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경험 없이 평범하게 살아왔다”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4.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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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원 고료 당선작가 김형경씨 …‘삶에 투영되는 문화의 깊이’가 탐구 주제

김형경(본명 김정숙)씨는 최근 묘한 전화를 몇 통 받았다. 그가 친 경비망을 뚫고 어찌어찌 전화번호를 알아낸 몇몇 남자가 대뜸 ‘결혼합시다’라며 청혼해 온 것이다. 그는 아직도 이런 남자들이 있구나 하는 신기함과, 그 대상이 자신이라는 낯설음 사이에서 좀 당황했던 것 같다. 이 작은 사건은 그에게, 작가의 유명세를 타고 있기는 있는가 보구나 하는 구체적 자각으로 다가왔다. 마치 미몽에서 깨어나 자기 살을 꼬집어 보는 것 같은.

 기실 서른네 살인 미혼 처녀를 유명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그의 장편 소설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자체라기보다는 한국 문학상 가장 큰 1억원 (세금 빼고 9천7백만원이지만 연말 정산 때 천만원을 더 내야 한다) 고료를 받은 작품이라는 사실일터이다. 그가 인터뷰할 때마다 그 돈을 어디에 쓸 것이냐는 질문을 계속 들어야만 했던 것처럼.

버거워 내던진 ‘선생님 자리’
 스스로 밝히는 그의 이력에서는 아무리 들춰 보아도 작가가 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라든가, 작가의 길로 몰고 가는 운명의 장난 같은 것이 발견되지 않는다.
 강릉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그는 경희대 국문학과를 나와, 중등교사 임용을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만 했던 후배들과 달리 너무 쉽게 중등교사 자격증을 받고, 남쪽 지방에서 몇 년간 중학교 국어 교사로 지냈다. 그가 ‘선생님’ 자리를 버린 것은 순전히 자신에게 교사로서의 소양이 부족하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단순한 지식 전달자는 될 수 있으되, 그 이상은 나이도 어린 내게 무척 힘들었다. 학부모들이 자식 잘 부탁한다고 손 붙잡고 울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무 난감했다.” 그래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출판사에 취직했고, 잡지사에서 수년간 기자로 일했으며, 월간지를 창간해 몇 달 동안 편집장이라는 명함을 만나는 이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이것이 대학 졸업후 12년 동안 그의 궤적이다.

 그 스스로도 “문학적인 경험 없이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라고 말한다. 스물아홉 되던 해에 최초의, 그야말로 가슴 떨리는 열렬한 사랑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남들이 다하는 것처럼 한때의 통과의례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작품에서 80~90%는 픽션이고, 10% 정도만 현실 이야기를 대입하는데, 그 10%는 늘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점은 지적해 두자. 김형경은 《새들은…》의 주인공인 미술 잡지 여기자 은혜처럼 12년 동안의 직장 생활에 대해 ‘이 일이 내게 과연 무슨 소용이 있지’하고 끊임없이 회의하고, 10년이 지나면 직장을 그만두고 글쓰기에 전념하리라 다짐을 거듭했다는 사실. 또한 국문학과 동료들과의 선의의 경쟁의식 혹은 대학 다닐 때의 분위기, 잡지사 경력이 그의 문학성과 《새들은…》에 확연하게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 그는 문학적인 경험이 별로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문학적인 분위기에 가득 둘러싸여 있기에 나오는 겸양일 수도 있을 터이다.

지금껏 좋아하는 박경리와 카뮈
 그 역시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소망은 어릴 적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는 아주 작은 사실에서부터 출발한다. 그의 독서 경력을 보면 고등학교 시절에는 르 클레지오의〈홍수〉, 로슈포르의 〈병사의 휴식〉 같은 난해한 소설이 주류를 이루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읽는다는 사실 그 자체로써 즐거웠으므로. 대학에 들어와서는 미시마 유키오나 가와바타 야스나리 같은 전후 일본 작가들의 유미주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다. 졸업 이후 한때 니코스 카잔차키스에 빠졌고, 지금도 꾸준히 좋아하는 것은 박경리와 카뮈의 소설이다.

 그가 앞으로 쓰고 싶어하는 소설은, 문학이나 예술이 우리 삶과 어떤 유기적 관계에 있는가를 짚어보는 것이다. 그는 모든 문화 행위가 사회사적 연결 고리를 갖듯이 문화 행위가 한 개인의 삶에 어떻게 투영되는지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싶다고 말한다. 김형경의 글쓰기 습성은 우선 아무 칸도 쳐지지 않은 노트에 빽빽하게 적어나간 다음에 컴퓨터에 다시 정리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그의 노트에 어떤 글들이 적히고 있을지 기대하는 일은 흐뭇한 일이다.
趙瑢俊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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