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않는 교수 학교를 떠나라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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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 평가제’도입 놓고 대학 사회 진통 이공계 쪽, 적극적…“시기상조”반발도

 교수 사회가 ‘교수 업적 평가제’ 도입을 둘러싸고 커다란 진통을 겪고 있다. 대부분의 교수가 평가라는 개념에 대해 아직도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새학기 들어 주로 몇몇 대학의 이공계 교수들은 중심으로 평가제 도입이 적극 논의되고 있어 파문이 계속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교수 업적 평가제는 새 정부 들어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일이 중심적인 논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이 인적 역량을 극대화해 학문의 국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으나, 이를 모든 대학 차원에서 추진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있어 왔다.

 현재 국내 대학 중 평가제 본래의 취지를 살려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곳은 포항공대가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올해로 개교 7년째를 맞고 있는 포항공대는 국내 대학 중, 정치적 또는 도덕적인 문제 이외의 이유로 교수를 학교 밖으로 추방해온 유일한 학교이다. 아직 부교수급 이상에서는 추방된 사례가 없지만, 조교수급에서는 개교 이래 8명이 대학측에 의해 해직되었다. 그 이유는 단순 명쾌하다. 대학이 요구하는 연구 업적에 미달했기 때문이다.

포항공대, 승진 희망자 20~30%씩 탈락
 포항공대의 교수 승진 규정에 따르면, 조교수에서 부교수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최소 4년의 근무 기간이 필요하고, 이 기간에 국제적인 학술지에 2편 이상의 논문(특허)을 발표해야 한다. 또 그 분야의 국내 권위자로부터 국내 전문가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이밖에도 3과목 이상의 강의 실적, 재직 기간의 석사학위자 배출 실적, 교내외 각종 위원회나 학회에서의 봉사 활동도 평가 항목에 포함된다.

 부교수에서 교수로 승진하는 데는 이보다 훨씬 엄격하다. 최소 근무 연수 5년에다 국제 학술지에 5편 이상 논문을 발표해야 하고 그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부터 국제적인 전문가로 인정받아야 한다. 이러한 엄격한 심사 규정 때문에 교외 추방이라는 극단적인 형태가 아니라도, 해마다 4월과 10월 두차례 열리는 승진 심사에서 승진을 못하고 탈락하는 교수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교무처 관계자에 따르면 매번 승진 심사에서 승진 희망자의 20~30%가 승진·승급에서 탈락하고 있다고 한다(아래 표 참조).

포항공대 연도별 교수 승진연도부교수 승진정교수 승진추천인원승진(%)추천인원승진(%)8855(100%)891612(75%)901711(65%)11(100%)912617(65%)11(100%)923322(67%)42(50%)933327(82%)77(100%) 이처럼 엄격한 교수 평가제는 이미 선진국 대학들에서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국내 대학에서는 그동안 요원한 일로만 받아들여졌다. 국내 대학에도 승진과 승급에 대한 규정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개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전임강사 자격만 획득하면 조교수·부교수·정교수 승진은 연공서열에 의해 이루어지고, 정교수가 되면 정년퇴직까지 노후가 보장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다.

 

 그동안 국내 대학들은 포항공대의 이러한 엄격한 교수 업적 평가제를 극히 예외적인 현상으로 치부해 왔다. 그러나 올해 초부터 국내 대학에서도 이 제도 도입은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지난해 12월말 교육부에서 각 대학 총장들에게 보낸 한 통의 공문이 그 계기가 되었다. ‘대학교원 기간제 임용 심사제도 개선방안’이란 다소 딱딱하고 긴 제목으로 된 이 공문의 내용인즉,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위원회를 구성해서 교수들의 교육·연구 및 창작 활동, 교내외 봉사 활동을 심사할 기준을 정해 2월말까지 보고하라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어디까지나 대학의 자율적인 판단을 존중하겠다고 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평가 기준을 교육부에 제출하지 않아도 불이익 처분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대학 관계자들로서는 교육부의 요구 사항을 무시할 만한 처지가 아니다. 그것은 이 공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교수 업적 평가제 시행이 교육부에서 올해부터 시행할 예정인 ‘대학 종합평가 인정제’와 긴밀히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대학 종합평가 인정제는 대학의 교육 및 연구 능력 전반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평가해, 이 기준을 통과하는 대학에 대해서는 학사운영 전반에 자율권을 부여하겠다는 제도이다.

