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찼던 1년 … 앞길은 더 험하다
  • 이흥환.한종호 기자 ()
  • 승인 1994.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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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 남은 4년의 7대 과제 / ‘국내용 정치력’으로는 해결 힘들어

金泳三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북한의 핵 개발 문제가 터져나왔을 때다. 민자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 “정말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북한이 핵을 가졌을 수도 있다는데, 이쪽(남한)은 여전히 봄바람이다. 예전 같았으면 찬바람이 쌩쌩 불었을 것이다. 너무 달라졌다.” 이른바 반YS로 분류되는 이 민정계 의원의 발언은 다분히 김대통령을 치켜세우는 분위기였다.

 새 정부가 출범한 뒤로 분명히 달라진 모습 가운데 하나다. 93년 2월25일 대통령 취임 선서 이후 김대통령은 마치 기록 경쟁을 하는 단거리 육상선수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이 상기된 표정으로 그는 1년전 출발선에 서 있었다. 그리고 정권 장악의 코스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재산공개라는 칼을 들이대자 전 · 현직 국회의장이 의사당을 떠났다. 대법원장과 검찰총장도 물러났다. 군부에도 손을 댔다. 국방부장관과 육군 참모총장은 물론 군단장급 62%와 사단장급 39%가 바뀌었다. 정권의 기반을 다지는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겨우 1년 간에 벌어진 일이다. 정치인 출신 대통령다운 모습이었다. 이는 능숙한 정치력으로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정작 남은 문제는 앞으로 4년 간에 있다.

 시장개방 · 환경 · 교육 · 교통 · 노사 · 보건 · 건설 등 어느 것 하나 국민의 삶의 질과 직접 연관되지 않은 문제는 없다. 대외적으로는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과제도 안고 있다. 처지면 국제 사회에서 낙오할 판이다. 국내용 정치력으로만 해결할 문제가 결코 아니다.
 단임 대통령의 앞으로 4년. 앉으나 서나 김대통령의 머리 속에서 맴돌 재임 기간의 주요 과제를 구체적인 현안 7개로 간추려 본다.

남북연합 - 시야 불투명
 북한에서도 한국의 문민정부 1년을 평가하고 있다. 공식 매체를 통해 연일 김대통령과 현정권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을 쏟아놓고 있는 것이다. 비난의 초점은 강경한 대북 정책, 쌀시장 개방, 국가보안법 존속에 맞춰져 있다.

 북한은 김대통령 집권 초기 잠깐이나마 새 정부에 기대를 표시했었다. 김대통령이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 같은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북한과 우리는 통일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라고 한 말을 의식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딴판이다. 그런 기대를 가졌던 것 자체가 억울하다는 투다.

 이를테면 북한 신문과 방송은 ‘김영삼 정권은 문민과 개혁 정치를 광고하면서도 남북대화를 재개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할 의사가 털끝만치도 없다. 김영삼 괴뢰 정권은 타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대통령을 향해 욕설에 가까운 인신 공격까지 퍼붓고 있다.

 우리 정부의 태도도 냉랭하기는 마찬가지다. 李榮德 신임 통일원장관은 지난달 11일 이북5도청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과 더 이상 모양 내기 대화는 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한때 기본합의서를 주고받으며 통일 가도를 달릴 듯하던 양측의 태도가 이렇게 돌변해버린 모습은 차라리 희극적이기까지 하다.

 김대통령은 임기내 남북연합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냉랭하기 짝이 없는 남북 상황을 볼 때 신뢰와 대화를 전제로 하는 남북연합은커녕 기본적인 대화라도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시장 개방 - 첩첩산중
 쌀시장을 지키지 못한 것은 김대통령이 맞은 첫 시련이었다. 쌀시장 개방은 김대통령에게 적잖은 정치적 부담이 됐지만 냉엄한 국제 현실을 절감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김대통령은 취임하기 전, 대통령이 깨끗하고 열심히 하면 경제도 살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1년간 경제 운용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경기 회복을 겨냥한 그의 첫 작품인 신경제 1백일계획은 사정과 맞물려 자체 모순을 일으켰으며, 거센 개방 파고는 한국 경제를 할퀴어댔다.

