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맹랑 속설 믿다 엉뚱한 병 키운다
  • 이성남 차장대우 ()
  • 승인 1994.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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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척추 디스크 환자의 등은 뜸 자국으로 온전하지 않다. 디스크 수술 분야에서 명의로 알려진 영동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김영수 과장은 “기도원에서 집단최면 치료를 받았다는 환자의 등은 손톱으로 생살을 후벼판 자리가 덧나 신경까지 염증이 퍼진 이도 많다”고 알려준다. 응급실로 실려오는 의식불명인 환자의 입에는 우황청심환이 물려 있는 경우가 많다. 기사회생에는 우황청심환이 즉효라는 속설에 따라 가족들이 급하게 응급처방을 한 것이다. 전문의들은 이에 대해, 의식이 없는 환자의 입에다 억지로 우황청심환을 넣는 일은 자칫하면 기도를 막히게 해 질식사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참된 의료인상 구현을 추진해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는 최근 우리나라 환자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건강 지식을 부문별로 조사하여 ‘잘못된 건강지식 백가지’를 선정했다. 서울대학교 의료관리학교실 김용익 교수는 “의사가 진료 과정에서 직접 부딪치는 잘못된 건강 지식을 취합 · 선정하고 이에 대한 의학적 검증을 해당 전문의에게 의뢰했다”라고 설명한다. 여기에는 ‘술 마시기 전에는 미리 간장약 한 알’ 또는 ‘피로할 때는 드링크 한 병’ 같은 개인의 사소한 습관에서부터 ‘젊은 사람의 피를 수혈하면 젊어진다’ 등 황당한 속설에 이르기까지 만화경처럼 다채롭다.

 사람들이 ‘거짓 의학 지식’을 취득하는 경로는 어디인가. 많은 의료인들은 국민들의 의료 이용을 오도하는 첫번째 주범이 매스컴이라고 입을 모은다. 텔레비전과 일간지에서 취급하는 각종 의학 관련 보도는 매스컴의 특성인 공신력과 파급력으로 말미암아 국민 건강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실시한 ‘보건의식 행태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의학 지식을 얻는 경로에서 매스컴이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85%에 이른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등 전파 매체가 58%이고, 활자 매체가 차지하는 비율은 신문 15% 잡지 12%로 27%이다.

 각종 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의약품 광고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한가지 예로 제약회사 매출액 1~3위를 석권하고 있는 ‘국민 의약품’의 대명사인 드링크류의 성분을 보자. 방송 광고에서 ‘피로할 때 마시라’고 날마다 외쳐대는 드링크류에는 별 약효가 없는 비타민 · 아미노산과, 습관성을 유발할 수 있는 카페인이 들어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의료 제공 통로가 단일화해 있지 않은 것도 의학 지식의 혼선을 부채질한다. 즉 의료를 제공받을 수 있는 곳은 병원말고도 약국 · 한의원 · 민간요법 등으로 다양한데, 이런 곳에서 저마다 다른 처방을 내리고 있어 환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한 국민건강 조사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전체 의료 이용 중 50%가 약국에서, 42%가 병 · 의원 (치과 포함) 외래에서 이루어진다. 한방이 차지하는 비중은 4%로 별로 크지 않으며, 무당 · 기도원 같은 초자연적인 힘을 빌리는 경우도 있다.

 일반 국민의 의식 속에 광범위하고 막연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민간 요법이다. 한국인의 뱀 잡아 먹기는 어느새 국제화해 동남아 일대에서는 한국인을 상대로 한 코브라탕집이 성업중이다. 한때는 아침마다 자신의 오줌을 받아 한컵씩 마시면 난치병이 치료된다는 요로법이 당뇨 · 위장병 환자들 사이에 번졌으며, 잘못 먹으면 독약이 될 수도 있는 쇠뜨기풀이 만병통치약으로, 머위 · 매실즙이 중풍예방약인 것처럼 번졌다. ‘주민의 전통 의술 이용도 조사 연구’에는 민속 요법을 이용한 경우가 79.2%에 달한다고 되어 있어, 많은 사람이 공식적인 의료기관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민간요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반면, 의사를 위시한 보건 의료 전문가들이 국민을 대상으로 ‘참된’ 의학지식을 교육하는 통로는 매우 좁고 불친절하다. 예컨대 의사들은 불필요한 주사를 많이 주면서 “환자들이 무지해서 주사를 맞아야 빨리 낫는다고 믿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환자들이 주사를 맞아야 빨리 낫는다고 누가 가르쳤으며, 또 그런 잘못된 인식을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은 누구 책임인가. 많은 의사가 환자를 매일 오게 하고, 필요 이상의 검사를 하고 있지 않은가. 인의협은 그동안 의사들이 되풀이해온 무책임한 의료관행과, 이로 인해 형성된 의사에 대한 불신감이 국민들로 하여금 잘못된 건강 지식을 갖게 했다고 시인한다.

 이같은 의학 지식의 난맥상은 결과적으로 ‘치료자 고르기’(healer shopping 또는 shopping around)‘라는 기현상을 초래했다. 40쪽 도표에 제시된, 62세 노인이 질병 치료를 위해 여러 기관을 방황하고 있는 모습은 결코 드문 사례가 아니다. 국민 건강을 떠맡아야 할 의사가 잇속 챙기기에 골똘하고 있는 동안, 면역체계가 무너져내린 병든 환부를 터삼아 ‘사이비 의학’이 질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대 일반외과 민영돈 교수가 들려주는 치질 환자의 경우는 그 작은 예일 뿐이다. 그 환자는 치질을 녹이는 주사를 맞으면 낫는다는 말을 듣고, 무면허 돌팔이에게 고액을 지불하고 항문에 주사를 맞았으나 치료되지 않고 오히려 항문 주위에 농양이 발생하여 패혈증에 걸리게 되었다. 더 심한 경우는 항문 근육이 모두 파괴되고 항문 협착까지 되어 결국은 배꼽 옆에 인공 항문을 만들어 평생 배를 통해 대변을 보게 된 이도 있다.

 국민들이 잘못된 의학 상식에 매달려 전전하고 있는 시점에서 뒤늦게나마 인의협 의사들이 직접 참여하여 ‘위험한 건강 상식 백가지’를 선정해 이를 시정하라고 촉구한 것은, 의사는 국민 보건의 첨병이어야 한다는 의료인의 당위적 사명감을 되찾겠다는 의미있는 시도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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