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터미네이터’의 전면전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2.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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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나는 소망한다…》펴낸 작가 양귀자씨



 새 작품집을 펴낸 작가가 듣기 좋아하는 찬사 가운데 하나는 달라졌다는 말이다. 최근 장편 소설《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을 도서출판 살림에서 펴낸 작가 양귀자씨(37)는 “달라졌다”는 독후감을 많이 듣는다. 우선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그의 이전 소설에 견주어 새롭고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 또한 신선해서 책읽기의 즐거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1.  《나는 소망한다…》는 여성문제를 추리소설 기법으로 탐사한다. 작가가 이때 사용하는 굴착기는 ‘신화’이다. 작가는 이땅에 존재하는 여성문제의 모든 유형을 강민주라는 ‘터미네이터’에게 집중시킨 뒤 그로 하여금 남성중심주의 사회와 전면전을 벌이게 한다. 이 전쟁이 소설의 거죽을 이루고 그리하여 독자들은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2.  주어 ‘나’가 등장하는 짧고 당당한 문장이 무수한 복선들을 아우르고 주도하면서 황홀한 절정‘으로 치닫는다. 여성문제는 수시로 툭툭 던져지는 복선과 가속도가 붙는 사건 뒤로 몸을 감춘다. 작가는 많은 부비트랩을 설치한다. 이처럼 치밀한 구성과 빠른 전개가 주제를 가려버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그러나 작가는 바로 이같은 착각과 의구심을 노린다. 여성문제를 수면 위로 내세우면 남성은 말할 것도 없고 정작 여성 독자들조차 등을 돌리는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맥락이 퍼즐처럼 완결되는 순간, 독자들은 그제서야 이땅의, 그리고 자기 안의 여성문제를 반추하게 된다.

3.   스물일곱살. 대학원에 다니면서 자료 수집을 위해 여성문제 상담소 상담원으로 일하는 강민주 ‘나는 나를 건설한다’ ‘나는 운명을 거부한다’고 선언한다. 이 여성 터미네이터의 무기는 평생 써도 남을 만한 유산과 뛰어난 분석력과 실천력, 그리고 힘(보디가드 황남기)이다. 개인사적으로도 남성(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있으며, 상담소에서 피압박 여성들의 실상을 접한 그는 스스로를 ‘초월자, 응징의 대리인’으로 규정한다. 그는 당대 최고의 남성배우 백승하를 납치하기로 경정한다. 백승하는 여성들을 운명주의에 빠뜨린 범죄인인 것이다. 백승하에 대한 뭇여성의 환상을 벗겨내 남성의 추악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 계획과 납치, 동거생활 그리고 돌연한 파국이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4.  터미네이터가 영화 속의 가공인물이듯이 강민주라는 여성은 현실에서 만날 수 없다. 그는 신화인 것이다. 신화, 혹은 신화적 인물은 그러나 모든 인간을 포용하는 총체성이다. 이 소설을 통해 여성들은 “나도 강민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새삼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성 중심사회가 대안은 아니라고 본다. 작가는 모성이 모든 것의 위에, 앞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여성, 남성이라는 강요된 이분법적 틀이 아니라 그 남녀 개개인의 특성이 수용되는 사회”를 희망한다.

5.  “나에겐 과격한 실험이었다. 이 추리소설 기법이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은 나에게 축복이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양귀자씨는 1978년 문단데 데뷔한 이래 《원미동 사람들》《희망》등의 작품집을 발표했으며 유주현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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