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금융을 햇빛 속으로
  • 리필상 (고려대 교수 · 경영학) ()
  • 승인 1992.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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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 ? 금리자유화 등 과감한 금융개혁이 열쇠


 6공화국 최대의 사기사건이라 할수 있는 정보사 땅 매각사기 사건은 의혹을 풀지 못하고 수수께끼로 남을 것 같다.검찰은 그동안 수많은 권력형 부정사건에 대 한 수사를 했으나 대부분 핵심을 피한 주변 수사에 그쳤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이번 사건 역시 비자금 조성을 위한 권력형 부정 이 사기 극으로 변질된 것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탈법 ·사기성은 물론 경제의 기본질서를 뒤흔드는 대형 금융비리라는 점 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사건의 의혹이 커짐에 따라 사채 자금이 종적을 감추고 증시 자금 의 이탈이 많아지고 있다. 금융시장 전체가 심각한 자금 경색증을 보이는 것이다. 동맥이 경화되면 생명이 위험한 것과 마찬가지로 금융이 경색되면 경제기반이 흔들린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근본적으로 문제 가 되는 것은 공신력을 생명으로 하는 금융 기관들이 지하금융시장에 발목을 잡혀 있다 는 것이다. 관치금융의 굴레를 벗어나 지하로 흘러든 자금의 규모는 국민총생산(GNP)의 20%가 넘는다. 이렇게 형성된 자금은 노출을 꺼리는 비실명 자금으로 돌아다니면서 금융 기관의 배후에서 실질적으로 자금 흐름을 주 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기관은 치열 한 예금유치 경쟁을 벌이며 갖가지 탈법행위 를 저지르고 있다. 스스로 불법자금을 세탁해 주는 공공기관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금융기관은 70회 이상이나 실 가명으로 어음과 수표를 분할 또는 재결 합하는 형태로 입출금을 조작하여 자금의 출 처를 감추어줌으로써 사기의 환경을 제공하 는 결과를 빚었다. 결국 금융비리는 관치금융 기조에서 누적된 금융의 구조적 허구성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다.

 이때문에 금융비리를 막는 근본적인 대응 책으로 다시 제기되는 것이 금융실명제이다. 이를 실시하면 금융기관을 통해 자금의 흐름 을 쉽사리 추적할 수 있어 불법자금 세탁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문제되는 자금을 대부분 회수할 수 있으므로 사건발생 원인은 자연히 소멸하게 된다. 그러나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다고 해서 금융비리가 완전히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현금을 이용한 소규모 불법 금융거래 는 추적할 방법이 없다. 금융실명제의 보다 큰 의의는 비리의 온상으로 작용하고 있는 지하금융을 제거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금융 실명제의 실시로 불법 금융거래가 차단되면 자금흐름이 제도금융 쪽으로 유도되어 비리 의 서식처가 없어진다. 따라서 권력과 연계되 어 나타나는 음성거래는 근본적으로 발을 붙 이기 어렵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정치와 경계 에 건전한 질서가 정착되면서 기업들이 불법 비자금을 조성할 필요가 없어진다.

 금융실명제 실시와 함께 추진되어야 할 것 이 금리자유화와 금융자율화이다 금리가 묶 여 있는 상태에서 지나친 예금유치 경쟁을 벌이다 보니 여러 금융기관들은 거액의 불법 자금이 들어오는 것을 알면서도 출처를 불문 에 부칠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에는 고금 리 ·비밀을 보장하는 외국 은행 지점들로 자 금이 몰리자 국내 은행들은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국내 은행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어 공정한 경쟁을 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지하금융 자금이 제 도금융권으로 흘러 들어오게 된다.

 이와 함께 더욱 효율화해야 할 것이 금융 감독 및 통제업무이다. 제일생명의 자의적인 땅 매입 결정, 국민은행 대리의 입출금 조작, 신용금고 회사들의 불법 어음할인 등은 감 독 통제 체계의 허점 때문에 발생한 것이 다. 따라서 비리를 사전에 막을 수 있도록 금 융감독 ·통제와 같은 예방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모든 수표 어음 거래를 전산망으로 점검할 수 있는 금융전산화도 시급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장영자씨 어음사취 사건이 발생하여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엄청난 혼란이 빛어진 일이 있다. 그후 금융실명제 실 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는 등 개혁의 시도가 있었으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좌절했다. 그 러다가 이번 사건이 또 터졌다. 경제가 주저앉 으면 모두가 주저 않는다는 공동의 위기의식을 갖고 과감한 금융개혁을 실시하는 즉민적 결 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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