 김대통령은 1월11일 6차 신경제추진회의에서 94년에 해야 할 5대 중점 추진 과제를 확정했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타결에 따른 농어촌 대책, 민간 기업 활성화를 위한 기업 환경 개선, 국제화를 겨냥한 제도 및 구조 개선 등이었다. 매우 추상적인 이 과제들을 김대통령은 관료 조직을 움직여 구체화해야 한다. 30대 재벌 총수들과 4개월 독대한 후 투자를 이끌어낸 끈질김이 굼뜬 관료조직에도 파고들어야 할 것 같다.

 집권 2차 연도의 경제는 과속을 우려하는 소리가 나올 만큼 회복 기미가 완연하다. 그러나 구조 조정은 매우 더디다. 개방 파고를 헤치고 경제의 비효율을 치유하기 위한 경쟁력 제고는 정작 올해가 시작이다. 갈 길은 먼데 시간은 촉박하다. 지름길도 없다. 올해는 김대통령의 경제 다루는 솜씨를 본격 시험대에 올려 놓을 것이다.

관료 - 개혁의 최대 복병
 이화여자대학교 가정대학장이었던 金淑喜교수가 李會昌 내각의 신임 교육부장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교육학 교수 ㄱ씨는 이런 말을 했다. “두고봐라. 교육부 행정 관료들이 한달 안에 또 신임 장관을 바보로 만들고 말 것이다.” 김장관은 취임 직후에 국민학교 월반제와 영어 조기교육 등 굵직한 교육정책안을 발표했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이 정책안을 신임 장관의 작품이라기보다는 교육 관료들의 작품으로 해석했다. 갓 취임한 장관의 얼을 빼는 작전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신임 교육부 장관이 과연 교육 관료들의 손아귀에 잡혔는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이후 대기업 회장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민간 기업의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는 갖가지 행정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목청을 돋우었다. 세계가 변했는데 한국의 관료들만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행정 규제가 나라를 망친다는 소리도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관료는 정보를 독점한 채 오랜 세월 자기영역을 구축해온 노련한 집단이다. 그만큼 전문성도 갖췄고 나름대로 자부심도 대단하다. 이에 반해 김대통령의 집권 경험은 이제 막 1년이 되었다. 관료라는 거대한 벽의 존재를 실감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개혁을 부르짖는 김영삼 정부의 최대 과제는 관료와의 싸움이다. 앞으로 4년이 관료 집단과의 지루한 소모전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김대통령의 정치술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김종필 대표 - 언제까지 동반자인가
 김영삼 대통령은 재임기간에 지방의회 선거에서부터 대통령 선거까지 선거를 네 차례나 치러야 한다. 정당정치 체제에서 선거의 중심은 당이다. 더구나 민자당은 집권당이다. 민자당 文正秀 사무총장은 그런 민자당을 ‘작고 젊은 당’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김대통령이 원하는 당의 모습이다.

 김대통령이 취임한 후 민자당은 원했든 원치 않았든 ‘버려진 당’이 되다시피 했다. 집권당으로서의 활기는 지금도 찾기 힘들다. 53명의 당무위원들이 매주 한번씩 모이는 목요일의 당무회의 분위기만 보더라도 쓸쓸하기 짝이 없다. 문총장 입에서 7천명이나 되는 전당대회 대의원과 1만2천명에 이르는 중앙상무위원을 대폭 줄이겠다는 충격적인 발언(1월31일 김대통령에게 당무보고)이 나왔는데도, 사흘 후에 열린 당무회의에서조차 이 발언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95년부터는 당을 중심으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 물갈이는 이미 예고되어 있다. 목표는 ‘젊은 당’이다. 그런데 당을 떠 맡고 있는 인물은 젊은 당과는 거리가 먼 金鍾泌 대표다.

 지금까지 김대통령은 민자당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95년 이후 상황은 다르다. 당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계개편설은 계속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김대통령이 ‘김종필’이라는 변수를 어느 곳에 자리매김하느냐에 따라 민자당을 포함한 정치판의 새 판형이 짜일 것이다.