 대학의 처지에서는 평가를 통과해 교육부로부터‘KS 마크’를 획득하기만 하면 증원·증과 등 대학의 첨예한 관심 사항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자율권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측면이 있다. 이미 상당수 대학이 평가를 받기 위한 내부 준비 작업에 들어갔고, 또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교수 업적 평가제를 적극 도입해야 할 처지인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제도를 시행하려고 할 때 또 다른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아직도 교수 사회 내부에 평가에 대한 거부감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평가제와 관련해 각 대학이 처해 있는 현실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표현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앞장서서 시도하자니 내부 저항이 우려되고, 너무 나서면 다른 대학들의 눈치가 보이게 될 것도 두려운 현실이다.

 특히 몇년간 이 제도 도입을 내부에서 검토해 왔고, 실제로 그 근처에까지 접근하기도 했던 서울대와 연세대 등 몇몇 대학이 끝내 좌절한 사례는 이 제도를 시행하기가 만만치 않으리라는 판단을 하게 한다.

 그동안 일부 언론에는 마치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이미 이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것처럼 소개되기도 했으나, 대학 관계자들이 얘기하는 실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서울대의 교수 평가제 논의는 지난 86년 이 대학이 2001년까지의 장기 계획으로 설정한 ‘서울대 발전 장기 계획’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2001년까지 서울대를 대학원 중심, 연구 중심 대학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이 계획의 일환으로 92년 10월 ‘학사운영 쇄신방안‘이 마련됐는데, 바로 그 중요한 항목 중 하나가 93년부터 교수 업적 평가제를 실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서울대가 93년 1년 동안 시행한 것은 교수 업적 평가제가 아니라 교수 업적 관리제였다. 평가제가 말 그대로 교수의 연구, 강의, 대내외 봉사활동 등을 평가해 이를 호봉승급이나 승진의 척도로 활용한다는 것임에 비해, 관리제는 매년 2학기말 교수들 스스로 자기가 1년 동안 쌓은 업적을 적어 대학에 제출하면 대학이 이를 참고용으로 관리하는 제도를 뜻한다. 대학본부 관계자는 “관리제는 평가제로 나아가기 위한 전 단계”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애초에 평가제를 실시하겠다는 취지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 사실이다.

‘이빨·발톱’빠져 당초 취지 크게 변질
 이처럼 서울대의 교수 평가제가 이빨과 발톱이 빠져버린 관리제로 둔갑한 경위는, 추진 과정에서 교수 사회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부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사회대학의 한 교수는 “평가제 실시가 대학의 질을 높이는 데 일정한 기여를 할 것이라는 점까지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처럼 연구 여건 마련을 위한 기초적인 투자도 안돼 있는 상태에서 평가제만 가지고 대학의 위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오산이다”라고 말해 회의적인 관점을 피력했다.

