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은 ‘그들’ 아닌 ‘우리’
  • 성우제 기자 ()
  • 승인 1992.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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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와 의식 · 문화 똑같아 · · · 해외동포 ‘* · 귀소본능’ 공통


 “겨울날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백의를입은말없는군중은혹 10여명, 혹 20여명, 혹 50여명씩 떼를 지어서 산비탈을 기어넘어온다‥‥ 많은 사람들이 식량부족으로 죽었다 그들의 비참한 생활 위에는 또 질병이 닥쳐왔다". 

 1921년 미국의 한 선교사는 중국 조선족의 비참한 생활을 이렇게 소개했다. 조선에서의 혹독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혹은 일제의 강제 이주정책에 떠밀려 끓의 터전을 중국으 로 옮긴 조선인들은 배고픔과 추위, 민족차별 과 착취라는 몇겹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 고통을 견뎌낸 조선인들의 후예는 현재 2백만명. 한반도 남쪽 문이 활짝 열 리자, 그들은 약재며 특산물을 안고 서울로 물밀듯이 몰려왔다 그리고 남쪽 사람들은 연변으로 백두산으로 물려갔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우 리'로 받아들이길 주저한다. 우리는 그들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교포로 보고, 그들의 생활양식이 단지 '우리 50~60년대대식'이라고만 알 고 있을 뿐이다. 아니면, 우리가 잃 어버린 정서며 풍속을 간직한 동포 라는 감정적인 평가가 덧불여졌을 뿐이다. 서울올림픽 이후 신문과 방송이 앞을 다투어 중국 조선족을 소개했지만, 그들은 석전히 우리가 아닌 '그들' 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최근 그들도 바로 우리임을 확인하는 연구 보고서가 잇다라 나와 우리의 환상 혹은 인 식 부족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 연구보고서들은 중국 조선족뿐만 아니라 세계 1백2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에 대한 연구의 중도성을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서울대 李** 교수(인류학)가 최 근 펴낸 《세계 속의 한민족 선택받은 한민 족》(《시사저널》 136호 참조)의 뒤를 이어, 서울대 韓**(인류학) ***(사회학) 교수의 《중국 연변의 조선족, 사회의 구조와변화》가 곧 출판될 예정이다. 또 지난해와 올 해 辛** 박사(연세신경정신과의원 원장) 팀이 《신경정신의학》지에 중국 길림성 조선 족에 관한 두개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국적은 중국, 민족은 조선족" 의식 강해 

 한상복 연구팀이 연구목적에서 밝혔듯이 이 연구보고서들은 그동안 있었던 방문기들 의 오류를 바로잡고, 과학적인 분석틀에 근거 해 중국 동포의 생활상을 현지에서 연구하였 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중국 조선족에 대한 일반 사회조사가 체계적으로 실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금까지의 방문기는 거의가 관광 성격의 인상적인 서술에 그쳐, 중국 조선 족 사회를 한국사회와 표면적으로만 비교해 유사성 과 차이 점을 이야기 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방문기는 중국 조선족의 이해 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편견을 갖게 할 소지가 더 컸다. 이를테면 우리는 조선족이 외부, 특히 서방세계와의 접촉이 별로 없었다는 이유로 "잃어버린 우리 전통문화를 그대로 유 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번 연구조사에 따르면 이와 같은 얘기 나 글은 대부분이 잘못된 것이다. 

 이에 비해 새로 나온 연구보고서들은 국내 와 현지의 방대한 문헌 조사를 거치고, 인류학과 신경정신의학이 라는 학문적인 성격에다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분석을 했다는 점, 그리 고 현지의 연구소와 공동으로 연구했다는 점 에서 중국사회를 포괄적으로 이해할 기초를 마련하고 중국 조선족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 같다. 

 한상복 ·권태환 교수의 《중국 연변의 조선족》 연구보고서는 90년 1월초에서 2월초 까지, 그리고 6월말에서 8월 중순까지 두차 례에 걸친 현지 관찰과 심층 면접을 바탕으 로 작성되었다. 연변대학 조선문제연구소의 협조를 받아 이루어진 이 연구는 이주 역사, 신중국 형성 이후의 인구변동, 생활경험, 국가 및 민족 의식, 행동양식과 가치지향,가족과 혼인 및 친족,공동체 구 조와 변동, 직업구조 변화와 기업가 정신. 농업 특성과 구조, 의식주 생 활, 언어생활, 교육 수준과 이념, 의례생활, 건강과 질병 등 조선족의 '이주의 삶'과 관련된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또 중국 조선족 인구의 성장추세 등을 분석한 37개의 도 표와 농촌주택 평면도 등 그림 3개 를 함께 실어 정밀성을 더하고 있다. 

 1백30여년 전부터 시작된 조선족 의 중국 이주는 다른 지역 이민과는 달리 선택이 아니라 강제였다. 바로 그 점에서 중국 조선족의 '운명'은 일본과 옛 소련을 제외한 다른 해외교포와 달랐던 것이 다. 일제 패망 뒤에도 조선족은 문화혁명과 같은 정치적 · 사회적 격변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의 생활은 그 자체가 '적응의 역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단독으로 이주하였건 집단으로 이주하였건 그들은 공동체 마을을 이루거나 민족 내 혼인을 고집함으로써 민족 동질성을 지금까지 유지해오고 있다. 그들은 "국적은 중국이지만 민족은 조선족"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놀라운 사실은 교육 문화 생활 등에서 현재의 우리 사회와 똑같은 점이 여러 군데에 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인구 면에서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13번째로 큰 규모인 조선족은 대부분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으 로 구성되는 동북3성에 집중되어(98%) 살고 있다. 또 조선족 마을들은 상당수가 조선의 지역적 연고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최근 들어 그 폐쇄성이 급속하게 무너지고 있기는 하지만 경상도마을 전라도마을 충청도마을 강원도마을 등의 이름은 아직도 살아 있고, 언어도 그 지역의 특성에 맞는 어투를 사용해 왔다. 

