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사의 ‘제3시장’ 한국
  • 정희상 기자 ()
  • 승인 199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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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 고객 많고 적발 위험 적어…대비책 허점투성이



 지난해 11월26일 한국인 4명이 낀 헤로인 밀매 조직이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생산한 헤로인 2백kg을 김포공항을 통해 거래하려다 한국·미국·태국 마약 당국의 공조 수사로 적발된 일이 있다. 이 사건은 국제 헤로인 유통 과정에 한국인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음을 확인시켰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마약 단속사상 최대 규모, 미연방 마약수사 단속사상 세번째 큰 규모로 기록된 이 헤로인 밀반입 사건으로 호주 교포 김현식(47), 이순자(41·여·서울 평창동), 김근용(51·부산 청학동), 최영일(57·대구 대명동) 씨 등 4명이 당국에 붙잡혀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이들이 김포공항으로 밀반입한 헤로인이 한국내 마약 소비자에게 넘겨진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 마약 중개상들이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생산한 헤로인 유통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한국이 ‘유망한’ 헤로인 시장으로 떠오를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시사저널》 취재팀이 이번 취재 기간에 골든 트라이앵글의 헤로인 생산 지대에서 확인한 것도, 국제 마약 조직이 이미 한국과 일본을 앞으로 개척하고자 하는 주요 헤로인 소비 시장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태국·미얀마 국경 마을에서 만난 태국의 한 마약거래 관련자는 그들의 고객(국제 마약 중개상)이 한국과 일본을 헤로인 판매의 표적으로 삼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 밀수꾼, 치앙마이 자주 나타나
 “미국행은 점점 위험해지지만 한국과 일본으로 가는 길은 입맛에 당긴다고 한다. 운남성과 북동부 중국해(서해·남지나해)의 넓은 공해는 적발 위험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골든 트라이앵글의 배후 도시인 태국 북부 치앙마이 시에 거주하는 한 한국 교포도, 이미 서해 공해상에서 이뤄지는 다른 밀무역 수법을 예로 들며, 이 길을 통한 헤로인의 한국 침투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치앙마이에는 한국의 일부 졸부들이 보낸 심부름꾼과 보석상이 관광객으로 위장하여 자주 들른다. 그들은 국경 너머 미얀마에서 보석, 티크나무 고목 뿌리, 호랑이 가죽, 웅담 등을 잔뜩 사서 국내에 가져가려고 한다. 이런 물건들이 한국 세관을 통과할 수 있겠는가. 모두 국제 밀거래 점조직의 손에 넘겨져 서해상의 공해를 통해 들어간다고 한다. 헤로인 밀매 조직이 그 루트를 이용하지 말란 법은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각 항만 세관은 중국과 국교를 튼 이후 서남해 공해상에서 어선을 가장한 소형 선박들이 불법 밀수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무척 고심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세계화 시대를 맞아 각종 규제가 완화되는 데 편승한 헤로인 유입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실정이다. 국제 헤로인 밀매 조직의 거래 수법은 갈수록 지능화해 합법적인 무역 거래를 가장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92년 김포공항에서 세관이 적발한 헤로인 23kg(시가 2백20억원대)은 태국 방콕에서 들여온 직조기의 금속 롤러 속에 들어 있었는데, 이 롤러는 아예 헤로인 보관용으로 제조된 것이었다. 당시 수사당국은 기숙 후진국 태국에서 한국으로 기계류가 수출된다는 사실을 이상히 여겨 분해해 보다가 헤로인을 적발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수사 방식은 거의 불가능하게 됐다. 대검 마약 과장 김영호 검사는 마약 수사에 따른 고충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앞으로는 마약 조직이 합법적 수출입 상품을 이용하면 적발하기가 무척 어렵다. 국내에 유통되는 것은 아직 생아편 종류이지만 헤로인과 코카인이 곧 몰려올 것으로 보여 검찰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취재팀이 이번에 쿤사 지역 마약 생산·공급 현장을 주요한 공략 대상으로 올려 놓았다는 것과, 이에 대한 우리의 대비는 아직 허점투성이라는 점이었다. 이제 한국 마약 당국은 히로뽕에 집중된 관심을 차츰 골든 트라이앵글로 돌려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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