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금속공예 동양권 제압”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1994.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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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良謨 국립중앙박물관장

 鄭良謨 관장(60)은, 지난 12월12일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金銅龍鳳蓬萊山香爐’를 발굴한 것을 ‘국가적 경사요, 상서로운 일’이라고 표현했다. 중국 황실이 독점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알려진 다섯개의 용 발톱을 당당하게 새긴 이 백제 유물 앞에서, 정관장은 이것이 그가 새해 벽두부터 밀어붙여야 하는 대역사(총독부 건물 해체, 국립중앙박물관 건립)와 민족정기 회복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믿는다. 그는 이번에 발굴한 유물들에 직접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근대 국학의 큰 별인 鄭寅普 선생의 아들이요, 한국 도자발달사 연구자로 유명한 정양모 관장을 부여 유적지를 공개한 다음날 아침 만나 보았다.

이번에 발굴한 금동용봉봉래산향로와 71년 발굴한 무녕왕릉을 비교해 평가해 주십시오.
백제 예술이 신라 예술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하지만 이를 뒷받침 할 자료는 거의 없었습니다. 신라에 비해 기록물은 물론 유물도 적은 편이거든요. 이번 유적은 그와 같은 가설을 웅변하는 실증자료입니다. 특히 향로는 그 크기와 표현 감각에서 월등합니다. 백제 공예가 삼국권뿐 아니라 동양권을 제압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이번 유물은 미륵반가사유상과 더불어 백제의 금속공예와 주물 수준이 신라보다 앞섰다는 사실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무령왕릉 유물이 시신과 함께 부장된, 죽은 자의 세계를 보여준다면, 이번 것은 바깥 세상, 즉 살아 있는 자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이번 유적지에서 엄청난 생명력이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백제는 위대하다’는 감탄이 그치질 않는군요.

중국 보물인 박산로와는 어떻게 다릅니까?
중국 것인 부분 묘사의 과장과 상징성이 강해 기이한 멋이 있다면 우리 것은 균형과 조화의 미가 있습니다. 중국 것이 눈썹은 시커멓게 입술은 새빨갛게 화장한 드럼통 체격의 여자라면, 우리 것은 우아하고 늘씬한 미녀랄까요. 크기도 우리 것이 세배 정도 큽니다. 특히 다섯개의 용의 발톱은 백제 왕실의 위엄과 자존심, 독자성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그밖의 중요한 유물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향로가 너무 엄청난 물건이라 빛을 못 봤지만 금동 불상 광배판(부처의 후광)도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 광배이며 앞으로 박사학위 논문 수백 편이 나올 만한 유물이지요.

금동향로에 표현된 백제인들의 사유체계는 무엇입니까?
금동향로 연화문에 연꽃뿐 아니라 새와 물고기가 함께 조각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었거든요. 백제인들의 상상력?포용력의 차원이 얼마나 높은 것이었는가를 알려줄 뿐 아니라 이들이 유가?불교 사상 외에 도가 사상에 깊이 젖어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이번 발굴은 우리 선조들의 사유체계를 재규명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입니다.

우리 문화재에 대한 도굴은 여전히 심합니까?
도자기의 경우 도굴품이 아니면 박물관에서 사들일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 약 5만명 가량의 도굴범이 있다는데, 정부가 이들을 잡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길을 내거나 아파트 지을 때 불도저가 한번 지나가면 절터니 고분이니 다 없어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살아 남는 것은 도굴품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이번처럼 정식으로 발굴하면 되는데 정부가 발굴비로 쓰라고 주는 돈은 너무 적습니다.

지난 한 해 총독부 건물 철거를 놓고 국론이 양분될 만큼 소모전을 벌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 격인 국립중앙박물관은 시종 애매한 태도를 취하더군요.
그렇게 보인 것이 무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중용을 지키려 한 것입니다. 친일파 아니면 문화재 파괴자라는 이분법 속에서 양자를 설득하고 절충안을 내어 타협하는 소입도 중요하거든요.

처음에는 선철거를 반대하다가 나중에 번복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실 처음에 대통령도 구체적 계획 없이 발표했어요. 우리는 어디로 가라는 거냐, 길에 나앉게 하지야 않겠지만 대책이 없는데 무조건 철거부터 하느냐고 반문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새 박물관부터 짓고 천천히 철거하자고 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회교육관이라는 임시 이전 장소가 정해졌기 때문에 나중에는 선철거를 찬성한 것입니다.

철거 결정 뒤 박물관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지요?
헐리기 전에 봐두자는 사람들로 일요일이면 대혼잡을 이룹니다. 일본 관광객도 전보다 훨씬 많이 옵니다.