 연세대에서도 평가제 도입 시도가 중간에 애매하게 변질되었다. 연세대는 지난 92년 12월 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연세대 발전 위원회’를 구성하고, 연세대를 2010년까지 세계 1백위권 대학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내용의 ‘연세 21C 발전계획’을 추진해 왔다. 이를 위한 내부 쟁점 사항을 추출하던 중 교수 사회의 연구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교수 업적 평가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몇몇 소위원회가 주도해 이루어진 논의 과정이 교수 사회 전체로 확산되면서 서울대와 마찬가지의 반발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 과정을 거쳐 지난해 10월 작성된 발전 위원회의 1차 보고서나 그 후에 나온 중간 보고서에서는 교수 업적 평가제라는 말은 사라지고 그대신 ‘교수 발전 제도’라는 새로운 용어가 자리잡게 되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용어만 바뀐 것이 아니라 개념 자체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일정한 평가 기준에 못 미치는 교수에 대해 호봉 승급이나 승진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애초의 취지는 사라져 버리고, 잘하는 교수에게는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못하는 교수에게는 연구 여건을 개선해 연구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타협적인 안으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연세대의 한 교수는 “교수들은 여태까지 평가의 치외법권 지대에서 살아왔다. 아직도 대부분의 교수는 평가라는 말에 대해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라며 교수 사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처럼 교수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평가제 도입에 심한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제도를 실시하는 일이 아주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교수 사회의 일반적인 정서와 달리, 이 제도 실시에 적극적인 교수 집단이 있고, 이들에 의해 부분적이나마 적극적인 움직임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문과계 교수들이 평가제에 대해 냉소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이공계 교수들은 상당히 적극적이다. 1~2년 전까지만 해도 주로 포항공대·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서울공대 등 공과대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이 제도 도입이 적극 논의돼온 편이었다면, 지난해 말부터는 주로 이과 계통의 순수 기초학문 분야 교수들이 적극성을 띠고 있다. 연세대의 한 교수는 이에 대해 “새 정부 들어 산업의 국제 경쟁력 확보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대학에 대한 정부나 민간 기업의 연구 지원이 주로 응용학문인 공과대 쪽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상대적으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교수 사회 금기 깨자” 움직임 계속될 듯
 이과대 교수들의 움직임이 처음으로 가시화했던 것은 지난해 12월 서울대 자연대 물리학과 교수들이 과 차원에서 마련중이던 승진제도 시안이 언론에 유출되면서부터이다. 물리학과의 한 교수에 따르면, 이 학과 교수들은 지난해 9월부터 물리학과의 학문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느슨하게 규정돼 있는 서울대 전체 차원의 승진 규정보다 훨씬 엄격한 내부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내부 토론을 계속해 왔다고 한다. 이 과정을 거쳐 새롭게 마련한 시안이 11월의 교수회의를 통과하는 등 학과 교수들 전체의 동의를 얻어가고 있었는데, 아직 학과장 승인 등 최종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에 보도돼 논란이 야기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당시 언론은 물리학과 1개 과의 결정 사항을 마치 서울대 자연대 전체의 결정 사항인 양 보도함으로써 혼란을 가증시키기도 했다.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들의 뒤를 이어 또다시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은 연세대학교 이과 대학 교수들이었다. 지난 1월28일 연세대측은 이과대 교수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새로운 교수 승진 제도를 언론에 발표한 바 있는데, 이는 사실 지난해 12월말 이미 이과대 내에서 교수회의와 투표를 거쳐 확정한 사안이기도 하다. 이과대 교수들이 채택한 교수 승진 제도는 국외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할 경우에는 3점, 국내 학술지의 경우는 2점, 국제 전문서적 저술은 4점, 국내 전문서적은 3점 등 구체적인 점수를 부여해 계량화하고 있고, 이에 따라 조교수에서 부교수로 승진할 때는 국외 학술지에 2편 이상의 논문을 포함해 7점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거나, 정교수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국외 학술지에 3편 이상 논문 발표를 포함해 9점 이상의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등 평가 기준을 매우 구체적으로 마련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특히 정교수의 경우도 2년 동안 논문을 한편도 내지 않으면 호봉 승급을 정지시킬 수 있도록 했고, 승진 심사에서 3회 이상 탈락한 교수는 과 인사위원회에서 대학본부에 면직을 건의할 수 있게 하는 등 기존의 논의 수준을 뛰어넘는 매우 강력한 조항들이 들어 있어 앞으로 교수 사회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서울대 물리학과나 연대 공과대학 등에서도 비슷한 결정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등 이공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교수 사회의 금기를 깨기 위한 움직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렇게 되면 그동안 주춤했던 전체 교수 사회의 분위기도 평가제 도입에 한발짝씩 다가서게 될 것이라는 것이 대학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南文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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