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칸 차’타고 학원가기 무섭다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4.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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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수송차량, 구조 결함에 행정 규제도 허술 … 수십만명 사고 노출

93년 4월 21일 오후 2시, 인천시 주안 8동 안국 아파트 단지내, ㅂ유치원에서 25인승 미니버스를 타고와 집 앞에서 내린 박성희군(당시 네 살)이 내리자마자 버스 오른쪽 뒷바퀴에 말려들어 숨진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성희 어머니가 사고 현장에서 성희를 들쳐엎고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시도했으나 버스 뒷바퀴에 머리가 부서진 성희는 살아나지 못했다. 성희는 자기가 타고 다니던 유치원 버스에 사고를 당한 것이다.

 92년 5월 경기도 과천시 주공 아파트 단지내. 유아원 승합차에서 내린 네 살짜리 여자 어린이가 승합차 앞을 가로질러 길을 건너는 순간, 어린이를 내려준 운전기사가 어린이를 미처 보지 못한 채 차를 출발시켰다. 어린이는 그대로 차에 치여 중상.

 94년 1월 6일 오후 1시 30분,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상업지구 네거리. 상황은 1~2년 전에 비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9인~12인승 승합차에서부터 25인승 미니버스에 이르기까지 각종 사설 학원의 원생 수송차가 네거리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차량의 4면 유리창이나 자체 양쪽에는 속셈 영어 미술 글짓기 컴퓨터 웅변 음악 서예 태권도 등 교과목 이름이 빼곡히 붙어 있다. 원생들을 귀가시키거나 오후반 원생들을 태우러 가려고 네거리 주변 서민 아파트 단지를 누비는 차량들이다. ‘방학중 특별 모집’ ‘신학기 유아 모집’ 등 현수막을 써붙인 차량이 대부분이다. 줄잡아 15개쯤 되는 학원에서 쏟아져 나온 약 20여대의 차량 중에서 5~10분 간격으로 네거리를 두 번 이상 지나친 차도 3대나 된다.

운전자 ‘아무데서나 정차’도 문제
 아이들은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는가. 아니면 무방비 상태로 교통사고에 방치되어 있는가. 92년의 과천 사고나 지난해의 인천 사고를 보면 아이들은 내팽개쳐져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부모는 유치원이나 각종 사설 학원에서 운행하는 어린이 수송 차량이 ‘안전’하다고 믿는다. 과연 안전한가.
 이 물음의 전제 조건은 두 가지다. 첫째는 대부분의 어린이 수송 수단이 9인승이나 12인승 승합차이거나 또는 16인승 이상의 소형 버스라는 점이고, 둘째는 세살에서 일고여덟살까지의 어린이가 주로 이용한다는 점이다.

 흔히 ‘봉고’라 불리는 승합차는 엔진룸 · 화물칸(트렁크) · 승객실(캐빈)의 구분이 없는 ‘1칸 차량(one box car)’이다. 소음이 크고 엔진에서 발생하는 유해 가스가 실내로 유입되며, 엔진 화재 때 곧바로 승객실로 불길이 번지는 단점이 있다. 자동차 문화 평론가 유 명씨는 “1칸 차량은 노면 접지력과 구동력이 약하기 때문에 높은 턱 등 노면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 사고 위험이 크다”라고 지적한다.

 아이들이 단체로 승합차를 이용할 경우 안전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승합차 운행시 발생할 수 있는 차내 안전사고는 차량 내부구조가 아이들에게는 전혀 맞지 않게 제작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발판의 높이, 의자와 의자 사이 등이 아이들에게 전혀 맞지 않아 승 · 하차나 운행시 사고 가능성이 높다. 또 의자가 불편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이를 해소하기 위해, 또는 집단화한 아이들의 특성상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고 떠들거나 잡담을 하게 되는데, 이 경우 운전자의 주의를 분사시키게 된다. 안전띠 등 어린이용 보호 장구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도 차내 안전사고 유발 원인 중 하나다. 급제동할 경우 평균 일곱 살 이하의 아이들은 제 의지대로 몸을 지탱하기 힘들어 차내에서 급격히 이동하게 되며, 이럴 때 일반 승용차에 비해 딱딱하게 제작된 의자에 부딪치게 되고, 차의 무게 중심이 한곳으로 쏠려 전복할 가능성이 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또 한가지의 사고 가능성. 급제동 때 차 실내 뒤쪽에 높아둔 쇠로 된 수리 공구들이 앞으로 쏠리면서 아이들이 다칠 수도 있다.

