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여인’ 정치활동 재개
  • 런던·한준엽 통신원 ()
  • 승인 1992.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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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자 메이저 내각 금리정책 비난… 보수당 분열 염려


 보수당의 연속 재집권을 이룩한 메이저 총리에게 4월 총선승리의 느긋함을 즐길 틈도 주지 않은 채 웨스트민스터(영국 의회)가 달아오르고 있다.

 보수·노동당간의 공방전에 앞서 유럽연합 창설의 절차인 마스트리히트조약 비준을 포함한 유럽통합 문제와 장기적인 경기침체의 늪에서 못 헤어나고 있는 국내 경제문제를 둘러싸고 오히려 집권 보수당 내부에서부터 서로 다른 목소리가 튀어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언론들이 ‘메이저 총리의 맞선 망명 보수당 내각의 대결’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는 보수당 내 마찰의 진원지는 바로 지난달 30일 영국 의회의 상원인 귀족원에 첫 등원한 대처 전 총리이다.

 지난 4월8일 총선거에서 패배한 야당인 노동당은 닐 키녹 당수의 퇴진선언으로 후임 당수 선출과 당의 진로설정 등 선거 이후의 후유증 때문에 3개월이 지나도록 보수당 정부에 대한 본격적인 공격의 고삐를 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보수당의 대모로 자처하고 있는 대처 전 총리는 자신의 분신이라고까지 공언하고 있는 후계자 메이저 현 총리와 그의 새 내각에 대해서 그동안 야당을 대신해 의회 밖에서 간접적인 비판을 가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해왔다.

 대처의 상원진출은 그가 지난 90년 유럽통합문제를 둘러싼 당내 진통으로 불명예 퇴진한데 이어 지난 4월 총선에서 하원 재출마를 포기하고 야인으로 물러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어서 그의 정치생명과 관련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독수리가 귀족원의 오리들을 급습한다”

 유력지 <더 타임스>는 ‘독수리가 귀족원의 웅크리고 있는 오리들을 급습하다’라는 제목에 담비의 흰털로 목둘레를 장식한 진홍색의 전통 귀족외투를 입은 대처의 상원의원 모습을 1면에 크게 소개하는 한편 “메이저 총리는 이제 상원이 새로운 침입자인 남작부인을 잘 길들여줄 것을 바라게 됐다”고 보도했다.

 “나 마거릿 대처 남작부인은… 충실히 수행할 것을 서약한다. 그러하오니 신이여 저를 도와주소서….” 대처 특유의 위압적인 목소리가 상원 홀 안에 울려퍼졌다. 그의 상원등원선서는 정치 무대를 귀족원에서 되찾게 된 ‘철의 여제’의 정치재개 신호였다.

 이어서 지난 7월2일 상원에서 행한 대처의 첫 연설은 상원의원의 첫 등원연설을 지켜야하는 한계를 벗어난 것이었다. 대처는 20분 동안의 이 연설에서 지난 총선 당시 보수당뿐만 아니라 노동당과 자민당 등 3개 당이 모두 유럽통합문제를 선거쟁점으로 삼기를 회피해 영국 국민들은 마스트리히트조약에 관한 의사를 표명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이제 덴마크 국민이 국민투표로 이 조약에 대해 반대의사를 통해 이 조약의 유효여부를 결정짓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처는 특히 자신의 총재재임 시절 제정한 유럽공동체의 이른바 ‘단일유럽규약’은 각국 정부의 유럽공동체 유럽위원회에 대한 권한 이양 문제에서 마스트리히트조약과는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현재의 유럽이 처하고 있는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각국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회원국 정치인들의 일방적인 합의의 산물로 덴마크 국민이 이미 국민투표에 의해 반대의 뜻을 분명히한 마스트리히트조약은 죽은 조약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대처의 견해는, 지난해 12월 마스트리히트조약의 회원국간 합의 도달에 큰 역할을 한 메이저의 유럽정책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될 것이 확실하다.

 대처는 지난 1일 영국의 주요 경제인들이 참석한 모임에서 현재의 경기침체 원인을 고금리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메이저 내각의 경직된 통화경제정책에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대처는 만일 메이저 내각이 인플레 억제만을 겨냥해서 이자율을 인하하지 않고 과감한 경제정책을 회피할 경우 영국의 경제는 금융재난을 향해 곤두박질칠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자율 하락을 위해선 파운드화의 평가절하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는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대처의 상원 내 활동과 소속 당의 정책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은 영국의 의회정치에 활기를 불어놓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자칫 당을 분열로 몰고갈 염려도 없지 않아 하우전 외상과 히스 전 보수당 총리를 포함한 보수당 인사들은 그가 자기 독단에 빠져 역사책의 각주에나 올라갈 대처리즘에 연연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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