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 활주로’ 지역 연구 활기
  • 성우제 기자 ()
  • 승인 1993.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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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발전론》《황해문화》《서울연구》등 잡지·연구서 잇달아 출간



 ‘서울공화국’이란 말은 이제 우리에게 낯선 용어가 아니다. 서울은 지금 한국 중앙 행정 기능의 100%, 경제 기능의 76%, 정보 기능의 93.6%, 국제 기능의 92.7%를 보유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기능이 이곳에 집중해 있고, 서울 이외의 지역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고유의 기능과 성격을 서울에 빼앗긴지 오래이다.

 최근 서울의 재집중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지역과 지방을 활성화하기 위한 연구도 점차 활기를 띠어가고 있다. 공화국이 된 서울을 연구하거나 서울공화국에 반기를 들고 나타나는 이와 같은 연구는, 중앙집권화에 대한 분석 혹은 반발일 수도 있으나, 국제화라는 새로운 경향에 대처하려는 구체적인 움직임이기도 하다. 최근 인천과 부산에서 출간된 계간 《황해문화》(새얼문화재단)와 《부산발전론》(동남개발연구원)이 국내의 환경에 구체적으로 대응하려는 지역연구릐 결과라면, 서울에서 출간된 《서울연구》(한국공간환경연구회)는 기존의 서울론을 넘어서서 ‘공간정치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입장에서 서울을 총체적으로 해부하고 있다.

 각 지역에서 출간된 세 권의 책자는 서울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졌다는 점 외에도 ‘보편성이 부족한 소박한 향토주의’를 넘어서서 자기 도시에 대한 냉정한 비판과 전문적인 연구 성과를 담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자기 정체성 확보가 국제화 과제
 ‘전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슬로건을 내건 《황해문화》는 ‘문화를 중심으로 한 종합지’ 성격을 표방한다. 시·소설 같은 창작물과 서평, 그리고 과학과 역사 논문이 실려 있지만, 《황해문화》는 창간호인 만큼 황해와 인천과 관련한 특집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영종도 신공항 건설에 대한 찬반 입장들을 쟁점으로 다루고 ‘국제경제 질서의 재편―지역주의의 부상’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황해문화》편집위원인 최원식씨(문학 평론가·인하대 교수)는 10년을 준비해 이 잡지를 창간했다면서 “《황해문화》는 우선 냉전과 분단의 고착 속에서 분해된 인천 지역의 구심을 광범한 연합 속에서 재건하는 데 주력하겠다”라고 말했다.
 계간지 《황해문화》가 인천의 문제를 바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전체의 시각, 동아시아 또는 세계체제와 분리해 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면, 단행본인 《부산발전로》은 부제를 ‘국제화시대 지방의 발상과 전략’으로 달아, 국제화와 지역화가 결코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부산 지역 대학교수들과 동남개발연구원 연구원들이 필자로 참여한 이 연구서 ‘환태평양 거점 도시로서의 부산’이라는 미래상을 제시하면서 지방발전 전략, 부산 국제화의 의미와 시스템화, 경제 침체 극복방안과 더불어 교육과 시민성에 이르기까지 넓고 깊게 부산을 읽고 있다. 동남개발연구원의 박인호 연구위원은 “큰 변혁의 흐름으로 등장한 국제화라는 현상 속에서 지역이 변동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국가가 모든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국제 지역간 경쟁시대에는 국가의 한 부분인 지역이 그 역할을 더맡아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황해문화》와 《부산발전론》은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지역의 자치성·자율성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서울연구》는 지역의 자치성을 가로 막았던 중앙집권적 형태의 서울을 새로운 접근 방법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공간환경연구회가 펴낸 이 연구서는 ‘한국자본주의의 심장’인 서울을 철저한 사회과학적 시각으로 해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서울의 새로운 생산구조, 제조업의 재편과정, 생활과 문화 등을 다룬 논문 20여편으로 꾸며진 이 책자는, 지금까지 현상론적 논의로 끝나버린 서울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사회과학적 탐구 대상으로 보다 본질적인 면들을 살피고 있다.

 이를테면 ‘서울이라는 공간적 맥락에서 고유하게 작용하는 주택의 정치성·계급성, 남산의 토지 이용을 에워싸고 전개될 사회세력간의 역학관계, 서울의 경제를 국제화하는 지배적인 자본의 성격’과 같은 쪽으로 연구의 방향을 새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 책임자인 조명래 교수(단국대·지역개발학과)는 “지역은 이제 계급에 준하는 사회 분화 효과의 기제를 가지고 있다”면서 지금은 지역 격차의 중요한 단면을 사회과학적 단면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양에서 서울까지>라는 제목의 지역 관련 전시회가 성황을 이루고, 지역에 관한 관심과 연구가 활성화하는 것은 국제화·개방화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김안제 원장은 “우루과이 라운드가 타결되면 우리 농천까지 국제무대에 내놓는 것이다. 자기 지역을 똑바로 인식하고 발전 전략을 모색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라고 말했다.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는 일은 국제화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중대한 과제라는 것이다.
成宇濟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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