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식 소비’ 물드는 가리봉동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3.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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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공단 오거리, 생각기지 활력 잃고 소비 자본주의 공간으로 변모

만약 선술집이나 해장국집이 늘어서 있는 지방 소도시 장터에 피자 전문점이 들어선다면, 그것은 주변의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거기에 수지타산이 안맞는 장사를 벌일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렌지족이 몰려드는 압구정동에서 번창하는 카페가 노동자들의 생활터인 구로공단 일대로 진입하지는 않는다. 자본은 이처럼 필요에 따라 공간을 분할하고 거기에 전혀 다른 풍경을 심어놓는다.

 언론에서 그려낸 압구정동의 화려한 풍경을 염두에 두고, 구로공단 일대에서 오렌지족의 반대편에 서 있는 노동자들의 ‘소박한 소비문화’를 확인하려 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구로공단 일대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문화를 분석하려고 섵부른 연구자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이곳을 찾았다가 머리만 혼란해진 채 발길을 돌리는 일이 왕왕 있다고 한다. 압구정동 유흥업소들이 구로공단으로 진입하지는 않았지만, 거꾸로 구로공단 주변 유흥업소들이 점차 압구정풍을 닮아가고 있다는 얘기이다. 물론 이러한 조짐이 구로공단 일대에서 지배적인 것은 아니다. 구로공단 일대에는 지금 ‘비동시적인 것들이 동시에’ 뒤섞여 있다.

노동자 줄고 넥타이 부대·젊은이 등장
 이른바 가리봉 오거리. 지도에 ‘공단 오거리’로 나오는 이곳은, 구로공단이 생겨난 이래 이 지역 노동자들의 생활과 문화의 중심지로서 기능하면서 구로 지역의 사회 · 경제 · 문화적 변화를 예민하게 반영해 왔다. 이전부터 신촌 지역이 대학생 문화를 대표해 온 공간이고 압구정동이 새롭게 떠오른 상류층 젊은이들의 집결지라면, 가리봉 오거리는 피로에 지친 한국 노동자들의 땀과 좌절과 막막한 미래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상징적 장소였던 셈이다. 그러한 가리봉 오거리가 2~3년 전부터 변모하고 있다.

 “70년대엔 튀김집에서 배를 채우고 값싼 선술집에서 피로를 풀었습니다. 5공화국 이후 그 자리에 갈비구이집과 찾집, 스탠드바가 들어섰지요. 그러다가 80년대 말부터 스탠드바가 싹 사라지고 소고기 뷔페와 호프집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더군요. 호프집은 몇해 안 보이다가 요즘 노래방과 함께 다시 성행합니다”. 구로동에서 20년째 살고 있다는 교학사 노조위원장 정선근씨(43)의 말이다. 구로공단내 노동운동가 사이에서 마당발로 통하는 정씨의 관찰은 구로공단의 경기 흐름에 붙어 살이해온 가리봉 오거리의 변화를, 거칠게나마 시대별로 정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구로공단에서 노동하고 가리봉 오거리에서 소비해온 이 지역 노동자들의 삶은 숨가쁘게 성장해온 한국 경제를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63년 정부의 수출산업육선방안에 따라 조성되기 시작한 한국 최초의 국가계획 공업단지인 구로공단은, 73년 제3단지가 준공됨으로써 완성됐다. 당시 산과 논밭으로 둘러싸인 이 일대가 공단 입지로 선정된 까닭은, 거대 소비시장인 서울을 끼고 있으며 경인서·경수선·경인국도 등 수송수단이 좋고, 무엇보다도 서울에서 밀려난 철거민이 값싼 노동인력으로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로공단은 농토를 수용당한 농민과 도시에서 밀려난 철거민이 공단 노동자로 흡수되는 전형적인 초기 자본축적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한국 경제에서 구로공단이 차지했던 지위가 차츰 허물어지면서, 가리봉 오거리도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80년대 중반 장사가 잘될 때에 비해서 요즘은 매상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습니다. 해마다 구로공간에서 사람이 빠져나가니 당연한 결과죠.” 가리봉 오거리에서 10여년째 국밥을 팔아온 ‘공단식당’ 주인 남자의 푸념이다. 나이가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 식당 주인에 따르면, 자기가 가리봉 오거리에 식당을 개업한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노동자들이 주로 튀김·떡볶이·순대 따위를 파는 분식집에 몰렸지만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한다.

 공단 노동자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업소들의 이같은 불경기는 이 지역 노동자 수의 급격한 감소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공단 노동자 수는 공식적으로 87년 7만3천1백95명에서 92년 5만5천8백40명으로 줄었다. 수출이 호전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입주 업체나 노동자들이 속속 공단을 빠져나가는 상황을 빗대어 언론은 ‘구로공단의 침체기’라고 묘사해 왔다. 실제로 91~92년 총 2백80여 입주 업체들 중 21개 업체에서 부도가 났을 정도이다.

 설사 경기가 되살아난다고 하더라도 구로공단이 주요 생산기지로서 예전의 활기를 되찾기는 어려운 것 같다. 공단 관계자들의 이같은 전망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단 내 몇몇 대기업은 구로 지역의 훌륭한 수송조건을 역이용해 공장을 생산기지가 아닌 창고로 활용하고 있으며, 의류·전자 계통 회사는 몇해 전부터 공장을 동남아 등 임금이 싼 해외로 옮기고 있다. 그리고 공장을 경기도 일대 신생 생산기지로 이전하고 빈 곳간을 하청 업체에 임대해 주든지, 아니면 생산공정을 축소하고 단순 노동이 필요한 공정을 독산동 · 광명시 등 공단 외곽 지역에 있는 영세 업체에 하청 주기도 한다. 이래저래 공단 노동자 수는 줄어들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요즘 구로 지역 노동운동의 최대 쟁점은 다름 아닌 ‘고용 불안’ 문제이다.

