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도 대상 1호는 내무부”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4.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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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으뜸 광역의원 11명 심야 토론’ 9시간

지방의회가 출범한 지 2년7개월여 30년 간의 ‘중앙 독재’를 마무리짓고 이 땅에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받으며 출범함 지방의회는 과연 제몫을 다해 왔는가.

 유감스럽게 언론에 단편적으로 보도되는 지방의회의 모습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모하다. 무리하게 예산을 끌어다가 부부 동반 외유를 일삼고 비리와 관련해 구속되기 일쑤이며 재산은 평균 수십억원에 달하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특권층쯤으로 비치고 있다. 지방의회가 생기기 전과 생기고 난 다음에 도대체 달라진 게 뭐가 있느냐는 비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국민의 세금을 합법적으로 낭비할 수 있는 기관만 하나 더 생긴 것 아니냐는 냉소적인 시각도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지방의회에 관해 형성된 부정적인 여론은 상당 부분 조작되거나 부풀려진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중앙의 기득권 세력이 지방의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어두운 면만을 의도적으로 부각했다는 얘기이다. 사실 지난 2년7개월여 동안 지방의회에 대한 보도는 일부 의원들의 추문에만 지나치게 집중돼온 경향이 있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원내 활동에 대한 공정한 평가나 보도는 드물었다.

 《시사저널》은 의원들의 육성을 통해 지방의회의 참모습을 조명해보기 위해 민주당 노무현 최고위원이 운영하는 지방자치실무 연구소에서 뽑은 광역의원 베스트 50명 중 전국 각 시·도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의원 15명을 초청해 토론회를 열었다(선출 방법은 23쪽 상자 기사 참조).

 2월18일 오후 7시 서울 반도 아카데미에서 열린 이 모임에는 모두 11명이 참석했는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한차례도 쉬지 않고 토론을 계속할 만큼 분위기가 뜨거웠다. 의원들은 할말이 많았다.

주민과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정구영 의원(대전)과 이 영 의원(부산)은 회기중에는 5공 시절 전두환 대통령 부럽지 않을 만큼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한다고 했다. 그외 다른 의원들도 회기중에는 지역 텔레비전 뉴스에 단골로 얼굴을 내민다고 한다. 의원들이 이런 애기를 꺼낸 까닭은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만큼 지역 현안에 대해 지방의회 의원들이 문제 제기를 많이 하고 발언권이 강화됐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의원들은 알게 모르게 지방의회의 존재가 지역민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선 큰 변화로 지적했다.

 광부 출신이면서 민중당 후보로는 유일하게 도의원에 당선한 성회직 의원(강원)는 처음에는 지역민들이 자기들 뽑긴 했지만 스스로도 한심해하는 눈치였다고 털어놓았다. 야당 불모자인 강원도에서 정통 야당도 아닌, 국회 원내에 단 한개의 의석도 갖지 못한  당의 도의원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1년 반 정도 끼니를 거르고 뛰면서 주민들의 민원을 의회에 갖고 들어가 해결해 내니까 주민들의 눈길이 달라졌다고 했다. 자원봉사자도 생기고 5천원·1만원씩 놓고 가는 사람도 늘어나 많을때는 활동자금이 월 1백만원 정도 모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가난에 찌든 탄광촌 사람들이 내놓는 5천원·1만원은 기업인들이 중앙 정치인에게 내놓는 10억원·20억원보다 훨씬 의미가 무거운 것이다. 지방의회가 자리를 잡아가는 속도가 느리다고 비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방의회의 존재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라고 얘기했다.

‘특종’ 많이 터뜨렸다.
 지방의원들은 국회의원들 못지 않게 ‘특종’을 많이 터뜨렸다. 지난해 전직 세무 관료 출신인 이석호씨가 국유지 3천만평 가략을 삼켜버린 사실이 밝혀져 세상을 놀라게 한 일이 있다. 이 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해 폭로한 사람이 바로 최형식 의원(전남)이다.

 강동원 의원(전북)은 6개월간 지리산·덕유산·내장산 등 국립공원 인근의 외지인 토지 소유 실태를 끈질기게 조사했다. 외지인 토지 소유 실태를 잘 알지 못하고 개발에 착수하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투자한 돈의 이익금이 대부분 투기꾼에게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는 국립공원 인근의 알짜배기 ???이 거의 외지인 소유라는 사실을 밝혀내 도의 개발 정책에 경종을 울렸다.

 최명진 의원(서울)은 말썽 많은 김포 쓰레기 매립장 건립계획을 파고들어 서울시를 곤경에 몰아 넣었다. 그는 청소사업본부가 서울시에서 김포 매립지까지 쓰레기를 운반하는데 어느 정도 비용이 드는지, 재활용 쓰레기는 얼마나 나오고 그 가운데 몇 t을 김포 매립장으로 보낼 예정인지, 산업쓰레기는 얼마나 갖다 묻을 것인지 등 기초자료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언론사 간의 취재 경쟁 속에서 이들 의원들의 ‘저작권’은 무시되고 말았으나 지방의회가 출범하지 않았으면 이런 사실은 영원히 묻혔을 것이다.

공무원 자세 많이 바뀌었다
 이 영 의원은 공무원들이 처음에는 다소 긴장하더니 6개월 정도 지나자 자세가 많이 흐트러졌고 1년이 지나자 못해먹겠다는 소리를 하기 시작하다가 지금은 지나가면 쫓아와서 인사를 한다고 얘기했다. 공무원들이 의원들의 수습기간에는 비웃기도 하고 불편해하기도 했지만, 의정 활동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지방의회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기 시작했다는 얘기이다.