서울시장 - 제2인자의 탄생
 현재의 정치 일정대로라면 95년 6월 안에 우리는 새로 탄생하는 민선 서울시장의 취임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서울시장뿐만이 아니다. 부산 · 대구 · 광주 · 대전 · 인천 등 전국 시의 신임 시장과 도지사 인물평이 세간의 화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최대의 관심거리는 서울시장의 탄생이다. 새로운 서울시장은 김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유권자의 직접 투표로 선출되는 인물이다. 전체 국민의 4분의 1이 거주하며, 경제와 문화는 물론 권력과 정보의 중심지라는 서울의 상징성까지 감안하면 민선 서울시장 자리야말로 대통령 자리에 버금가는 제2의 권부가 되는 셈이다.

 민선 지방자치 단체장 탄생은 그동안의 중앙집권적 정치 관행을 한순간에 뒤엎는 일대 변혁임에 틀림없다. 지방 곳곳에서 국민의 심판을 거친 ‘작은 영웅’들이 출현하게 된다. 이 대변혁이 김영삼 대통령 임기 안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지방자치 시대의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또 하나의 숙제를 풀어야 한다. 그리고 그 숙제 중 가장 신경 써야 할 문제는 서울시장이라는 인물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96년 총선 - 선거구제와 다음 권력 구조의 변화 여부가 최대 관심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일은 96년 4월11일이다. 2년여 후의 일이다. 항상 그래왔듯이 정치판을 시끄럽게 만드는 가장 큰 정치 현안은 선거구제와 권력 구조의 변화 여부다.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직후 한 정치학자가 제기해 한때 논란이 일었던 ‘대통령 중임제’안을 제외하고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현안은 아직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다.

 김대통령은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는 양당 구도를 유지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정치권 일각에서는 간헐적으로 중선거구제 도입,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 등 선거제도를 바꾸는 데 대한 논의가 꾸준히 계속되었다.

 김대통령은 이미 15대 총선의 공천을 통해 새로운 인물을 대거 내세우겠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시사한 바 있다. 현행 소선거구제에서도 인물의 대폭 교체는 가능하지만 집권당 처지에서는 부담이 크다. 물갈이를 겸하면서 집권당의 안정세도 유지하려면 현행 전국구의 변형된 형태인 비례대표의 숫자를 늘이는 방법이 가장 유리하다. 정당명부제의 경우 최대의 관심거리는 지역구 선출 의원의 수와 비례대표 의원의 수다. 60 대 40, 또는 50 대 50의 비율로 하자는 안이 나오고 있고, 이미 정치학자들을 중심으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과의 관계 - 더욱 가까워지는 이웃
 지난해 8월 한 · 중 수교 한돌을 맞을 무렵 서울 주재 중국대사관의 한 외교관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자원과 인구가 많은 나라이고 다른 나라의 도움 없이도 자립이 가능하기 때문에 주변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필요가 없다. 같이 잘살자는 취지에서 평화공존 5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바깥으로 눈을 돌린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일본보다 한국과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이런 취지의 이야기는 일본 쪽에서도 들린다. 일본 우익 잡지들은 심심치 않게 ‘미국 · 중국 · 한국의 일본 포위론’을 특집으로 다루곤 한다. 우리 정치권에는 가히 ‘중국 러시’라고 부름직한 기운이 유행병처럼 퍼져 있다. 전 · 현직 고위 인사들이 앞을 다투어 중국 고위층에 줄을 대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뛴다. 한 중국 전문가는 “일제 시대에는 친일파가 득세했고 광복 이후에는 친미파가 아랫목을 차지했다. 이제는 친중파 시대이다”라고 말한다.

 한 · 중 관계는 이제 겨우 정상화 2년째를 맞고 있지만 한국 외교에서 중국의 비중은 미국 · 일본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양국의 공식 관계도 나날이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작년 10월 韓昇洲 외무부장관이 중국에 가서 무관부 교환설치에 합의함에 따라 두 나라 사이의 정치 · 경제 · 외교 · 군사 관계는 거의 마무리된 셈이다. 문화협정도 곧 체결할 전망이다. 그러나 정부 외교 정책팀은 여전히 미국 · 일본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결정한다. 중국을 핵 외교의 파트너쯤으로 간주하는 것 아니냐 하는 지적도 있다. 작년에 미국 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유교 문명과 기독교 문명 사이의 ‘문명충돌론’을 설파한 뒤 아시아 지역에서는 한자 문화권에 대한 논의가 급속히 퍼지고 있다.

 방대한 시장,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잠재력을 가진 나라 중국. 김대통령의 비망록에 어떤 모습의 ‘중국 책략’이 그려져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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