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인의 지름길 ‘存古創新’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4.01.2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의 세계화‘먼저 우리 것 바로 세워야’… 창조력 키우는‘열린 교육’필요



“내가 미국 문화를 추종했다면 나는 미국 사회에서 무시당했을 것이다.” 미국에서 30년을 살다가 연세대학교 초빙 교수로 와있는 김중순 교수(테네시 대학 · 문화인류학)는 문화의 세계화에 관한 질문에 위와 같이 답했다. 그는 “한국 문화를 지켜야 미국인은 한국인을 대접한다”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치고 한국인임을 숨긴 사람은 없다.

 94년 새해가 밝자마자 정부와 언론은 경제 개방과 더불어 문화의 세계화를 놓고 저마다의 주장을 펼친다. 개방과 세계화는 이제 ‘커다란 화두’처럼 전국민의 머리 속에 자리 잡았다. 세계화만이 우리가 살 길이라는 위기 어린 당위론은, 그러나 모든 화두가 그렇듯이 막연하게 들려 올 때가 많다. 세계화 · 국제화 · 개방 · 미래화 · 지구촌화 등 비슷한 용어 · 개념에서부터 저마다 편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globalization)란 무엇인가. 나아가 문화의 세계화, 이른바‘국제인’이란 무엇이고 거기에는 어떻게 도달해야 하는가.

상대방 인정하며 우리 것 알려야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 이후 경제 개방은 시간이 지날수록 실감으로 다가온다. 올해부터 이 · 미용업 등 40여 업종이 개방된다. 경제 개방 · 세계화의 최종 단계는 외국 자본(인)과 내국 자본(인) 사이의 차별이 없어지는 상태이다. 경쟁력을 무기로 한 무한 경재의 논리가 전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의 개방 물결은 국경을 지워 나간다. 하지만 문화는 그렇지 않다. 이미 문화는 경제의 ‘세련된 포장지’로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고, 역으로 경제력이 문화를 견인하기도 했지만, 세계화가 진행되는 속도 못지않게 민족(종교)의 국경선은 점점 높아가고 있다. 물론 할리우드와 팝송, 코크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대중문화(산업)가 그래 오고 있듯이 문화에서도 국경이 이미 사라졌다는 시각도 있다(86쪽 상자 기사 참조).

 최근 구미 지식인들은 정치학자 헌팅턴이 지난해 여름에 발표한 ‘문명 충돌론’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헌팅턴은 이데올로기, 경제 전쟁 시대가 지나고 문명이 국제 정치무대를 지배하는 시대가 곧 닥칠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 시대는 기독교 문명권과 비기독교 문명권이 서로 갈등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문명 충돌론이 주목되는 까닭은 그것이 문화의 전면적인 떠오름에 강조점을 주기 때문이다.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다가오는 세계가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 미래학 서적들은 국내외에서 줄곤 출판되어 왔다. 이대의 문화는, 작품의 창작과 감상이라는 협의의 문화가 아니다.

 “일상적 삶의 관행이나 양식, 또는 일반적인 의미 생산 및 소통의 체계 전체”(성완경 인하대 교수) 혹은 “본능을 제외하고, 어느 한 집단의 구성원이 ‘배워서’사고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의 총체”(김중순 교수)를 뜻하는 광의의 문화이다.

 문화의 세계화 또는 이른바 ‘국제인’의 참모습은 단순하게 정의할 수 있다. 김중순 교수는 그것을 ‘존고창신(存古創新)’이라고 말한다. 먼저 우리의 전통문화를 확인 · 보존하고 세계 질서에 적응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 존고창신은 문화 전반에도 해당되지만,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민족 문화를 바탕으로 한 자긍심을 앞세우지 않으면, 국제 사회에서 인정을 받을 수 없다.

