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은 파워 엘리트 아니다"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4.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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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이 연구한 '의원의 사회적 특성'/"자기 이득 꾀하는 정치적 이익집단"



 어느 나라에서나 국회의원은 교육수준?직업?경력?재산 등 사회적 배경에서 그 사회의 다른 집단에 비해 월등한 지위를 갖는다. 물론 그 나라의 정치 구조가 독재냐 민주주의냐에 따라 국회의원이 갖는 힘의 크기는 달라지겠지만, 여하튼 그들은 정치 엘리트로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정치의 중심에 서 있다. 그렇다면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고 자질 시비에 시달려 왔으면서도 지속적으로 힘을 키워온 한국의 국회의원은 어떤 사람들인가.

 막상 이러한 물음에 딱 부러지는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한국의 국회가 불혹의 나이를 넘긴 지 벌써 6년이 되었지만 국회의원 집단 자체에 초점을 맞춘 연구는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정치학자와 행정학자들이 정치 엘리트의 충원이나 이동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부분적으로 국회의원 집단을 들여다본 것이 고작이다. 이런 실정에서 한 야당 국회의원 보좌관이 한국의 역대 국회의원에 관한 자료를 몽땅 끌어모아 그들의 사회적 특성을 정밀 분석했다.

 민주당 이부영 의원을 보좌하는 유창선씨는 지난해 12월 연세대 사회학과 석사 논문으로 〈한국 국회의원의 사회적 특성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도대체 한국의 국회의원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한 이 논문에서, 유씨는 71년 구성된 8대 국회부터 92년 구성된 14대 국회까지 금배지를 단 국회의원 1천6백51명의 신상 자료를 통해 답을 찾아나간다. 한국 국회의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이 논문은 나이?성별?학력?당선횟수?출신 지역 및 출신대학?재산?직업 등 객관적 사실만을 취급했다.

군 출신은 국회보다 행정부 요지으로
 8~14대 국회의원들의 학력은 예상대로 높다. 전체 국회의원의 95%가 대학을 졸업했으며 대학원을 나온 의원도 35%에 달한다. 이 논문은 이런 경향을 정치 집단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학력 경쟁 풍토와 연관 지어 설명한다. 특히 대학원 학력의 경우 연구 목적보다는 '고학력 만들기'가 아닌가를 유의해서 보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출신 대학 분포에서는 서울대가 전체 대졸자 의원 1천2백25명 중 32%를 차지해 압도적이었다. 이는 고려대(10%)보다 3배, 연세대(5%)보다 6배나 많은 수이다. 서울대 출신으로 다시 단과대학 별로 쪼개 보면 법대가 1백69명으로 전체의원의 14%, 문리대가 1백10명으로 9%를 차지했다. 한 단과대 출신이 어떤 종합 대학보다 높은 의회 진출을 보여준 것이다. 서울대 출신 인맥이 한국 사회 엘리트층이 주류를 이룬다는 통념이 국회의원 집단에도 반영된 것이다.

 육사 출신은 79명 6%를 차지해 고려대 다음으로 높았지만, 과거 '군부 출신이 요직 독점'이라는 현상이 의회에서는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유씨는 논문에서 '군사 정부 아래에서 군 출신이 국회 진출보다는 행정부내 주요 직위로 진출해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선호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이는 지금까지 국회의 정치적 위상이 낮았다는 점을 반증한다'고 풀이한다.

 금배지를 달기 전에 가졌던 직업을 살펴보면 한국 국회의원의 특성이 더 잘 드러난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 직업을 분야 별로 분류하면, 직업 정치인이 전체의 78%를 차지해 압도적이고, 변호사 출신이 5%, 사업가 출신이 4%, 공무원 출신이 3%, 언론인 출신이 1%를 차지했다. 초선 의원 6백71명을 따로 떼어내 따져봐도 직업 정치인이 25%로 역시 1위를 차지했다. 즉 한국 국회의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엘리트로 성장한 뒤 국회로 진출했다기보다는 주로 정치권 주변에서 활동하다가 당선한 직업 정치인이 대부분인 것이다. 유씨는 '이 때문에 지금까지 국회가 사회내 각 집단과 세력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명실상부한 대의기구가 되지 못한 채, 정치인들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정치적 이익집단이 되었다'라고 분석한다.

 의원들의 재산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 처음으로 재산공개를 했기 때문에 14대에 한해 분석했다. 14대 의원 평균 재산은 33억4천만원이었다. 여당 의원(평균 33억9천만원)과 야당 의원(29억원) 간의 차이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배부른 여당과 배 고픈 야당'이라는 통념이 사실이 아니라는 애기이다. 그리고 재산을 당선 횟수 별로 다시 분류하면 초선 의원 평균이 36억9천만원, 2?3선 의원이 30억원, 4선 이상이 20억원을 나타냈다. 국민의 의구심과 달리 국회의원 직위와 재산 축적은 별 상관 관계가 없었다.

 남녀 비율을 살펴보면 여성의 국회 진출은 미미하다. 역대 국회에서 여성이 차지한 비율은 경우 2%인데, 그나마 자력에 의한 진출이라기보다는 여성표를 의식한 배려 차원에 그쳤다. 그리고 '국회가 젊어지고 있다'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정반대로 의원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8대 48.05세, 12대 51.68세, 14대 55.3세로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다. 국회가 역사를 쌓아감에 따라 다선 의원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 논문 핵심 가운데 하나는 예상 외로 기업가 출신의 의회 진출이 낮다는 점이다. 70년대 이후 자본이 급성장했으에도 초선 의원의 시기별 직업 분포에서 기업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8대 4%, 9대 15%, 10대 19%, 11대 12%, 12대 2%, 13대 3%, 14대 5%에 그쳤다. 산업화 과정에서 기업가의 사회?정치적 영향력은 절대적으로 커졌지만, 이들이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통한 이해 실현을 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미국처럼 경제 엘리트와 정치 엘리트 간의 연합을 통한 결속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유씨는 "이는 한국 사회에서 국가 권력과 자본 간의 관계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라고 말한다.

 4선 이상 다선 의원의 경우 2백20명 가운데 야당이 1백21명을 차지했고 여당은 99명을 차지했다. 이는 공화국이 바뀔 때마다 초선의원의 비율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전례와 맞물려 있다. 즉 격변기나 정권 교체기마다 집권세력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권을 물갈이해 왔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또한 이는 국회의원의 지위가 매우 취약하다는 반증이다. 유씨는 "이 논문을 쓰기 전에는 국회의원을 권력과 부를 겸비한 파워 엘리트 집단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까 지위도 불안정하고 실질적인 힘도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정치가 집권자 한 개인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됐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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