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자식 불행도 우리 것
  • 허광준 기자 ()
  • 승인 199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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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협' 어머니들 목요일마다 탑골공원서 '양심수 석방 위한 모임'



 가족에 대한 일차적 애정은 시대가 바뀌어도 그 샘이 마르지 않는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회원들이 아직 감옥에서 나오지 못한 가족에 쏟는 애정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에게는 날카롭게 벼려진 국가보안법의 칼날이 살아있는 한, 또 '3백59명에 이르는 양심수'들이 감옥에 갇힌 채 사회적 삶을 유보당하는 한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셈이다. 민가협 회원들이 차가운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로 나서는 것은 이같은 현실 인식 때문이다.

 5 · 6공화국 시절 민주화 운동의 맨 앞자리를 담당했던 민가협이 지난 9월 23일부터 서울 종로 탑골공원 앞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석방을 위한 목요집회'를 갖고 있다. 오후 2~3시 한시간 가량 계속되는 이 집회에서 민가협 회원들은 '국가 보안법 철폐'나 '양심수 석방'이라고 쓴 머리띠를 두르고, 감옥에 갇힌 양심수의 사진과 약력이 적힌 피켓을 들고 시민의 관심을 촉구한다. 목요 집회는 매주 따로 작은 주제를 정해 열린다. 10월7일에는 올해로 43년째 감옥에 갇혀 있는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씨(69)를 석방하리라는 주제를 내걸었고, 10월28일에는 유서대필 사건 진상 규명과 강기훈씨 석방을 요구했다. 11월4일은 고문경찰관 이근안의 검거를 촉구하고 집회였고,  같은 달 18일엔 양심선언을 한 군인 · 전경을 석방하라는 주제로 집회를 열었다. 노래패의 협조를 얻어 즉석 거리 공연을 열기도 했다.

 집회에 참석하는 민가협 회원들은 거개가 50 · 60대로, 남의 자식의 불행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넉넉함으로 운동권의 대모 노릇을 해왔던 이들이다. 자식을 감옥에 보낸 후 민주화 운동에 눈떠 각종 집회와 농성장, 시국 관련 재판정을 빠뜨리지 않고 찾아다니며 '단련된' 이들이지만, 집회에서 우리의 아들 딸을 돌려달라는 연사의 호소가 썰렁한 보도 블록 위로 메아리질 때는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성탄절 특사 때 많이 풀려났으면
 바삐 오가다 집회를 보게 된 시민들은 '아직도!'라며 놀라는 사람이 많다. 문민 시대에 시국 사건으로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여태 그렇게 많은가 하는 놀라움이다. 그러나 민가협은 오히려 양심수가 더 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민가협에 따르면, 올해 초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구속된 양심수는 모두 1백20여명이다. 이들에게 적용된 법규는 절반이 국가보안법이고, 폭력(25.2%) 노동관계법(14.2%) 군관계(10.9%) 집회 · 시위 관련(9.5%)등이다. 민가협은 '한 사회가 독재체제인가 민주사회인가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는 양심수의 존재 여부라고 강조하며, 문민 정부는 군사 정부와 분명히 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탐골공원 앞의 민가협 어머니들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오월광장'을 민주의 성지로 만든 아르헨티나 어머니들을 연상시킨다. 이들은 76년 군사 쿠데타 이후 8년 동안 계속된 강권통치 기간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1만여 명의 어머니들로, 군사 정권 때부터 자연스레 모여 자식을 잃은 고통을 나누고 군사 독재의 만행을 침묵으로 고발해왔다. 아르헨티나 오월광장의 어머니들과 탑골공원 민가협 어머니들은 매주 목요일에 모여 시민적 양심을 호소하는 행사를 갖는다는 공통점을 통해, 어느 땅에서나 억압과 불합리가 있으면 이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나오게 마련임을 보여준다.

 목요 집회는 12월17일~23일 '매일 집회'로 바뀐다. 24일로 예정되어 있는 성탄절 특사때 좀더 많은 시국 관련 재소자들이 사면 북권 테두리 안에 들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지난 2월 대통령 취임 때 있었던 사면 조처가 크게 미흡했다고 생각하는 민가협 회원들은, 이번에는 자신들의 외침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질지 주목하고 있다. 민가협 총무 남규선씨(31)는 문민 정부가 태어나고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과거 유산인 양심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넘어가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지금 민가협 간부들은 성탄 특사가 발표되고 난 뒤 또다시 실의에 빠질지도 모를 회원들을 어떻게 다독거려야 할지 걱정하고 있다.
 許匡畯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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