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지도다시 그려야 한다
  • 부다페스트 · 김성진 통신원 ()
  • 승인 1992.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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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민족 핵분열· 서부-대통합 추세로 국경선 재조정


 유럽 지도가 새롭게 그려지고 있다.  유럽의 서쪽은 국경을 없애는 대통합으로 가고 있는 반면, 그 동쪽은 새 국경선을 긋는 전쟁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다. 지난 3년간·동독 그리고 유고연방은 아예 없어졌거나 해체되고 있으며 새로운 독립국도 속속 생겨났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구성된 체코연방은 ‘합의 이혼’에 서명함으로써 그 분리 절차만 남겨두게 되었다. 8년 후인 2000년이 되면 현재의 유럽 지도는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본래 민족단위의 국가수립을 추구한 민족주의의 뿌리는 프랑스대혁명과 나폴레옹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서유럽의 민족주의는 정치·경제·사회 등의 발전과 대체로 보조를 맞춰왔으나 동유럽 민족주의는 이같은 기반이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게다가 서유럽에서도 배타적·비민주적 요소가 강한 독일 민족주의가 동유럽에 전파됨으로써 동유럽의 민족주의는 점차 민족차별과 분쟁을 야기하는 왜곡된 구조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동유럽 민족주의는 2차대전 후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공산주의의 일원적 지배 논리에 밀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속으로 내연하고 있었다. 공산주의의 퇴조는 바로 왜곡된 민족주의를 터뜨리는 뇌관의 역할을 했으며, 얄타 체제에 의존한 기존의 국경선을 무너뜨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국경 변경의 첫 신호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였다. 체크포인트 찰리는 동독인민공화국의 소멸로 이제 박물관으로 옮겨져 관광객들 을 맞고 있다.

 발탁해의 리투아니아 · 에스토니아 · 라트 비아 3국의 독립은 소련의 붕괴를 이끈 견인 차의 역할을 특특히 해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주도로 구성된 독립국가연합 (CIS)은 가까운 장래를 예측하기 힘들 만큼 그 구성이 느슨해 곳곳에서 파열음을 일으키 고 있닥 오랜 기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놓고 민족분규를 일으켜온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관계도 점차 악화되고 있다. 양측의 충돌로 지난 88년 이후 매년 5백명꼴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현재 옛 소련 지역에서 가장 심각한 분규 가 진행되고 있는 지역은 물도바(몰다비아) . 몰도바는 1859년 왈라치아와 합쳐짐으로써 처 음으로 루마니아라는 나라를 지구상에 탄생시 켰다. 전통적으로 반러시아적 입장을 고수해 온 루마니아는 2차대전중 나치독일을 적극적 으로 지지함으로써 몰도바는 소연방의 일부로 할양되었었다. 현재 총인구는 4백40만명으로 루마니아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해 궁극적으로 루마니아와의 합병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1백20만명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및 러시아인들은 독자적인 공화국 체제를 요 구하고 있으며, 15만명의 터키인들은 터키정 부에 은근히 구원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실 정이다. 특히 민족주의자인 술레이만 데미렐 터키 총리 취임 후 카자흐 등 옛 소란내의 이슬람국에 대한 터키의 외교활동이 강화되 고 있어 주변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고 내전 등 동유럽 민족분리운동 치열

 내전이 1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옛 유고연 방에서는 이미 슬라보니아 ·크로아티아 두 공화국이 독립을 한 반면 보스니아-헤르체고 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를 중심으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세르비아 내에서조차.강 경파와 온건파 간의 무력투쟁이 있을 것이라 는 예상도 있어 발칸반도 전체가 자칫 전쟁 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가장 늦게 독립을 선언한 마케도니아는 인구 2백만명의 소국이지만 인구의 67%가 이슬 람교도, 19.8%가 알바니아인으로 구성되어 있어 폭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접경 이웃인 그리스는 북부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이슬람교 도와 마케도니아의 연결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총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서방의 마 케도니아승인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옛 유고의 두 자치주인 보이보디나와 코소 보는 각각 헝가리 및 알바니아와의 분쟁 소지를 안고 있다. 특히 코소보주는 인구 2백만 명 중 90%가 알바니아인으로 구성되어 있어 세르비아와 알바니아와의 분규 가능성이 점 점 커지고 있다. 