 체면을 중히 여긴다거나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더 나은 자리를 바란다 는 점, 조급한 성격, 농촌에 시집가거나 농촌 으로 전출하기를 꺼리는 경향, 사범 대에 여차 생이 너무 많아 남학생을 뽑기 위해 성적이 더 나은 여학생을 떨어리는 것 등의 유사 점과 더불이 꼽을 수 있는 것은 중국 내에서 단연 높은 교육열이다. 입신양명이라는 한민 족 특유의 유교 전통에시 비롯피는 자녀 긴 육에 대한 열정은 중국 내에서 가장 높은 대 학 진학률로 이어지고, 재수 삼수생의 비율도 다른 어떤 민족보다 높다. 대학 입시장 앞 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부모는 조선족밖에 없다. 부모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자녀가 공부를 잘 하는 것이며, 자녀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국민학교 때부터 신경을 쓴다 최근 에는 대학 입시를 위한 과외까지 생겨났다.

정신병원 알콜중독자 80%가 조선족 

 또하나의 유사점은 40대의 높은 사망률이다. 이런 현상은 술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 다. 술을 조금씩 즐기며 안주를 많이 먹는 한 족에 비해 조선족 남성은 안주 없이 50도~ 60도의 횐술을 거의 매일 마시고 있기 때문 에 고혈압 등으로 인한 사망률도 훤씬 높다. 청년층의 음주문화도 종류가 맥주로 바뀌고 있을 뿐 폭음습관에는 변함이 없다. 조선족은 '들'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우리들'인 것이다.   급격한 사회변동에의 적응,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등에서 비롯되는 이런 폭음 문화는 중국 조선족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 지를 간접적으로 반영한다. 연변사회정신병 원에 입원한 알콜중독환자 중 80%가 조선족 이다. 신승철 박사팀은 여러 종류의 스트레스 로 인한 조선족의 우울지수를 한국인 및 미국 교포의 수치와 비교함으로써 흥미로운 결 과를 내놓았다. 

 신승철 박사팀이 연변의학원 정신의학교 연실과 공동으로 조사해 보고한 <한국인과 중국 길림성 조선족의 우울증에 대한 횡문화 적 비교 연구>에 따르면, 연변 조선족과 한국 인 그리고 재미교포의 우울증 심도가 거의 비슷하다. 이는 40년이 넘도록 고국과 단절 된 채 살아온 서로 다른 '국민'들이 매우 다른 환경 속에서도 똑같은 감정체계를 갖고 있음 을 입증하는 것이다. 

 한민족의 우울지수는 미국인과 미국에 거 주하는 다른 아시아계 민족보다 거의 2배 가 까이 높다(도표 참조) 이는 조사 문항에 대 한 각 민족의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나온 결 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는 지역은 달라도 세계) 어디서나 한민족은 공통적인 스트레스 를 갖고 있으며,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는 것 을 말하는 것이다.  

 신승철 박사는 "이 결과는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에 비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받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연변이나 미국 교포사회에서도 지역감정 파벌싸움 등 국내 에서와 똑같은 갈등이 있다. 또 한국인은 급 속한 산업화로 인한 심리적 갈등, 중국조선족 은 이주의 역사에서부터 비롯되는 끊임없는 울분, 재미교포는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에 서 보이는 정신적 갈등 때문에 우울지수가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박사는 또 이같은 결과는 "한민족 전체 에 *의 감정이 내재함을 간접으로 뒷받침하는 증거"라면서 "다른 민족에게서는 볼 수 없는 강한 귀소본능 때문에 교포들의 우울이 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우울지수가 높다고 해서 한민족에 우울증 환자가 많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5백만 해외교포는 한국의 국력 

 '전문적인' 해외 교포 연구에 대해 한상복 교수는 그 필요성을 이렇게 강조한다. "남북 한 총인구의 7%에 달하는 우리 민족인 만큼 우선은 그들이 잘 살도록 도와주어아 한다. 세계 여러 지역에 퍼져 사는 한국 교민에 대한 이해늘 그 자체가 지난날 우리 사회의 역사적 경헌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순수 학문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여러 나라의 국민인 교민들을 잘 알면 정책 면에서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한교수에 따 르면 북한에서도 옛 소련이나 중국의 조선족 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는 형편이다. 

 해외교포는 민간 외교관으로, 상품을 선전 하는 세일즈맨으로, 문화를 선전하는 홍보관 으로 우리나라가 국제화 시대에 활용할 수 있는 귀중한 인적 자원이다. 한국은 세계 각지에 골고루 퍼져 있는 5백만명의 강력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따라 서 중국 조선족이 호기심의 대상인 '그들'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생활양식과 감정을 지 닌 바로 '우리'라는 점을 입증한 이 연구보고 서들은 증국 조선즉 연구의 기틀을 마련한다 는 점을 넘어서서 해외교포의 중요성을 새롭 게 인식하는 큰 계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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