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과 함께 줄어든 평화
  • 앙드레 퐁텐느 ()
  • 승인 199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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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내년 1월초 브뤼셀에서 열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에 참석할 예정이다. 다가오는 장래의 북대서양조약기구 역할에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자 하는 것이 이번 모임의 주된 목표이다.

 이 문제는 상당히 중요하다. 이제까지 확실한 승전을 거두고도 명백을 유지해 나가는 동맹을 보기란 흔한 일이 아니었다. 2차대전 동안 독일과 일본에 대항하기 위하여 손을 잡았던 옛 소련과 영국 및 미국은 공동의 적이 함몰하자 이내 냉전 상태로 돌입했다. 그 후 지속된 이 냉전 상태는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산파 노릇을 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상당히 오랜 기간 이 기구의 사무총장을 역임한 벨기에 출신 폴 앙리 스파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를 ‘스탈린의 자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공산체제가 와해하고 소련은 사멸했으며, 옐친이 레닌의 유해를 그의 묘소로부터 끌어내고자 하는 이 시점에서 북대소양조약기구는 아직도 진정으로 필요한가.

 북대소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인 독일 출신 만프레드 뵈르너는 최근 “소련 공산주의의 붕괴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의 역설에 봉착했다. 즉 위협은 줄어들었으나, 이와 아울러 평화마저도 줄어들었다”라고 선언했다. 이는 사실이다. 바스크나 아일랜드 분리주의자들의 테러 행위는 제쳐놓고라도, 유고슬라비아 · 코카서스 분쟁, 발칸반도의 인종 · 종교 분쟁, 아테네와 앙카라 사이의 지속적인 긴장관계,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의 위협 등 유럽 대륙 모든 국가가 국가 안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이같은 국방의 필요성은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국으로 하여금 기존 체제를 유지하도록 부추기며, 과거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몇몇 나라에게는 이 기구에 새로이 가입하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이미 북대서양조약기구와 옛 바르샤바동맹 가입국 간에 ‘협력 이사회’가 결성되어 실현 가능한 임시 조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 · 프랑스는 나토 확대에 부정적
 폴란드와 헝가리는 정식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고, 곧 뒤따를 것으로 보이는 체코공화국 처리 문제는 앞으로 열릴 북대서양조약기구 회담의 주요 안건 가운데 하나이다. 러시아는 이 기구 확대에 대하여 적대감을 표시했다. 이제 공산주의를 청산한 러시아는 그 자신도 초강대국의 면모를 유지, 혹은 새로이 초강대국이 되고자 하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는 마당에 주변 국가들이 지나치게 미국의 영향력에 좌우될까 우려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선 프랑스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언제나 미국의 명령을 받을 필요가 없는 ‘유럽적인’유럽을 건설하려는 대망을 키워온 프랑스는, 방위 문제에서도 이같은 입장을 보인다. 미국의 상업적 · 문화적 야심이 반드시 유럽의 입장과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존하는 유럽 체제는 이같은 방위 욕구를 충족시키기는 불충분하다. 프랑스 · 독일 · 벨기에 연합군은 현재 형성 단계에 있고, 서유럽연합은 자체적인 군대 조직을 가지 못하고 있다. 또 모든 유럽 국가는 물론 미국 · 캐나다 및 옛 소련의 일부 아시아 공화국까지 포함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도 자체 병력이 없으므로 행동에 돌입할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얼마 전부터 효력을 발생하기 시작한 마스트리히트 조약도 방위 문제에 있어서는 지극히 모호하며, 게다가 현상태에서는 시행될 가망이 거의 없다. 많은 여론 조사가 오랫동안 미국을 특징지어 왔던 고립주의가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클린턴이 부시를 누를 수 있었던 것은, 국내에 중요한 사안이 산적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외정책만을 우선으로 하는 부시의 외교 정책이 대다수 미국 유권자의 비난을 샀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같은 미국의 고립주의는 소말리아에 파병한 미군을 철수할 것,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가 유엔 결의안마저도 무시하는 아이티에는 파병하지 말 것 등 최근 백악관에 가해진 압력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클린턴은 캐나다 · 멕시코와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한 의회 비준을 얻어냈지만 이제까지 의회를 상대로 그가 벌인 힘 대결 중 가장 어려운 싸움이었다.

 미국은 이번 비준의 여세를 몰아 유럽, 특히 프랑스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무역 갈등을 완화함으로써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타결을 쉽게 했다. 이러한 국제 정황을 생각해 볼 때,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관한 한 현상유지 쪽으로 대세가 기울 확률이 가장 높다. 새로운 지원국들의 가입 여부뿐만 아니라 옛 소련의 위협과 대체된 새로운 위협의 본질, 이에 대처하는 방안에 대해 심층 논의를 해야 할 각오에서임은 물론이다. 그렇게 하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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