 알바니아는 야당 민주당이 집권당으로 변 신함으로써 민족주의 색채가 더욱 진해지고 있다. 알바니아 내부에서는 이미 정부와 군부 를 중심으로 코소보를 편입시키기 위한 구체 적 전략을 마련하고 있으며 도상연습까지 실 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극도로 악화된 경제사정 때문에 아직 구체적 인 행동을 하지 못한 채 관망하고 있지만 일 단 세르비아측이 코소보에 본격적으로 개입 할 경우 양측의 물리적 대결은 피할 수 없으 리라는 전망이다. 

 1918년 이후 밀월 관계를 유지해온 체코와 슬 로바키아는 지난 2년간의 협상 끝에 결국 연방 분리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따라서 올 9월이 지 나면 보헤미아 · 슬라보니아로 구성된 체코공화국과 슬로바키아공화국이 각각 독립국으로 지도 에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60만명의 강력한 헝가리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슬 로바키아에서는 새로운 민족분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이는 곧바로 이웃 헝 가리와의 국제분쟁으로 비 화될 소지가 크다.  

 헝가리는 옛 유고연방을 포함해 모두 6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이들고 있다.      국가에 거주하는 헝가리 소수민족은 모두 3백여만명에 달하고 있다. 따 라서 민족노선을 걷고 있는 집권 민주포럼 (MDF)의 외교노선이 점차 분쟁에의 적극개입 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크 로아티아와 슬라보니아가 독립선언을 한 지난 해 헝가리의 안탈 총리가 유고연방의 해체옹호 론을 들고나온 것은 그 단적인 예다. 슬로바 키아인들은 헝가리가 과거 잃어버렸던 영토 를 회복하려는 저의를 갖고 있다고 노골적으 로 불평하고 있어 향후 예기치 않은 국제분 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밖에 서유럽 지역에서 민족분규가 계속 되고 있는 곳은 북아일랜드 및 스페인의 바 스크인 거주지로 아직까지 테러와 이에 대한 보복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가까운 장래에 독립할 가능성은 없다. 그리스와 터키간 반목이 계속되고 있는 지중해의 키프로스도 언제 든지 폭발할 수 있는 휴화산으로 남아 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탈리아의 남북분리 운동이나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포함하는 켄트족의 국가성립이 제기된 적은 있으나 현 재의 국제환경으로 미루어볼 때 가능성이 거 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강국의 편협한 민족주의가 더 문제다"   

 유럽공동체의 완전통합을 향해 가던 서유럽의 행보는 덴마크가 마스트리히트조약의 비준을 국민투표를 통해 거부함으로써 위기 를 맞았으나, 아일랜드의 찬성으로 순항을 계속하고 있어 가까온 장래에 서유럽의 국경선 이 무용지물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민족단위로의 핵분열을 계속하고 있는 동 구권에 대해 현실주의 정치학자들은 강대국 의 일방적인 힘의 통치를 벗는 '필요한 혼란' 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민족 거주 지역을 국가성립 단위로 나눌 수 없다 는 데에 문제가 있다.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 서 각각 다른 민족들이 섞여 살고 있기 때문 이다. 따라서 민족국가 성립을 목표로 한 편 협한 민족주의는 결국 민족분규의 악순환을 촉진할 수밖에 없다. 유고 내전은 그 최악의 사례인 셈이다.  

 최근 사라예보를 탈출해 부다페스트의 적 십자샤아 수용된 한 난민은 헝가리 언론과의 회견에서 이렇게 절규했다. "무조건 독립하려는 편협한 민족주의도 문제이지만 더더욱 문 제인 것은 강대국의 편협한 민족주의다. EC 는 무엇인가. 잘 사는 나라들이 단결해 더욱 잘 살겠다는 것이 아닌가.그들의 눈에 사라 예보의 참상은 그저 지나가는 뉴스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매일 죽어가는 사라예보는 서구의 사람들에게 이미 잊혀졌다. "  

 세계 1 · 2차 대전을 통해 윤곽이 잡힌 오늘의 유럽 국경선은 강대국의 의도대로 두부 모 자르듯이 그어졌으혀 곧 밀어닥친 냉전은 그 부작용을 억누를 수 있었다. 그러나 유고 내전이 웅변하듯 그 상처는 속으로 계속 곪 아왔으며 어려운 경제현실은 상처에 소금을 들이붓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신시대 국제질서의 핵이어야 할 유엔 둥 국제기구나 EC 등의 지역기구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어 이와 같은 악순환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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