 외국어와 외국 문화에 익숙해야 한다는 것은 필요조건일 따름이다. 여기에는 민족 문화의 정체성이라는 충분조건이 반드시 선행해야 한다. 세계화를 미국화와 동일시하는 것도 문제이다. 문화의 세계화는 어느 한 문화를 소멸시키거나 또 어느 특정한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경제에서의 개방이 공격적인 경쟁 논리라면 문화의 세계화는 공존의 세계이다. 우리가 우리 문화를 소중히 여기듯이 다른 나라의 문화도 인정하는 다원화 · 다양화의 세계인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는 융합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문화가 결코 하나로 융합되지 않는다고 단정한다. 지난 연말 한 · 불문화협회가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했던 프랑스의 석학 에드가 모랭은 “지금 세계는 한 울타리 안에 있지만 민족 ·종겨 분쟁과 분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민족중심적 추세는 막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김중순 교수도 “문화는 절대로 통합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최근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프랑스가 음향과 영상 분야에서 수입 개방을 저지했듯이 경제 개방이 가속될수록 자국의 민족 문화에 대한 집착 또는 강해진다는 것이다.

 김용운 교수(한양대 · 수학) 역시 같은 견해를 펼친다. 문화의 세계화 시대에는 각 민족마다 자기 정체성, 즉 개성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김교수는 “서로 다른 문화는 융합되지 않는다. 모자이크처럼 공존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민족 문화의 원형으로 복귀함과 더불어 이 문화의 원형을 승화하고 세련시키면서 문화의 세계화를 실현해야 한다. 김교수는 한국 문화의 원형을, 한글을 만들어낸 과학성과 정통주의 , 현실과의 유연한 타협 그리고 강인한 생명력이라고 규정한다.

 선진국이란 정치나 경제가 아니라 자국 문화로 세계 문화를 이끌어가는 것을 말한다. 문화 세계화를 통해 선진국으로 진입해야 한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문화 세계화를 가로막는 내부적 장애물 또한 만만치 않다. 단일 민족이라는 특수성이 가장 큰 장애물이다. 외국 문화와 접촉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고수하는 1국적주의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인은 외국인뿐 아니라 해외 동포에게도 지나치게 배타적이다. 해외에 살면서 한국어 못하는 것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이스라엘이나 대만의 경우는 정반대이다. 그들은 해외 동포를 정치 · 경제 · 문화 각 분야의 협상 실무자로 이용하는 것이다. 5백만 명에 달하는, 전세계에 포진하는 한국 동포는 세계화의 교두보임을 새삼 인식해야 한다(85쪽 상자 기사 참조).

 또 다른 장애물은 특히 30대에 심한 극성스런 민족주의다. 우리 것 찾기 또는 민족적 정체성이 배타적으로 흐르면 세계화를 이룰 수 없다. 여기에 교육문제도 덧붙여진다. 한국의 대학처럼 세계화에 뒤진 분야도 드물다. 조명래 교수(단국대 · 지역개발학)는 “지금과 같은 주입식 교육으로는 세계화를 실현할 수 없다. 창조력을 키워주는 열린 교육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보편성에 맞는 한국 문화 내보내야
 공무원 사회는 물론이고 세계화를 외치는 언론조차 세계화가 미흡하다는 비판도 잇다. 대기업을 제외한 모든 분야가 세계화에 처져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세계화의 길로 성큼 나서야 한다. 저와 같은 비관론과 장애 요인들을 바로보고, 우선의 협의 문화, 다시 말해 한국 예술을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영화가 제 1순위다. 그러나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일 수 있다는 환상을 고집해선 안된다. 김중순 교수는 “한국적 문화를 테마로 삼되, 그것이 서양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제안한다. 보편성을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아직 영화를 산업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할리우드는 미국 정부의 작품이며, 조각가 헨리 무어는 영국 정부의 연출이었다. 문화에 관한 한 ‘영웅 만들기’는 허용되어야 한다. 지난해 미테랑 대통령이 내한할 때 자국의 영화배우 · 건축가와 동행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문화적 스타(작품)는 국가 이미지는 물론 상품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하는 것이다. 이미 세계는 문화 전쟁 시대에 돌입해 있다. 문화는 그 자체로서 상품이며, 경제전의 교두보인 것이다.
李文宰 기자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