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을 보는 정직한 시선
  • 이세용 (영화평론가) ()
  • 승인 1992.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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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전쟁



감독 : 정지영
주연 : 안성기 이경영

 전쟁은 무력을 앞세우는 정치의 다른 모습이다. 그러므로 어떤 전쟁도 마지막에 남기는 것은 평과가 아니라 불구자와 과부와 의족뿐이다.

 안정효 원작 정지영 감독의 <하얀 전쟁>은 월남전의 후유증으로 망가지는 두 사람을 다루면서 알려진 전쟁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자유와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진 파병의 진짜 이유가, 경제발전으로 부도덕한 정권을 유지하려던 3共 정부의 자금줄 확보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지영 감독은 <하얀 전쟁>에서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하여, 또 귀국박스를 준비하는 병사들의 행위를 통하여 우리 군대가 ‘용병’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영화의 전반부는 파월동료였던 한기주(안성기)와 변진수(이경영)의 재회와 월남에서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우리에게 월남전이 무엇인가를 묘사하는데, 한국군의 청부전투는 남의 제사에 뛰어들어 술잔 돌린 난센스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영화의 후반부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한기주와 변진수의 파멸을 보여주면서 전쟁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소설가 한기주의 주변을 맴도는 변진수의 이야기가 추리적 구성으로 얽히는데, 변진수가 스스로 귀를 자르는 대목을 매우 충격적이다.

 신나는 전쟁이 아니라 전쟁의 상처를 그린다는 점에서 <하얀 전쟁>은 단순한 전쟁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사회드라마이다. 당연히 이 영화에는 용감무쌍한 병사도 없고 존경할 만한 장군도 없다. 월남전을 어떻게 바라보든 사실은 존중돼야 한다는 감독의 입장은 ‘연출에 의해 뉴스가 찍혀지는’ 장면에서 분명하게 살아 있다. 또한 (총부리의 위협에 굴복하여) 양민을 죽인 변진수가 자기 양심과 숨바꼭질을 하다가 자해를 하고 급기야 죽음을 맞는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은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역사를 향해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언을 한다.

 <남부군> 이후 정지영 감독은 역사 속에 묻힌 사실, 희생된 인물들의 제 모습 찾기에 몰두하고 있는데 <하얀 전쟁>에서는 작지만 구체적인 인물들을 통하여 전쟁과 역사라는 큰 틀의 부분 그림을 그럼으로써 전체를 유추하게 만든다.

 막대한 물량을 동원해 월남 현지 로케이션을 하고 음악과 녹음을 위해 모스크바와 도쿄까지 찾아다닌 노력은 참으로 값지다. 그러나 이런 수고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얀 전쟁>은 몇 가지 약점을 감추지 못한다. 예컨대 수색정찰을 하면서 뻣뻣이 선 채로 담배를 물고 총을 갈겨대는 김하사의 액션은, 그가 변진수를 위협해 양민을 죽이게 한 장본인이므로 전쟁의 광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일지라고 할지라도 사실성을 크게 훼손한다.

 외국 영화와 큰 차이를 보이는 녹음 상태 역시 애쓴 만큼 효과를 얻지 못했다. 월남에서의 몇 장면은 평범한 서술에 머물러 충격을 감동으로 연결하는 힘이 아쉬웠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한국 영화의 재산목록에 추가될 올해의 수작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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