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모 드러낸 헤어 누드 일본 ‘시민권’ 얻었나
  • 도쿄 · 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3.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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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다” “성의 상품화다” 논쟁 한창

 ‘헤어 누드’는 예술이냐 외설이냐. 일본출판계가 지금 치모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헤어 누드 개방 논쟁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다.
 일본에서 제일 크다는 도쿄역 앞에서 야에스북센터. 1층의 한 코너에는 수십 종류의 누드 사진집이 진열대에 꽉 들어차 있다. 모델은 40대의 한물 간 여배우에서부터 30대의 중견 여배우와 20대, 그리고 10대의 우상 가수까지 거침없이 자신의 알몸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비닐 커버로 밀봉돼 있어 내용은 잘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여배우의 사진집 하면 헤어 누드가 상식이다. 이 서점의 관계자에 따르면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여배우의 사진집은 대략 3백 가지. 그 중 절반 가량이 누드 사진집이고 그 대부분은 약방의 감초 격으로 반드시 헤어 누드가 기여 있다고 한다.

 잡지도 마찬가지다. 잡지 코너에는 포르노 잡지뿐 아니라 일반 주간지도 헤어 누드 사진을 싣고 있다. 대표적인 잡지는 종합 주간지라는 《주간 현대》와 《주간 포스트》로 일본 정국의 향방을 점치는 기사와 함께 여배우의 헤어 누드 화제도 최근의 단골 기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모가 보인다. 안 보인다’로 큰 소동을 벌였던 것이 일본의 출판계다. 사진집은 물론 일반 주간지에도 등장하기 시작한 헤어 누드는 과연 일본 사회에서 시민권을 획득했는가.

단속 강화에 출판계 크게 반발
 헤어 누드 사진집이 일반 서점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중견 여배우의 누드 사진집 《워터 푸르트》가 재작년 1월 출판된 것을 계기로 누드 사진집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게 됐다.

 이유는 그전까지 헤어 누드 단속에 적극적이었던 경시청이 이 사진집에 대해서는 가벼운 구두 경고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경시청은 ‘음모는 외설죄를 구성하는 요소이긴 하지만 그것이 보인다는 것만으로는 죄가 성립된다고 볼 수 없다’는 유권 해석을 내렸다.
 일본출판과학연구소에 따르면, 이러한 경시청의 방향 전환에 따라 91년 1백77종 발행 되었던 누드 사진집이 92년에는 2백종으로 늘어났고, 올해는 5월말 통계로 2백20종이 발행되는 성황을 보였다.
 이러한 해근 무드에 편승해 표현이 날로 과격해지자 경시청은 최근 다시 단속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사진가 아라키 노부요시(荒木經惟)씨의 사진집 《AKT-TOKYO》를 수입 판매하던 세이부 백화점 여직원 2명을 외설문서 반포 혐의로 체포한 것이 바로 그 예다.

 헤어 누드 해금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듯 경시청이 단속을 강화하자 출판계 및 일부언론은 크게 반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선 예술성과 외설성을 누가 어떻게 판단하느냐 하는 문제가 나온다.
 일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아라키씨의 사진집 《AKT-TOKYO》는 오스트리아 정부가 펼치는 문화 사업의 일환으로 출판된 사진집, 현재 유럽 각국에서 순회전시중인데, 그를 옹호하는 문화인들은 “오스트리아 정부가 인정한 예술 사진집이 왜 일본에서는 외설죄에 해당하느냐”라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또 하나는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문제다. 인간에게 음모란 신체의 일부에 불과한 것인데, 그것이 외설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여성의 성에 대한 남성의 편견일 뿐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 예로 6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한 재판을 예로 든다. 즉 ‘인체의 각 부분은 다른 부분과 비교해 특별히 외설스럽다고 인정되는 곳이 있을 수 없다’는 판결이다.

 경시청이 외국 작품에 대해서는 외설의 기준을 완화하는 점도 그들에게는 큰 불만이다. 지난 9월 한 백화점 전시장에서는 여성 성기를 주제로 한 사진전이 열렸다. 작가는 프랑스의 화가 앙리 마케로니. 여성 성기를 확대해 놓은 작품인데 얼핏 보면 판독이 어려운 사진들. 경시청은 이 사진전에 수사원을 파견했으나 특별한 조처는 취하지 않았다.
 작가 이즈미 아사토(泉麻人)씨는 ‘일본의 논점’이라는 글에서 “일본이 성문화를 세속화 해 온 것은 매스미디어의 죄”라고 지적하고, 젖가슴에서 헤어 누드로 잡지 · 텔레비전의 성 묘사가 날로 과격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조교수 이노우에 쇼이치(井上章一)씨도 최근 《사피오》라는 격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앞서의 주간지들은 “헤어 누드를 게재하고 안하고에 따라 판매 부수에 5만부 정도의 차이가 난다”라고 지적하고 “일본의 매스미디어들이 헤어 누드가 완전히 개방되면 이번에는 성기에 도전하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코믹 만화 · 잡지 반수가 성행위 묘사
 이에 대해 《주간 현대》의 곧도 다이스케(近藤大介)씨는 “물론 판매 부수에 영향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잡지를 구독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판단이다. 최근의 헤어 누드 개방은 쌀시장 개방과 비슷한 차원의 문제다”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일본 각 분야에서 일고 있는 규제 완화 움직임에 따라 성에 대한 표현도 자유화 추세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자유화는 반드시 부작용를 낳는 법이다. 규제강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이른바 ‘코믹 만화·잡지’가 바로 좋은 예다.
 일본의 코믹 만화·잡지 시장 규모는 줄잡아 5천억엔으로 독자층은 주로 청소년들이다. 이 산업의 급성장하게 된 것은 바로 과격한 성묘사 때문이다. 도쿄도 생활문화국 부인과가 얼마전 조사한 ‘성의 상품화’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조사 대상 만화 1천2백종 속에 약 반수가 성 행위를 묘사하고 있었다.

 이러한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일본 전국에서는 포르노 만화 박멸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각 자치단체는 조례로 이를 규제하기에 이르렀다. 경시청도 도쿄도 내의 만화 출판사를 급습해 발행자를 체포하는 등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성 정보의 범람으로 청소년들의 풍속도 크게 변했다. 이른바 ‘쥴리아나 현상’이라는 게 바로 그것이다. 쥴리아나란 도쿄의 한 디스코장 이름. 2년전 문을 연 이 디스코장은 고막이 찢어질 듯한 헤비 메탈 뮤직과 현란한 조명 그리고 중앙의 오다치다이라는 무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오다치다이라는 무대를 목표로 일본 전국에서 젊은 여성들이 몰려들고 있는데 문제는 그들의 복장이다. 훈도시를 연상케 하는 이른바 ‘T 바크’와 그보다 더 노출이 심한 ‘L 바크’ 차림이 보통이다. 이 모두가 알몸에 가까운 차림이다.
 일본의 성문화가 본래 개방적인 것은 일본인의 무신앙 때문에 그렇다는 지적이 있다. 거기에 매스미디어의 약팍한 상혼이 ‘성의 상품화’ 현상을 가속시켜 왔다. 바로 이러한 저질 대중 문화가 일본 문화의 전면 개방을 가로막고 있는 큰 요인이다.
도쿄 · 蔡明錫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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