 회수액도 금리를 제외하고 소비자 물가상승분만을 감안한 것으므로 실제 회수유은 더 낮을 수밖에 없다. 원효대교도 수지가 맞지 않았던 사업이다. 다리의 투자비는 결국 통행료로 건져야 하는데, 시설 이용료를 인상할 수 없어 수지를 맞추지 못하자 동아건설은 아예 이 다리를 포기하고 말았다.

수익성 있는 민자 역사 사업엔 수주전
 민자 역사 사업은 예외에 속한다. 기업들은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역사 사업은 수익성이 꽤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최근 대기업들은 서울 시내 주요 역인 영등포 · 청량리 역사에 이어 개설될 새로운 민간 역사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철도청은 아직 구체적인 민자 여사 사업자 선정계획을 밝히고 있지 않지만, 대기업들은 서울  시내의 용산 · 신촌 · 개봉 역과 수원역을 민간 기업에 맡길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 · 럭키금성 · 대우 그룹 등이 이미 숮ㄴ전에 돌입한 상태이다. 상업차관 허용 문제도 정부와 대기업의 입장이 미묘하게 엇갈리는 부분이다. 대기업들은 사회건접자본 건설에 드는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해외 상업차관을 허용해 달라고 건의했다. 이에 따라 재무부는 사회간접자본 분야에 국한해 상업차관을 허용할 뜻을 비쳤으나 다른 부처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최근 정부는 상업차관을 허용하지 않기로 최종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져,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민간 기업의 참여을 더욱 어렵게 할것ㅇ로 보인다(《시사저널》제215호 경제동향 참조).

그러나 문민 정부가 벌이는 사업에는 과거 정권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분당 서현역사 분양을 검토했던 회장 비서실 담당자는, 이 사업의 매럭으로 단연 과거와 같은 특혜 의혹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것을 꼽았다. 그는“만일 이전 정권에서 이런 사업에 손을 대려면, 얼마간 특혜 시비에 시달릴 각오를 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문민 정부가 개혁 차원에서 벌이는 사업을 국민즐이 곱지 않은 시각으로 보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과거 정부가 내준 대형 사업을 수주하기만 하면 특혜 시비에 휩쓸렸던 대기업들이 ‘특혜 의혹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부사업에 손을 댈지 아직은 모른다.
金芳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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