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스포츠의 샛별/진흑에서 캔 ‘육상 진주’
  • 조동표 (스포츠 평론가) ()
  • 승인 199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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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군하 · 유효매, 집념의 다리로 93년 세계 정상 질주

올해 중국 육상계는 2명의 스타를 배출했다. 세계 장거리의 여왕 왕군하(王軍霞)와 던거리 선수 유효매(劉曉梅)가 그 주인공이다. 이 두 여걸은 놀라운 기록으로 세계 스포츠계를 당혹케 했다.

 왕군하는 지난 9월의 전중국 체육대회에서 3개의 세계 신기록을 세웠고, 이어 스페인의 산세바스찬에서 열린 월드컵 마라톤에서 우승해 세계 장거리의 여와 자리에 올랐다. 그의 아버지에 따르면, 어릴적의 왕군하는 몸이 허약해 세살이 되도록 머리를 쳐들지 못할 정도로 약골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동작이 빠르고 달리기를 좋아해 소학교를 진학하면서 시합에 나가기만 하면 1등을 도맡았다. 대련 중학에 진학한 그는 육상 경기부에 들어갔다. 육상부 시설은 형편이 없어 매일 아스팔트 길을 달리는 것이 훈련의 전부였다. 그 무렵 왕은 도시락을 싸갈 형편이 못 되었다. 결국 집에 달려와 밥을 먹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곤 했는데, 이렇게 달리는 거리는 하루에 약 10㎞가 넘었다.

 88년 왕군하는 대련 체육학교에 다닐 때 우연히 텔레비전으로 국제육상경기 중계를 보게 되었다. 흑인 선수들이 우승을 독차지하는 장면이었다. 열여섯살이던 왕군하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다음엔 꼭 저 흑인 선수들과 맞붙어 이기고 말 거야.” 작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육상대회 1만m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집에 돌아온 왕은 부모에게 “앞을 달려나가는데 흑인 소녀 서넛이 내 뒤를 따라왔어요”라고 흥분해 말했다고 한다.
 사천성 출신 단거리 선수 유효매는 지금 사기가 충천해 있다. 지난 제7회 전중국 체육대회 여자 1백m에서 23년 만에 11초02로 중국 신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을 일구어낸 코치는 장용위(張容偉). 장씨가 유의 소질을 발견하여 사천성의 新都 대표선수촌에 입촌시킨 것은 유효매의 나이 열세살 때, 84년 12월의 일이다. 장코치는 조각가가 정성들여 작품을 다듬듯 유효매를 대선수로 만들기 시작했다. 단거리, 특히 1백m에서는 스타트와 더불어 전력 질주하는 것이 중요한데 유효매는 이 기본기가 시원치 않았다. 장코치와의 고된 훈련 끝에 유는 중 · 일 학생 대항전 1백m에 출전하여 우승했으나, 89년의 제2회 전국청소년체육대회에서 실패한 다음부터는 아예 경기장에 나가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우울증에 빠진 것이다.

 사천성 육상연맹은 유를 3개월 동안 집에서 쉬도록 한 후 90년에 복귀시켰다. 유는 91년 전국청소년육상경기대회 2백m에서 우승하는 한편 아시아청소년 육상 4백m 릴레이에 출전하여 중국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그해 하반기에 일반부 선수로 달리게 되면서 유는 두 번째 시련을 맞는다. 2백m 기록이 전국 7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장코치는 소질은 있는데 결과가 좋지 않은 까닭을 캐기 위해 정력을 쏟았다. 국내외 우수 선수의 자료와 경기력을 분석한 결과 유효매의 허리 근육 힘이 일반 선수의 5분의 2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 그는 특별 훈련을 실시했다. 누워서 자전거 튜브를 다리에 걸고 끌며 다니거나 9㎏짜리 모래주머니를 허벅지에 매달고 달리는 훈련이었다. 1백70㎏ 역기를 어깨에 메고 앉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스쾃과 누워서 85㎏짜리 역기를 드는 벤치 프레스도 병행했다. 93년 석가장 대회에서 1백m를 11초43에 주파한 것은 이 훈련 덕분이었다. 유의 금년 기록은 세계 5위다.
조동표 (스포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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