 강동원 의원도 지방의회가 출범할 당시와 지금 공무원들의 자세는 눈을 비비고 볼 정도로 다르다고 말했다. 전북의 91년도 예산안에는 각 군과 면에 농기구 수리센터가 부족해 마을마다 30만원 상당의 공구를 지원하겠다는 항목이 들어 있었다. 강의원은 담당공무원들이 농촌 사정에 얼마나 밝은지 알아 보기 우해 도대체 무슨 공구를 지급할 예정이냐고 물어보았다. 담당 공무원은 우무쭈물하더니 ‘컴프레서’(압축기)라고 대답했다. 어이가 없어 컴프레서가 뭐냐고 물어보니 대답하지 못하고 ‘컴프레서가 적당하지 않으면 용접기를 사주겠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용접기는 위험물 취급 인가가 있어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하는 얘기냐고 물으니까 당황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강의원은, 지방의회가 출범하기 전까지는 공무원들이 놀고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큰 지역민의 삶에 무신했으나, 이제는 적어도 의회에 나와 자기도 모르는 애기를 하지는 않는 다고 말했다.

 정구영 의원은 초창기에 3백31건의 자료를 요구하자 공무원들이 ‘시청 캐비닛을 아예 들고 가지 그러냐’고 비아냥됐으나, 자료가 얼마나 허술한지 조목조목 지적하니까. 다시는 그런 ‘버릇’을 드러내지 못하게 됐다고 얘기했다.
 의원들은 지방의회가 생긴뒤 공무원들이 눈에 띄게 많이 공부한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도매금으로 넘어가 힘빠진다
 의원들은 일반인이 단편적인 언론 보도를 통해 의원 비리를 접하고 의원들이 무슨 큰 특혜나 누리는 것처럼 인식하는데 대해 무엇보다도 섭섭해 했다 호텔업을 하는 김종규 의원(경남)은 “사업을 하는 의원들은 손해를 보면 봤지 이익을 보는 일은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거는 경남의 한 의원이 언론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은 뒤 마음의 병이 들어 죽기고 했다면서, 사업을 하는 대부분의 의원은 의원이 된 것을 후회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명진 의언은 서울시 의원 가운데도 비리와 관련돼 구속된 사람이 여럿 있으나 그들은 모두 의원이 되기 전의 비리 때문에 구속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의원직을 이용한 이권개입이나 직원 남용으로 구속된 사람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최의원은 사업을 하는 의원들이 특혜를 받는 부분이 있다면 관계 공무원들로부터 시달림을 받지 않는다는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공무원에게 주던 뇌물 액수가 줄었다는 것도 특혜라면 특혜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오로지 사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의원이 된 사람들은 의정 활동도 불성실하기 때문에 실제로 시정이나 도정에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의원들은 지적했다.

중앙 정치권에 할말 많다.
 의원들은 중앙 정부나 정당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다. 우선 내무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지방의 여건과는 무관한 예산편성 지침을 거침없이 내려보내고, 사사건건 자치단체의 행정에 간섭하는 내무부가 타도 대당 제1호라는 것이다. 의원들은 내무부가 건재하는 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실시한다 해도 지정한 의미의 지방자치 실시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의원들은 지방의회를 위축시키는 모든 기도의 배후에는 내무부가 도사리고 있다고 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방의회의 이미지에 먹칠하는 기사는 대부분 기자실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정당의 역할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이 많이 나왔다. 정구영 의원은 여야 모든 의원이 공감해 만장일치로 밀어붙이기로 한 시급한 민생 현안도 중앙당의 눈짓 하나로 유야무야되기 일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자기가 입안한 법안에 대해 당의 지시에 따라 반대표를 던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앙 정치인들이 대체적으로 지방의원들을 견제 대상으로 보고 있다며, 지방의원들이 후원회를 구성하지 못하도록 법에 못박는 것을 실례로 들었다. 지방의원을 무보수 명예직으로 묶어 놓은 것이나, 적정한 활동비를 지급하지 않고 보좌관을 두비 못하게 하는 것도 모두 중앙 정치의 견제로 보는 시각이었다.

우리의 경험은 소중하다
 법적·제도적 제약 속에서 의정 활동을 해오면서 의원들은 숱한 좌절을 겪었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도 많이 했다고 얘기했다. 권오을 의원(경북)은 “처음에는 위증과 불출석에 대해 제재할 수 없어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으나 차츰 요령을 터득하게 됐다”고 말했다. “부실한 자료나마 철저히 분석하고 따지고 들자 공무원들이 스스로 자료를 내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단 독하다는 소문이 나자 조직 운영에 불만을 품은 공무원들이 몰래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의원들은 어려운 여건 덕분에 오히려 전투력은 향상된 면이 있다고 얘기했다.

 이 영 의원은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 만이 지방의회가 할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깨닫게 됐다고 했다. 이의원은 지금까지 아시안게임이 각국의 수도에서 열렸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도쿄가 아닌 히로시마에서 열린다는 점에 착안해 부산에서 아시안게임을 유치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자 그의 제안은 부산 시민의 큰 호응을 얻었다. 시민 간에 서명운동이 잇따랐고 정부는 부산의 아시안게임 유치 계획을 승인했다 이의원은 “앞으로는 지방의회가 견제와 감시 기능을 뛰어넘어 주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책도 개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토론의 사회를 맞은 민주당 노무현 최고위원은 “지금까지 있어온 지방자치에 대한 좋지 못한 여론은 상당 부분 수정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 정치 세력의 독주를 견제하려면 지방의원들이 횡적 연대를 강화해야 할 것이며, 당장 지방자치법 개정을 맡은 정치특위 위원들에게 강력한 압력을 가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날 의원들은 ‘일반의 우려와는 달리 지방자치제의 앞날은 밝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최용규 의원(인천)의 제안에 따라 앞으로는 모든 ‘전투 경험’을 공유하기로 했다.
文正宇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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