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나 이때나 여전한 인사 관행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4.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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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하기 전부터 입버릇처럼 ‘인사가 만사’란 얘기를 해왔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유감스럽게도 가장 불안한 모습을 보인 부분이 인사가 아닌가 싶다. 물론 5공이나 6공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양질의 인물이 정 · 관계에 대거 발탁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사 행태에는 과거 정권의 폐습을 답습하거나 오히려 그 보다 더 못한 모습을 보인 부분도 적지 않았다.

 예전 대통령들이 국정에 끼친 큰 해악 중의 하나라는 총리와 장관을 손바닥 뒤집 듯이 갈아치웠다는 것이다. 개각한 동기도 총리나 장관이 무능해서라기보다는 정국 돌파용인 경우가 많았다.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하거나 대형 사건이 터졌을 때는 어김없이 민심수습용으로 총리나 장관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 때 평균 33개월이던 내각의 수명은 전두환 대통령 때 15개월, 노태우 대통령 때는 11개월 남짓으로 줄어들었다. 4 · 26총선 패배로 집권 기간 내내 입지가 불안했던 노대통령은 5년 동안 무려 19차례나 개각 형태의 장관 경질을 단행했다. 6공 5년간 정부 24개 부처에서 장관을 지낸 사람만도 1백14명에 달한다. 각 부처의 장관이 평균 다섯 번이나 갈린 셈이다.

1기 내각, 5 · 6공보다 평균 수명 짧아
 김대통령은 지난해 12월25일 첫번째 개각을 단행했다. 2월26일 황인성 내각을 출범시킨 지 꼭 10개월 만의 일이다. 김영삼 정부 첫번째 내각의 수명은 전두환 · 노태우 정부 내각의 평균 수명보다 길지 못했다. 또 지난번의 개각은 연말 쌀시장 개방과 국회 예산안 날치기 통과 실패 등으로 악화한 여론을 수습하기 위한 것으로, 과거 정권의 악습을 되풀이한 꼴이다.

 김대통령의 인사는 처음부터 진통을 겪었다. 3월4일에는 김상철 서울시장이, 3월8일에는 박희태 법무, 허재영 건설, 박양실 보사 장관이 각각 비리에 관련되거나 재산공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취임한지 열흘도 되지 않아 자리에서 물러났다. 5공 때나 6공 때도 장관 후보에 대한 사전 검토가 이렇게까지 소홀한 적은 없었다.

 전두환 · 노태우 대통령의 인사 중 행정 관료들로부터 가장 지탄을 받는 부분은 전혀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을 자리에 앉힌 것이다. 5 · 6공 때 비전문가인 정치인들이 단골로 차지한 자리가 바로 교통 · 체신 · 보사 · 노동 장관이었다. 6공 때도 체신 · 보사 · 교통 · 노동 장관 자리는 대부분 군 출신이나 노대통령의 경북고 선후배들 차지였다. 현재 이들 부서에서 끊임없이 크고 작은 문제가 터지고 있는 것은 과거 인사의 적폐와 무관하지 않다. 전 · 노 두 대통령의 인사가 낳은 부작용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고위 관료의 지역 편중이다.3공 시절 영남 출신 고위 관료(장관급 이상)는 10%였으나 5공 때는 38.8%, 6공 때는 무려 48%에 달한 적도 있다. 김대통령의 경우, 개각 이후 주로 부산 · 경남 출신인 ‘상도동 사람’들을 중용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인사 문제만 놓고 본다면 김영삼 정부와 과거 정권 사이에 뚜렷한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
文正宇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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