 안전사고 위험이 승합차 안에만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예시한 사고에서 드러났듯이 현재의 운행 관습도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도시교통연구소 박용훈 소장은 “아이들이 이용한다는 이유로 택시처럼 편리하게 아무 데서나 승 · 하차하는 것을 마치 특혜처럼 생각한다. 아무 데서나 정차할 경우 그만큼 사고 발생률이 높아진다. 건물 마당이나 승 · 하차장 등 특정 지역에서만 승 · 하차 시켜야 한다. 특히 아파트 단지의 경우 단지 안을 누비고 다니면서 아무 데서나 정차했다가 출발하곤 한다. 위험천만한 일이다. 아파트 단지는 아이들이 밀집해 있는 측수 환경인만큼 특정 지역에 승 · 하차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세 학원 지입세 차량 “단속 근거 없다”
 승합차나 소형 버스 운전자의 허술한 안전의식도 문제점이 하나로 지적된다. 유 명씨는 운전자에 대한 안전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출발 전에 아이들이 모두 앉은 것을 확인 한 후 출발하고, 운행 중에는 절대 일어서지 못하게 하며, 완전히 정차한 후에 일어서서 내리도록 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나이 어린 원생들의 차량 안전 교육은 유치원이나 사설 학원 운영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대응하는 부분이다. 일산 신도시 ㅇ유치원 송수정 원장은 “등원이나 귀가 때 교통안전 문제가 가장 신경 쓰인다”라면서 여러 종류의 소송차량을 사용해 본 결과 발판 높이가 가장 낮고 차내에서 아이들의 행동반경을 최소화할 수 있는 ㅋ차량을 선택해 운행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서울시에만 어린이를 상대로 한 속셈학원이 4천6개소(93년10월31일 기준)에 달한다. 무용(1백10개) 미술(1천7백49개) 서예(1백66개) 음악(1천9백4개) 학원 등에서 평균 0.5대씩 차량을 운행한다고 가정하더라도 매일 무려 4천대의 승합차가 골목이나 아파트 단지를 누비는 셈이다. 1대당 이용 어린이를 평균 50명으로만 계산해도 20만명이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여기에 공 · 사립 유치원 숫자까지 합하면 수치는 더욱 높아진다.

 대부분의 영세한 사설 학원이 ‘모치코미’라고 불리는 지입제 차량을 운행하고 있는 것도 방치할 수 없는 문제점이다. 지입제 차량은 승합차를 소유한 운전자가 자기의 차로 특정 학원이나 유치원의 원생들을 수송해 주고 일정액의 사례비를 받는 형태이기 때문에, 사고가 났을 경우 피해자측은 학원이나 유치원 경영자를 상대로 배상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교통안전진흥공단의 이응학 교수는 “학원은 감독 소홀이나 불법 수송 계약 체결 등 민사상 책임만 지면 될 뿐, 도로교통법상의 책임은 면제된다”라고 지적한다.

 아이들은 길거리에 방치되어 있다. 승합차나 소형 버스 안에 집단으로 갇혀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사태에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설학원 설립 인가와 지도 감독권을 가진 교육부 사회교육 담당자나 유아교육 담당자 등은 행정 지도 불가를 이유로 내세웠다.

 “승합차나 소형 버스는 유치원 · 학원의 자체운영 차량 즉 자가용이다. 학원 안전 대책의 일환으로 정원 초과 운행 금지를 지시할 수는 있지만 안전 여부를 일일이 감독할 수는 없다. 행정 규제 차원이 아니다. 자유 경쟁 시대 아니냐.”(서울시 교육청 유아교육 담당자). 이 담당자는 “불안하면 원생을 다른 안전한 곳으로 보내면 된다”고 말했다.

 “9인승이나 12인승 자가용은 신고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 자가용 차량은 해당 지역 구청의 지역교통과에 등록만 하면 된다. 16인승 이상의 소형버스나 화물차의 안전 운행 여부는 차주의 생각이 관건이다. 다른 목적으로 쓸 때는 지도 단속하지만 운행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수 없다.”(서울시 운수 1과 관계자). 교통부 담당자도 역시 같은 반응이었다.

 관련 행정 부서에서는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우리 소관이 아니다’ ‘할 수 없다’는 식이다. 그러면 학부모가 결단을 내리거나 아이들 자신이 자기의 안전을 책임질 수밖에 없다.
 도시교통연구소 박용훈 소장은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에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사교육의 비중이 워낙 크다보니 아이들이 승합차를 타게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예능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왜 굳이 학원에 가려고 하겠는가”라고 말한다.

“운전자=교육자 개념 절실하다”
 박소장은 외국의 스쿨버스 제도를 예로 들면서 “어린이 차량을 운행하는 운전자에 대해 심사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10년 이상 경력자만 채용한다거나 정기적인 인성 검살ㄹ 강화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어린이 차량의 경우에는 운전자도 ‘교육자’라는 개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어린이교통안전협회 사고예방실장 허 억씨는 “스쿨버스는 통행우선권을 갖는 등 외국처럼 거리의 제왕이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어린이 교통사고의 주범은 학부모의 무지 탓”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네 학부모는 그나마 승합차에 안전장치 하나를 만들어 놓았다. 차 뒤쪽 창문에 붙여 놓은 ‘어린이 보호차량’이라는 일곱 글자다.
李興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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