 예전에는 구로공단이 먹이사슬의 맨 밑바닥에서 힘겹게 경제성장을 떠받쳤지만, 이제는 동남아나 구로 외곽 지역에 ‘또 다른 구로공단’을 만들며 그 역할을 다른 지역으로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가리봉 오거리를 중심으로 한 구로공단 지역은 이제 생산기지로서의 활력을 잃어버린 채 점차 소비 지역으로 변하거나 슬럼가로 전략하고 있는 셈이다. “옛날에는 공단 노동자들뿐이었지요. 그런데 요즘 가리봉 오거리에는 노동자들이 줄어든 반면 넥타이를 맨 사람이나 젊은이들이 눈에 띕니다. 이 거리를 채우던 사람들이 바뀌고 있는 거죠.”14대째 내리 구로 지역에 살고 있다는 ‘로타리 부동산’ 박세현씨(57)의 말이다.

편의점 · 커피전문점 · 노래방 등 출현
 ‘서울의 공간 분석’을 주제로 책을 출판할 예정인 계간지 《문화과학》 편집장 황동일씨(28)는 “구로공단이 환경 변화를 버텨내지 못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다른 공간으로 전가하고 또 다른 산업기지이든 소비지역이든 새로운 공간으로 재구조화해가는 단계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즉 한국경제의 전략적 거점으로서 구로공단의 효용은 한계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변화를 간파한 유흥업소들이 새로운 고객을 찾아나섰다는 얘기다.

 여하튼 구로공단이 몰락하는 와중에 가리봉 오거리 한켠에서는 기존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업소들이 탄생하는 중이다. 24시간편의점·커피전문점·노래방·액세서리 체인점·피자집 따위가 그것이다. 벽을 헐어내고 유리로 단장한 새로운 업소들은, 매장 안에 있는 사람과 길을 걷는 사람에게 서로 ‘노출과 훔쳐보기’를 조장한다. 그것은 이미 압구정동서 누자 확인된 공간 구성 방식이다.

 어쩌면 그것은 압구정동에서 발홍해 바야흐로 한국 땅 전역을 장악해가는 세련된 소비 자본주의의 선발대인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 가리봉 오거리에서 이 업소들은 시대착오적인 느낌을 주며 주변의 경관과 어울리지 못한다. 어느 쪽의 승리로 결판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새로운 유형의 업소들은 지금 가리봉 오거리에서 기존 업소들과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다만 분명한 점은 가리봉 오거리에 서태지 복장을 흉내냈지만 다소 불량끼를 드러내는 젊은이들과, 이른바 넥타이 부대가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공단 노동자들이 이런 업소에 출입하기를 꺼리는 것도 아니다. 올해 9월 개업했다는 커피전문점 ‘마농’ 주인 권영옥씨(여·26)는 “퇴근 시간 후에 손님이 몰리는데 생산직과 사무직이 반반”이라고 말한다.

 80년대 구로지역 노동운동가들의 현실적인 고민 중의 하나는, 파업 현장에서는 투쟁가를 목청껏 부르다가 일단 공장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최진실의 포로’가 되는 노동자의 생각을 어떻게 뜯어고치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그런 점을 긍정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소비 자본주의의 달콤함을 지향하는 노동자들의 정서는 지금도 여전하다. 아니, 상대적 박탈감에 주눅든 노동자들이 다른 계층보다 더 강한 욕구를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단내 (주)진도모피에서 가장 잘 모이는 동호회는 한울타리라는 볼링 동호회다. 예전에 공단내 동호회는 축구와 등산이 전부였다고 한다. 다양한 동호회가 생겨났지만 이렇다할 문화공간 하나 없는 구로 지역에서 대다수 노동자가 욕구를 발산하는 방법은 역시 ‘술과 노래’이다. “수입이 빠듯하니까 자주 놀지는 못해요. 호프집에서 한잔 하고 노래방가서 스트레스를 푸는 게 정해진 코스예요. 주말만 되면 신림 사거리에서 노는 애들도 있고요. 좀 비싸기는 하지만 거기는 화려하고 깨끗하거든요.” 한달 수입이 44만원이라는 이모양(23)의 말이다. 이양은 8년째 한 공장에 근무하고 있는데, 지금은 구로 지역에서도 거의 사라진 이른바 ‘닭장 집’에 아직까지 살고 있다. 이양의 말대로 가리봉 오거리를 탈출한 젊은 노동자들은 시림 사거리, 영등포역 앞 롯데·신세계 백화점 주면, 광명시나 철산동 상업지구로 향한다.

 이것이 가리봉 오거리의 현주소이다. 젊은 노동자들이 ‘촌스럽다’고 다른 지역을 찾아나서는 한편에서는 넥타이 부대와 십대가 거리를 잠식해 들어오고, 이들의 높아진 문화 욕구를 겨냥한 압구정풍 유흥업소가 들어서서 기존 업소와 경쟁하는 상황이다. 쇠퇴하는 구로공단 일대에 서울은 기어코 여러 개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吳民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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