일본 매스컴의 열기도 컸지요?
대대적으로 보도했지요. 대부분 아쉬움을 표명했는데 <요미우리신문>이 ‘당연한 귀결’이라고 보도해 눈에 띄더군요. 저와 가까이 지내는 일본 친구들 중에도 잘했다는 사람이 더러 있어요. ‘털어내 버리는’ 심정이겠지요. 누군가 자기를 향해 절치부심한다는 데 신경 쓰이지 않겠습니까. 유난히 애석해하는 측은 일본 건축가들입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동양 건물 아니냐며 재고해 달라는 요청을 정식으로 해온 일도 있습니다. 총독부 건물이 궁 안에 있지 않다면 침략의 증거로서 보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총독부 건물은 다시 정밀하게 실측하여 설계도를 만든 뒤 축소 모형을 떠서 전시할 예정입니다.

철거 방법은 정해졌습니까?
폭파하는 방법과 분해하는 방법이 있는데 폭파 공법이 경제적이고 공기도 단축됩니다. 광고 효과도 클테구요(웃음). 그러나 수장고의 유물 문제도 있고, 또 주변 건물이 손상될 거라면서 이 방법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폭파 진동 때문에 이것들이 손상된다는 것은 기우입니다. 몸체는 두부 모썰듯이 잘라내고 머리 부분 돔만 폭파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2000년쯤 새 박물관을 완성하면 국립중앙박물관은 처음으로 내집을 마련하는 셈이지요. 그동안 이사 많이 다녔으니 문화재를 손상하지 않고 옮기는 비결도 있겠습니다.
이삿짐 센터 사장을 해도 될 정도로 옮겨다녔습니다. 특히 저는 덕수궁에서 그 다음 건물로 갈 때 포장운송 반장을 맡기도 했으니 믿고 맡겨도 될 겁니다(웃음). 박물관 유물 11만 점이 다시는 이삿짐 신세가 되지 않는다 생각하면 정말 기쁩니다.

애초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총독부 건물로 들어오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습니까. 당시 박물관측이 한마디 반대 의사도 내지 않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때 이진희 장관 주도로 총독부 건물을 증?개축해서 오게 되었는데, 당시 소요자금 2백억원을 새 박물관을 건립하는 기초자금으로 돌리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전에 우리가 들어 있던 건물은 너무 낡아 정말 위태로웠습니다. 큰 사고 나기 전에 빨리 옮겨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에 어디라도 좋다는 심정이었던 거지요.

제대로 된 박물관을 지으려면 무엇보다 예산이 중요합니다. 예산 확보를 위한 방안은 마련되어 있습니까?
현재 문화체육부가 책정한 것이 3천6백억원입니다만 사실 최소한의 금액입니다. 원래 정부의 공사단가는 아주 낮습니다. ‘인부 임금은 2만원’ 이런 식인데 요새 그 돈 받고 일할 사람 없어요. 어찌됐든 그나마 주는 것은 기획원 마음에 달렸어요. 1년에 3백억원씩 주면 12년 걸리는 거고, 백억씩 주면 36년 걸리는 거지요. 기획원 다니며 사정하는 게 요즘 제 일과입니다. 높은 사람들은 만나주지도 않아요. 몇 시간씩 기다렸다 과장이나 계장을 만나면 ‘그보다 더 중요한 데 쓸 돈도 모자란다’는 식입니다. 그런 기획원에서 이번에 임시 이전 장소인 사회교육관(왕국역사박물관 예정) 증?개축을 위해 1백50억원을 내줬습니다. 뭔가 달라질 것 같은 기대감이 생깁니다. 솔직히 말해 기획원 사람들은 박물관 짓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모두 없앤다면 더 좋아할 사람들이지요.

철거?건립 일정은 어떻게 짜여 있습니까?
용산가족공원 부지 9만평 중 어느 곳이 적당한지 상세히 실측하고 설계를 공모하는 일입니다. 설계 공모는 국제적으로 해 외국인 설계자들의 작품도 받을 생각입니다. 그러자면 그들에게 한국의 인문지리 역사 전통에 대해 교육할 기회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새 박물관 건립은 역대 관장의 최대 희망 사항이었으나 어찌 보면 회피 사항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일을 맡게 된 소감은 어떻습니까?
단순히 박물관 하나를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5천년 민족 정신과 민족혼을 되살리는 대역사의 실무자로서 무척 부담스럽습니다. 더구나 학자의 길을 가는 도중이고 보니 개인적으로는 손실이랄 수 있습니다만 힘껏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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